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균의 초속 11.2㎞] 가오갤3, 피치 클락, 용산 더그아웃

이용균 기자 2023. 5. 1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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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의 새 영화 <가오갤3>(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는 개봉 2주 동안 280만명이 관람했다. 2월에 개봉한 <앤트맨3>(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가 겨우 150만여명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성공이다. 포털사이트 관람객 평점은 9.42점이나 된다. “모처럼 마블다운 영화”라는 평가가 나온다. 페이즈4에 들어선 이후 마블 시리즈를 향한 팬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히어로 피로감’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상상도 못할 정도로 힘센 빌런과 히어로들이 나와서 쿵쾅쿵쾅 때려부수기만 했다. <가오갤3>는 그 틀을 벗어났다.

이용균 뉴콘텐츠팀장

야구가 딱 그랬다. 요즘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구속은 시속 160㎞를 넘기기 일쑤다. 타자들이 아웃 3개를 당하기 전 안타 3개를 때려 점수를 내기 어려워졌다. 전략을 바꿨다. 타자들은 홈런을 노리는 스윙을 했다. 마블 시리즈처럼 ‘모 아니면 도’의 야구다. 홈런, 삼진, 볼넷이 늘었다. ‘3가지 진정한 결과(three true outcomes)’로 번역되지만, 의외성이 없는 야구의 ‘노잼 3요소’다.

메이저리그는 올해 야구규칙을 잔뜩 바꿨다. 투수들이 공을 빨리 던지도록 피치 클락을 도입했다. 주자 없으면 15초, 있으면 20초 안에 던져야 한다. 그 시간에 안 던지면 ‘볼’이 선언된다. 타자는 8초를 남겨두기 전에 타격 자세를 완료해야 한다. 못하면 ‘스트라이크’가 선언된다. 야구의 재미를 위해 도루 유도 규칙도 만들었다. 투수는 한 타자를 상대하는 동안 견제를 2번까지만 할 수 있다. 슬라이딩을 편하게 하도록 베이스 크기도 키웠다.

한국 정치 문제는 ‘용산 더그아웃’

결과는 ‘대성공’에 가깝다. 17일 현재 평균 경기 시간(연장 제외)은 2시간37분이다. 지난해 3시간3분에서 26분이 줄었다. 생각할 시간이 줄면서 보다 ‘본능적인 승부’가 이뤄진다. 리그 평균 타율은 0.231에서 0.247로 높아졌다. 더 많은 야구공이 그라운드 안에서 굴러다닌다. ‘노잼 3요소’가 줄었고, ‘유잼’ 도루는 늘었다. 오클랜드 에스투리 루이스는 70도루도 가능한 페이스다.

미국 야구가 이럴진대, 한국 야구라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한·미 공조 강화는 현 정부의 기조다). KBO리그도 메이저리그의 변화된 규칙 적용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피치 클락 도입은 원래 KBO가 원조다. 심지어 12초로 더 빠르다. 다만, 타자의 타격 자세 완료 뒤부터 잰다. 타자가 늑장을 부리면 무소용 규칙이다. 피치 클락의 도입은 투수의 리듬을 흔들지 않을까? 단장들은 고개를 젓는다. 한국 야구의 문제는 투수가 아니었다. 타자가 타석에 늦게 들어서는 게 이유고, 이는 감독 또는 코치가 내는 작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경기 흐름상 중요하다고 판단되면 벤치가 바빠진다. 감독의 사인이 3루 코치에게 전달되면 복잡한 수신호로 타자와 주자에게 전달한다. 공 1개 던지고 나면 또 작전과 사인이 바뀐다. 수비 쪽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 1개를 던질 때마다 구종 선택 사인이 나오고 수비 위치를 미세 조정한다. 한국 야구는 감독을 위한 야구다.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들이 ‘자기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모두 더그아웃의 지시를 기다리고 눈치를 봐야 한다. 그러니까 경기 시간이 길어지는 건 투수와 타자들이 지나치게 ‘신중한 플레이’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나치게 벤치에 의존하는 경기를 하기 때문이다. 한 단장은 “피치 클락이 도입되면 정작 선수들이 아니라 벤치가 굉장히 당황스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치의 문제도 똑같다. 모두 용산 더그아웃만 바라보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면 일단 멈춤. 무슨 사인이 나올지 지켜봐야 한다. 노동시간이 그랬고, 전당대회가 그랬고, 외교 관련 결정들이 그랬다. 감독의 사인이 애매하면 이를 해석하느라 호들갑을 떨었다.

피치 클락이 절실한 건, 결국 정치

게다가 한국 정치는 야구로 치자면 감독 교체 뒤 ‘팀 컬러 변화를 위한 리빌딩’을 하는 중인데 변화의 기울기가 가파르다. 이를테면 기동력 중심의 타선에 무조건 풀스윙으로 장타를 때리라고 하면 득점 내기가 어렵다. 좌투수, 우투수, 언더스로 투수 등 밸런스가 맞아야 하는데, 우투수만 계속 등판시키면 역시 실점을 막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144경기 중 20%가 넘는 30경기를 치른 셈인데, 여전히 성적 부진 이유가 이전 감독 탓이라고만 한다. 라이벌 팀이 제대로 못하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서로만 바라보고 하는 야구가 국제무대에서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지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분명히 확인했다. 감독의 권위를 줄이는 피치 클락 도입이 절실한 건 야구가 아니라 정치다.

이용균 뉴콘텐츠팀장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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