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공연의 무대에서 장소로

경기일보 2023. 5. 1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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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연 호원대 공연미디어학부 교수

얼마 전 서울 한강의 잠수교에서 럭셔리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의 초가을 컬렉션인 프리폴(prefall) 패션쇼가 열렸다. 이날의 공연을 위해 잠수교의 자전거도로는 어느새 약 800m 길이의 런웨이 무대로 변모해 있었고 차도는 패션쇼 관객들의 객석이 됐다. 24시간 내내 부근의 교통을 통제하고 진행할 만큼 대규모로 이뤄진 본 공연은 잠수교라는 특별한 장소에서 펼쳐졌기에 서울시민뿐만 아니라 유튜브로 생방송을 지켜보는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불과 이틀 전인 16일에는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유산 경복궁에서 럭셔리 패션 브랜드 구찌가 주최한 2024 구찌 크루즈 패션쇼가 성황리에 진행되기도 했다. 그간 세계적이자 독보적인 랜드마크에서 선보여온 구찌 크루즈 패션쇼는 2016년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회랑, 2017년에는 이탈리아 피렌체 피티궁전의 팔라티나 미술관, 2018년에는 프랑스 아를의 문화유산인 공동묘지 프롬나드 데 알리스캉, 2019년에는 이탈리아 로마의 팔라티노 언덕과 카피톨리니 미술관 등 매년 역사성과 예술성 깊은 장소에서 진행된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공연은 서울 경복궁의 근정문 및 근정전 행각에서 한국 전통 공간의 특수성을 살려 개최된 것으로 대내외적으로 의미가 깊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패션쇼 공연의 무대가 다양한 장소로 옮겨진 것처럼 현대 공연예술의 무대 역시 어떤 제약도 없는 무한대의 공간으로 그 지평을 넓혀 가고 있다. 교과서적으로 이해되던 연극의 4요소인 배우, 희곡, 관객 그리고 무대는 그 의미가 퇴색했고, 연극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던 ‘무대’는 더 이상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다. 공연이 이뤄지는 공간이 무대라는 정형화된 공간을 넘어 무대 밖의 다양한 장소로 옮겨지기 시작하면서 관객들에게도 색다른 장소에서 즐기는 관극을 추구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장소-특정적 공연(site-specific performance)과 이머시브 시어터(immersive theatre) 같은 공연의 형태들이 바로 그러한 예시다.

장소-특정적 공연은 장소가 지닌 보이지 않는 상호관계를 전제로 어떤 장소에 대한 사건, 역사, 문화, 관습 등을 포함해 장소의 공간성과 물리적인 형태와 기능 등을 모두 포괄하는 공연이다. 공연이 이뤄지는 장소가 실외공간이라면 자연경관, 그리고 건축물과 어우러지는 환경에 초점이 맞춰진 공연의 분위기에 취할 수 있다. 또 공연이 이뤄지는 장소가 실내공간이라면 그 공간 사용의 기능적인 부분과 더불어 실내디자인과 조명 등 관객의 흥미를 끄는 요소들이 장소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관객 몰입형 공연’이라고 불리며 단어 자체에 ‘몰두하다’라는 뜻을 지닌 이머시브 시어터는 기존의 연극과 비교하면 시공간과 감각이 크게 확장되고 그 어떤 요소보다도 관객이 우위에 서며 관객의 참여가 중심이 되는 공연 형태다. 관객은 스토리가 전개되는 방에, 비행기에, 혹은 병원에 스스로 위치해 공연자의 연기를 코앞에서 관람하거나 스스로 그 극의 한 요소로서 작용하며 관극하기도 한다. 따라서 관객이 보다 더 몰입하는 공연의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공연의 무대를 실감이 나는 현장으로 꾸미거나 실제 현장을 무대화하는 것이다. 자연히 그에 따라 공연이 수행되는 장소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게 됐다.

필자는 앞서 예로 설명한 패션쇼 공연들이 장소적 특수성으로 관객의 흥미를 강하게 유발한 것과 같이 무대가 실내공간에서 시작해 실외공간, 그리고 세계의 랜드마크나 주목될 만한 공간들로 점차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를 공연예술의 발전에 있어 매우 긍정적인 신호로 본다. 현대 공연예술에서 이처럼 무대에 대한 한계가 점점 사라지고 지속해서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은 미래의 공연이 나아가야 할 중요한 방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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