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 홈 스위트 홈

기자 2023. 5. 18. 03: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집 나비가 어렸을 적 가장 좋아하던 공간은 침대 밑이었습니다. 개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흔히 겪는 일입니다. 어둡고 구석진 곳에 숨으려는 것으로 보이지만, 개들은 원래 입구가 좁고, 깊이가 깊고, 천장이 낮으며, 어두운 곳을 좋아합니다. ‘덴(Den)’이라고 하는 구조입니다. 직역하면 늑대나 여우가 사는 ‘소굴’ 정도인데, 개과 동물이 가장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장소라고 합니다. 그렇게 편안하고, 아무 걱정 없는 공간. 나도 그런 공간 하나 가지고 싶다고 생각해 봅니다. 어디일까요?

김재윤 수의사·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 대표원장

험난하고 유별나게 살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머틀리크루’. 세상 거칠 것 없어 보이던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안식처는 집이었나 봅니다. 시끄러운 음악에 소리만 지르던 그들도 집을 향한 마음만은 달달한 피아노 위에서 노래했습니다. “꿈을 이루려 떠나온 집,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가기는 싫었지만, 길고 구불구불한 여정을 마치고, 오늘 밤, 드디어 오늘 밤,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으로 돌아간다”고.

동물들에게 ‘덴’이 필요하듯이, 사람들에게는 절절히 돌아가고 싶은 집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집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이어야 합니다. 내 집 마련의 꿈이니 내 집 마련의 기회이니 하는 말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내 집 한 칸 갖기가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집값은 왜 비싸고, 그마저 왜 자꾸 오를까요? 새 자동차를 사면서, 몇년 뒤 중고차로 팔 때, 값이 올라 있기를 바라는 바보는 없습니다. 집을 살 때만 유독 값이 오르기를 바랍니다. 새집 사서 실컷 살다, 헌 집으로 만들어 팔 때는 값이 떨어지는 것이 맞지 않나요? 눈만 뜨면 한 덩이씩 생겨나는 그 많은 아파트들은 다 어디로 가길래 집은 늘 모자랄까요? 몇백년 된 골동품도 아니고, 보물도 아닌데, 집은 언제나 귀하고 집값은 끝없이 오릅니다.

우리는 안식처로 삼기 위한 집을 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홈 스위트 홈’을 노래하지 않습니다. 내 집값이 오르면 찬송하고, 어느 동네, 어느 지역, 어떤 아파트를 숭상하는 노래만 지어 부릅니다. 그것만 생각하는 욕망덩어리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그랬고, 우리 세대는 더 그러합니다. 집값을 잡아 보겠다는 정치인에게 열광하는 와중에도, 누구 하나 제 집값 떨어지기만큼은 기대하지 않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우리 세대의 바보 같은 욕망은 내 집 마련이 그야말로 꿈인 세상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기어이 우리는 빌라왕이니 건축왕이니 하는 악인들을 만들어 냈고, 꽃 같은 우리 다음 세대들은 고통받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한두 명 나쁜 놈들 탓이 아닙니다. 쓸모도 없는 우리 세대가 욕심을 부려, 젊은 세대의 희망을 짓밟고 있습니다.

제가 대표해서 사과하고 나서서 해결할 깜냥이 못 되는 탓에, 잘못을 인정하고 응원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우리 젊은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우리집 나비의 ‘덴’처럼 몸을 쭉 뻗어 누우면, 눈이 스르륵 감기고, 가슴이 뻐근한 심호흡이 절로 나오는 그런 공간 하나씩 모두 가질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욕심만 많은 못난 세대들도 부러워 마지않도록 좋은 공간에서 잘살아 주기를 응원합니다.

김재윤 수의사·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 대표원장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