[역사와 현실] 인재와 다양성
얼마 전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 하나를 보았다. 2022년 10월에 있었던 어느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 영상이었다. 질문하는 국회의원이나, 답변하는 후보자 모두 맑고 진지해 보였다. 질의응답 과정에서 그 얼마 전에 있었던 신임 법관들의 출신 배경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질문자에 따르면 김앤장 출신 신임 법관 비율은 2022년 전체 임관자 135명 중 14.1%였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이 로펌은 오랫동안 대한민국 1위 로펌으로, 고위공직자들이 임명될 때마다 그들이 높은 급료를 받았던 전 직장으로 자주 소환되는 곳이다. 그것만도 주목할 일이지만, 더 주의를 끄는 것은 김앤장 출신 비율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2019년 6%, 2020년 7%이던 것이 2021년엔 12%로 급증했다.
신임 법관들의 거주 지역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2021년 전체 157명 중 85%인 134명이 수도권에 거주했다. 이는 2019년 71%, 2020년 77%에서 늘어난 숫자이다. 수도권에서도 서울이 105명으로 67%를 차지했는데, 이는 2011년 69명 41%에서 높아진 것이다. 2021년 신규 임용된 법관 3명 중 2명이 서울에 산다는 뜻이다. 서울시 거주 법관 중 전체 25개 구 중에서, ‘강남 3구’에 거주하는 신임 법관 비율은 48명으로 31%였다. 대한민국 신임 법관 3명 중 1명이 이 지역에 거주하는 것이다. 이 비율은 2019년 23%, 2020년 29%로 계속 높아지고 있다. 광주·대구·충청·울산 출신은 각각 1명, 대전 3명, 경상·부산·전라 각각 5명이고, 부산이나 광주조차 서울 서초구(22명), 강남·송파구(각 12명)에 못 미쳤다.
신임 법관들의 경력이나 거주 지역이 보여주는 양상은 일종의 사회현상이고, 이에 대해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선악 판단에는 암묵적으로 개인의 의지가 중요하고, 사회현상은 개인 의지의 직접적 결과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 통합의 지속성 혹은 건강함이라는 측면에서 이런 편중을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조선왕조가 마지막에 도달한 권력과 정치 형태는 세도정권과 세도정치였다. 한국사 개론서는 이를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세도정권은 사회 변화에 대한 근본적 개혁 능력과 의지를 결여해 수구적 성격을 띤다고 기술된다. 그 결과 세도정치는 새로운 권력 참여자들을 배제해 사회 통합에 실패했다는 서술이 이어진다.
세도정권의 기반은 이미 영조(英祖) 재위 기간인 18세기 초·중반에 등장했다. 이때 구축된 장기 지속되는 강력한 기득권 집단의 형성을 흔히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만, 다르게 볼 수도 있다. 즉 조선은 어떻게 건국 이후 300년이 넘어서야 가문 단위의 강력한 기득권 집단이 성립되었을까 하는 관점이 그것이다. 너무 이르다기보다는 너무 늦게 등장했다고도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은 이제 겨우 75년이 지났을 뿐이다.
세도정권 출신 인물들은 조선의 기준에서 인재들이었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무능하고 부패하기만 한 인물이 아니었다. 고위 관직을 지낸 뛰어난 인물들을 배출했던 집안 출신이 많았고, 개인적으로 그 어려운 문과에 합격한 인물들이었다. 문과 급제는 과거의 사법시험과도 비교할 수 없이 합격하기 어려운 시험이었다.
질의했던 국회의원의 지적처럼 개인의 판단과 행동을 결정하는 데에는 그가 가진 가치관보다 그가 했던 경험의 힘이 훨씬 강력하다. 어디에 살고, 평소 누구와 어울리고, 어떤 일로 일상을 채우며, 성별 및 장애 유무 등이 개인의 감정, 생각, 판단을 지배한다. 한 사회의 수많은 구성원들은 대단히 다양한 삶의 조건에서 살아간다. 이 때문에 누군가 자기 경험만으로 사회를 깊이 이해하고, 사람들의 행동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면, 좋게 말하면 착각이고 실제로는 오만이다. 비슷한 인재들만으로는 사회적 다양성을 대신할 수 없다.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 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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