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 볼!] 플레이오프는 뒤집는게 맛... 하위 시드 반란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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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미 프로농구)와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 플레이오프가 한창입니다.
NBA는 30팀, NHL은 32팀 중 16팀이 플레이오프에 나가기 때문에 거의 새로운 시즌이 시작된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1라운드부터 7전4선승제인 장기 레이스가 펼쳐지니까요.
플레이오프 무대에선 아무래도 상위 시드를 받은 팀이 유리합니다. 1~2차전을 홈에서 치러 기선을 제압하기에 쉽습니다. 시리즈가 접전으로 흘러 7차전까지 가더라도 상위 시드 팀의 홈에서 열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 시즌 NBA와 NHL에선 나란히 8번 시드의 반란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동부 8팀, 서부 8팀이 나오는 두 리그에서 동부 콘퍼런스 최하위 시드를 받은 두 팀이 콘퍼런스 파이널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두 팀은 남부 플로리다를 연고로 하는 공통점도 있네요.
바로 NBA 마이애미 히트와 NHL 플로리다 팬서스입니다. 마이애미 히트의 홈 구장 커세야 센터와 플로리다 팬서스의 홈 구장 FLA 라이브 센터는 차로 40분 거리로 매우 가깝습니다.
두 팀은 나란히 올 시즌 동부 8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나와 1번 시드 팀을 꺾는 등 파란을 일으키며 콘퍼런스 파이널 진출을 확정했습니다.
◇ 뜨거운 8번 시드 히트
먼저 히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 팀은 패자부활전 격인 ‘플레이 인 토너먼트’를 두 경기나 거치며 올라왔습니다.
NBA에선 정규리그가 끝나고 콘퍼런스 7~8위, 9~10위가 별도의 단판 승부를 벌입니다. 7~8위 경기의 승자는 플레이오프 7번 시드를 차지하고, 패자는 9~10위 경기의 승자가 다시 한 번 맞붙죠. 그 경기에서 이긴 팀이 8번 시드의 주인공이 됩니다.
히트는 올 시즌을 44승38패로 끝내며 7위로 플레이 인 토너먼트에 나갔습니다. 하지만 8위 애틀랜타 호크스에 105대116으로 패하며 8번 시드 결정전으로 밀립니다. 상대는 토론토 랩터스를 꺾고 올라온 시카고 불스였죠.
히트는 벼랑 끝 승부에서 지미 버틀러와 맥스 스트러스가 나란히 31점을 올리면서 102대91로 승리, 동부 8번 시드를 움켜쥐었습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밀워키 벅스를 만났습니다. 올 시즌 전체 승률 1위(0.707·58승24패) 팀이죠.
거의 모든 전문가가 벅스의 우세를 점쳤지만, 히트엔 ‘승부사’ 버틀러가 있었습니다. 1·2차전을 나눠 가진 뒤 맞붙은 3차전. 버틀러는 56점을 퍼부으며 히트의 기적 같은 2연승을 이끕니다. 히트의 119대114 승리.
이날 4쿼터에 돌입할 때만 해도 벅스가 92-78로 앞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버틀러가 4쿼터에만 21점을 쏟아부으며 극적인 역전에 성공한 거죠. 버틀러의 56점은 플레이오프 사상 네 번째 최다 득점. 마이클 조던(63점)과 앨진 베일러(61점), 도너번 미첼(57점) 다음 가는 대기록이었습니다.
히트는 5차전에서도 연장 승부 끝에 벅스를 128대126으로 물리치며 콘퍼런스 준결승에 진출합니다.
종료 2초 전까지 116-118로 뒤져 있던 히트는 버틀러의 극적인 앨리웁 득점으로 경기를 연장으로 몰고 갑니다. 연장에선 뱀 아데바요의 덩크로 기선을 제압한 뒤 리드를 놓치지 않았죠.
버틀러는 이날도 42점을 터뜨렸습니다. NBA 플레이오프가 16팀 체제가 된 1983-1984시즌 이래로 첫 라운드에서 8번 시드 팀이 승리한 건 이번이 6번째였습니다.
◇ 열정의 아이콘 버틀러
올 시즌 플레이오프 무대를 지배하는 버틀러는 새벽 4시에 일어나 훈련에 매달리는 열정 그 자체인 선수입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딛고 NBA에서 성공 신화를 쓴 인간 승리의 드라마로도 유명하죠.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외곽에서 태어난 그는 친부모의 버림을 받고 노숙자 생활을 했습니다. 이를 딱하게 여긴 고교 농구부 동료의 어머니가 그를 집으로 데리고 왔죠.
친구 어머니인 램버트씨는 자녀들과 똑같이 버틀러를 대했습니다. 수업이나 농구부 연습에 빠지면 엄하게 꾸짖었고, 진로에 대해선 세심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버틀러는 201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30번째로 시카고 불스 유니폼을 입자 눈물을 쏟으면서 램버트씨에게 고마움을 나타냈습니다.
