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동물원을 뛰쳐나온 얼룩말

임미다 2023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자 2023. 5. 1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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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많은 오월, 한낮의 탈출로 유명해진 서울 어린이대공원의 얼룩말 ‘세로’를 보러 가겠다는 아이들이 꽤 있다. 탈출이라는 단어에서 ‘통쾌’와 ‘짜릿함’을 연상하고, 자유로 끝맺는 이야기를 상상한다. “상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건 이미 알고 있어요” 하고 안타까워하며.

도로에 있던 ‘세로’의 불안한 모습이 오랫동안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탈출 뒤에 자유가 있다면, 두 단어가 그렇게 굴곡 없이 이어진 것이라면, 어둠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로 직선의 길을 빠르게 달려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온전하게 자유의 세계에 있는 것일까. 한 지인은 자유라는 단어를 들으면 계절을 즐기며 밤 산책을 하러 나서는 순간의 즐거움이 떠오른다고 했다. 이때의 자유란, 만족하는 일상의 힘을 뜻할 것이다. 세로는 부모 얼룩말이 연달아 죽은 뒤,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부모의 급작스러운 부재가 세로의 일상을 무너뜨린 것이다.

또 다른 지인은 자유엔 외로움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황선미의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에 나오는 ‘잎싹’을 생각해 본다. 고통스러운 탈출 이후, 외로움을 견디고 다른 생명을 키워 내 자유롭게 날아가도록 하는 주인공. 자신은 또 다른 생명을 위해 희생하며 생을 마친다. 23년 전 출간된 이 책을 요즘도 나는 학생들과 함께 읽는다. 좋은 책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준다. 앞 세대가 내게 넘겨준 것을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는 일은 소중하다.

역사도 그렇다. 우리가 지금 ‘자유’의 세계에 있다면, 일상이 무너진 어둠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로 가는 어렵고도 두려운 길, 앞 세대가 희생하며 그 고통의 굴곡진 길을 걸어와 넘겨준 것이다.

나의 이야기는 대체로 ‘어린이 세계’가 되겠지만, 이 시기는 다만 한 시절로 끝나지 않고 단단한 씨앗으로 남는다. 어떤 씨앗은 무수한 열매가 달린 상수리나무로 자랄 것이고 어떤 씨앗은 여기저기 손을 휘감는 덩굴로 자랄 것이다. 우리가 땅을 솎듯이 과거와 현재를 솎아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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