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인식 바꾸는 ‘동시대 공공미술’
도시 빌딩 앞이나 공원, 광장과 같은 공공장소 어딘가에 조각 따위를 세워 놓는 ‘건축 속 공공미술’과 ‘공공장소 속의 미술’이 여러 건조물을 장식하는 수단 혹은 일상에서의 미술 향유를 위한 수동적 시각 덩어리로 존재한다면 ‘동시대 공공미술’은 훨씬 능동적이다. 감상자로 머물던 시민들은 행위주체로 새롭게 위치하며, 예술가들과 함께 미술의 언어로 어떻게 사회 전체의 이익과 요구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목적 자체도 다르다. 건축 및 공공장소 속 미술이 심미성을 전부로 삼는 반면, 동시대 공공미술은 민주주의적 실천 방식을 바탕으로 한 문화공동체 구현과 미술을 통한 ‘사회 변화’에 방점을 둔다. 이 때문에 관련 미술가들은 사회·정치·경제·환경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발언한다. 그리고 작가와 시민들에 의해 구현된 작품들은 단순한 ‘인지’를 넘어 세상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제안하며 행동으로 이끈다.
대표적인 작품이야 워낙 많지만 내가 자주 언급하는 것 중 하나가 융합의 상징으로 거듭난 핑크색 ‘시소’다. 2019년 미국과 멕시코 국경 장벽에 미국 건축가 로널드 라엘(Ronald Rael)이 설치했다. 쇠막대기 하나로 경계를 허물고 단절을 연결로, 갈등을 화합으로 치환한 이 작품은 무엇보다 ‘공존’의 중요성을 세계에 알렸다는 데 의미가 있다.
라엘의 시소가 장소특정적 역사와 정치적 상황을 미술로 재해석함으로써 공공미술이 곧 ‘메시지’임을 보여준 경우라면 카셀 시민들과 협업해 생산한 농작물을 대중과 나눴던 냐산 컬렉티브(Nhasan Collective·베트남)의 ‘텃밭 일구기’ 프로젝트(제15회 카셀 도큐멘타: Kassel Documenta 15, 2022)는 ‘예술과 사회의 새로운 관계 맺기’와 ‘과정의 예술로서의 공공미술’에 대해 곱씹게 한 예이다. 특히 같은 기간 카셀 내 한 클럽에서 개최된 파티는 예술의 확장성을 드러냄은 물론 퀴어(Queer)와 같은 성소수자들의 권리 강조, 인간평등을 축으로 한 반인종주의, 반카스트 운동에 관한 목소리를 공공미술 형식으로 담아낸 사례로 꼽힌다.
이 밖에도 모든 차별과 혐오 종식을 옹호하는 ‘Civic Walls 프로젝트’가 2020년 이후 제작한 여러 벽화는 아시아인과 흑인을 상대로 한 과도한 공권력 사용을 다룬 공공미술로 이해할 수 있다. 2017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에 출품된 아이제 에르크먼(Ayse Erkmen·튀르키에)의 작품 ‘물 위에서’(On the water)와 2022년 네스트 컬렉티브(Nest Collective·케냐)의 압착된 헌옷 설치작업인 ‘보낸 사람에게 돌려주기’(Return to Sender) 등은 환경파괴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경험적 공공미술에 해당한다.
이들 공공미술은 각각의 형식을 지니고 있지만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동시대를 반영하고 서술하고 있다는 사실에선 분모가 같다. 미술은 단지 시각적 대상이 아니라 세상에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문화행위라는 것, 미술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지라도 인식은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의 기록이라는 점에서도 결을 같이한다. 세계 곳곳에서 꾸준히,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는 현상도 눈에 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공공미술은 너무도 후지고 진화는 지나치게 더디다. 아직도 길섶에 자리 잡은 거대한 조각 따위를 공공미술의 전부라 여긴다. 공공미술의 주요 기능인 ‘인식’을 바꾸는 매체로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공공미술이라는 개념이 정책으로 도입된 지 반세기에 가까운 지금도 그렇다.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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