버틀러 하면 가장 기억나는 시리즈가 2020년 파이널입니다. 5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오른 버틀러의 히트는 1라운드에서 4번 시드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4전 전승으로 스윕합니다.
콘퍼런스 준결승에선 밀워키 벅스를 4승1패로 눌렀죠. 당시에도 벅스는 전체 승률 1위 팀이었습니다. 벅스는 2020년과 2023년 모두 전체 최고 승률을 기록하고도 히트에 발목을 잡힌 겁니다. 이쯤 되면 벅스 팬들은 정말 버틀러가 싫을 것 같습니다.
콘퍼런스 파이널에서 보스턴 셀틱스를 제압한 히트는 파이널에서 르브론 제임스와 앤서니 데이비스가 버틴 LA 레이커스를 만납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경기는 5차전이었습니다.
1승3패로 밀린 히트는 레이커스와 접전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마지막 2분여. 버틀러와 르브론은 역사에 남을 ‘쇼 다운’을 펼치죠.
두 선수가 계속해서 점수를 주고받은 가운데 버틀러가 막판 자유투로 승부를 뒤집으며 경기는 히트의 111대108 승리로 끝납니다.
이날 48분 경기에서 47분12초를 뛴 버틀러가 마지막 자유투를 앞두고 펜스에 기대 숨을 고르는 모습이 명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비록 히트는 6차전에서 패하며 레이커스에 우승을 내주고 말았지만, 버틀러의 분전은 많은 농구 팬들의 가슴을 적셨습니다.
◇ 3%를 뚫어라
다시 올 시즌 이야기로 돌아와 볼까요? 히트는 올 시즌 플레이오프 콘퍼런스 준결승에서 뉴욕 닉스를 만났습니다.
뉴욕 닉스와 마이애미 히트, 한 시대를 풍미했던 라이벌입니다. 올드 팬들은 닉스의 래리 존슨과 히트의 알론조 모닝이 주먹다짐을 했던 1998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 4차전을 기억할 것입니다.
NBA 최고 인기 팀 중 하나로 꼽히는 닉스는 10년 만에 플레이오프 콘퍼런스 준결승에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히트의 기세가 더 강했죠. 닉스는 제일런 브런슨이 매 경기 빼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뉴욕의 왕’으로 불리는 줄리어스 랜들이 부진에 빠지며 히트를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히트는 버틀러와 아데바요, 카일 라우리 등이 고루 좋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들 외에도 드래프트에서 외면 받은 선수들이 든든히 뒤를 받쳤습니다. 케일럽 마틴과 덩컨 로빈슨, 맥스 스트러스, 게이브 빈센트 등이 그들이죠.
NBA는 매 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60명을 뽑는데 여기에서 선택 받지 못한 선수가 NBA에 입성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히트의 ‘언드래프티드’ 4인방은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개인 평균 8~12점을 넣으며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4승2패로 뉴욕 닉스를 물리치고 2라운드를 통과한 히트의 콘퍼런스 파이널 상대는 보스턴 셀틱스입니다.
셀틱스는 콘퍼런스 준결승에서 제이슨 테이텀이 역대 7차전 최다 득점(51점)을 올리는 활약에 힘입어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물리치고 콘퍼런스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ESPN은 분석을 통해 셀틱스가 파이널에 올라갈 확률을 97%, 히트가 올라갈 확률을 3%로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수많은 분석을 비웃고 올라온 히트이기에 팬들은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리즈는 한국 시각으로 18일 시작합니다.
◇ 트레이드 후 환골탈태한 레이커스
동부에 8번 시드 히트가 있다면 서부에는 7번 시드의 기적을 이어가는 LA 레이커스가 있습니다.
레이커스는 트레이드가 모든 걸 바꿔놓은 팀입니다. 올 시즌 레이커스는 개막 후 5연패를 당하는 등 첫 10경기에서 2승8패로 부진하며 15팀 중 14위까지 밀렸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던 지난 2월 러셀 웨스트브룩을 내보내고, 디앤젤로 러셀과 말리크 비즐리, 제러드 밴더빌트를 받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는데 이때부터 반등이 시작됐죠. 트레이드 이후 18승9패를 기록하며 서부 7위로 시즌을 마친 레이커스는 플레이 인 토너먼트에서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를 제압하고 7번 시드를 꿰찼습니다.
레이커스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자 모란트가 이끄는 멤피스 그리즐리스를 상대합니다. 51승31패로 서부 2위를 차지한 강팀이지만, 르브론과 데이비스가 버틴 레이커스를 당해내지 못했죠.
