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오월 어머니
무릎을 무르팍이라고 하는데, 여기선 그냥 ‘물팍’이라고 해. 나도 요기다 삽화를 직접 그리고 가끔 유화물감 그림 전시도 하는데, 오늘은 숭고하고 사랑스러운 화가들(?) 얘기를 해야겠다.
이곳 남녘 사람들은 엄니가 둘씩이다. 낳고 기른 엄마와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오월 광주의 엄마. 민주 제단에 남편과 아들딸을 바친 엄니, 울엄니. 지난주부터 메이홀에선 ‘오월 어머니들의 그림 농사’ 전시회를 열고 있다. 오프닝은 성대했고, 마침 어버이날 즈음이라 친구들은 오월 어머니들을 위해 떡과 양산도 한 개씩 드리고 그랬다. 지난 1년 동안 예술치유 박사이자 화가인 주홍 샘의 지도로 미술치유의 결과물 ‘소품 수백점’을 전시하고 있다.
미술 수업할 때 모여 계신 ‘오월어머니집’에 한번 구경차 갔었는데, 엄니들이 그림 그리시면서 진도아리랑을 부르시덩만. 민요가 구성져서 한참을 재미나게 들었지. 민주화 유가족인 어머니들 그림을 보노라면 대체로 손들이 하늘을 향해 들린 모습이었다. 오랜 날 투쟁 현장에서,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분노하면서 치켜든 자신의 두 손. 그러면서 꿈을 꾸고 해원한 숱한 내력들이 그 비나리 손에 담겼다.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자성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란 용어를 처음 썼다. 사람은 희망하고 꿈을 꾸는 만큼씩 변화한다는 것. 가령 몇시에 일어나고 싶으면 계속 그 기상 시간을 반복해서 외우고 나면 제시간에 맞춰 깨게 된대. 어머니들이 자성 예언한 만큼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소생하고 부활하리라 믿는다.
나는 바닥에 좌르르 부려진 그림을 구경하면서 무르팍을 오래 꿇었어. 그리운 사람의 얼굴과 눈을 그린 그림은 가슴 아팠다. 학교에서 어버이날 감사편지 쓰기 수업을 했는데 한 녀석이 가장 빨리 제출했대. 선생님이 펼쳐보니 “자세한 얘기는 집에 가서 할게요 - 아들 올림.” 집에 돌아올 남편이나 아들딸을 잃은 오월 어머니들에게 우리 모두 자녀 된 마음이었으면 좋겠네.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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