레이커스는 두 수퍼스타 외에도 루이 하치무라, 오스틴 리브스, 로니 워커 4세, 러셀 등이 돌아가며 활약하며 4승2패로 시리즈를 따냅니다. 트레이드 이후 로스터가 탄탄해진 효과가 빛을 발했죠.
레이커스는 콘퍼런스 준결승에서 스테픈 커리가 이끄는 ‘디펜딩 챔피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만납니다. 르브론과 커리는 르브론이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시절 4년 연속 파이널에서 만난 사이죠. 결과는 커리가 우승 3회(2015·2017·2018), 르브론이 우승 1회(2016)였습니다.
올 시즌 최고 흥행 카드로 여겨졌던 이 매치업의 결과는 레이커스의 4승2패, 승리였습니다. 데이비스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레이커스의 수비에 워리어스가 공격을 제대로 풀어가지 못했습니다.
르브론의 레이커스는 콘퍼런스 파이널에서 니콜라 요키치가 이끈 올 시즌 서부 1위 덴버 너기츠를 만났습니다. 1차전에선 너기츠가 132대126으로 승리했죠.
한국 나이로 마흔이 됐지만 건재를 과시하는 르브론이 너기츠를 넘어 파이널에 진출한다면 또 한 번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과 ‘GOAT(Greatest Of All Time·역대 최고 선수) 논쟁이 뜨거워질 것 같습니다.
역대 최다 득점 등 수많은 통산 최고 기록을 보유한 르브론이 조던에 특히 밀리는 것이 우승 횟수인데 이번에 르브론이 5번째 우승을 차지한다면 조던(6회)에 더욱 근접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뛰어난 BQ로 코트를 장악하는 요키치의 너기츠를 넘기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만약 르브론과 버틀러가 모두 콘퍼런스 파이널을 통과한다면 팬들은 2020년 파이널 후속편을 보게 됩니다. 여러모로 흥미진진한 플레이오프입니다.
◇ 6번 시드로 정상 오른 로키츠
꼭 올 시즌이 아니더라도 NBA에선 하위 시드가 일으킨 반란의 역사를 제법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장 낮은 시드로 우승을 차지한 팀은 1994-1995시즌의 휴스턴 로키츠입니다. 그전에 1993-1994시즌 얘기부터 하죠.
휴스턴 로키츠는 1993-1994시즌 서부 2번 시드를 차지하며 플레이오프에 올라갑니다. NBA를 대표하는 센터 중 한 명인 하킴 올라주원이 MVP를 차지한 시즌이었죠. 로키츠는 플레이오프에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피닉스 선스, 유타 재즈를 차례로 물리치고 결승에 올랐습니다.
파이널에서 맞붙은 팀은 뉴욕 닉스.
올라주원에게 대학 시절 패배의 아픔을 안겨준 패트릭 유잉이 버틴 팀이었죠(올라주원의 휴스턴 대학은 1984년 NCAA 파이널에서 유잉이 이끈 조지타운 대학에 패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올라주원의 승리였죠. 7차전까지 가는 승부 끝에 로키츠가 닉스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올라주원은 파이널 MVP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그리고 1994-1995시즌. 올라주원을 비롯해 많은 선수들이 부상에 허덕이며 로키츠는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가질 못합니다. 결국 시즌 중반 올라주원의 대학 선배인 클라이드 드렉슬러를 트레이드로 데려온 로키츠는 서부 6위(47승35패)로 시즌을 마칩니다.
6번 시드 로키츠의 기세는 1라운드부터 뜨거웠습니다.
서부 3위 유타 재즈를 3승2패로 꺾었고, 콘퍼런스 준결승에선 2번 시드 피닉스 선스를 4승3패로 물리치죠. 그리고 서부 파이널에서 전체 승률 1위 팀인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4승2패로 제압합니다. 파이널 상대는 돌아온 마이클 조던을 콘퍼런스 준결승에서 물리친 샤킬 오닐과 앤퍼니(페니) 하더웨이의 올랜도 매직이었죠.
그 시절엔 이른바 4대 센터라 불리는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하킴 올라주원과 패트릭 유잉, 데이비드 로빈슨, 샤킬 오닐이 그들이었습니다. 1993-1994시즌 파이널에서 유잉을 누른 올라주원은 1994-1995시즌 서부 파이널에서 로빈슨을 꺾은 다음 결승에서 오닐을 만나게 된 겁니다. ‘도장 깨기’가 따로 없었죠.
전문가들은 오닐과 페니가 버틴 매직의 우세를 점쳤지만 뚜껑을 열자 로키츠의 4전 전승으로 시리즈는 끝나버렸습니다.
1차전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매직은 종료 10초를 남기고 3점이 앞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파울을 얻은 매직의 닉 앤더슨이 자유투 2개를 놓치고 말았죠. 다행히 다시 리바운드를 잡은 앤더슨은 또 파울을 얻어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앤더슨은 또 자유투 2개를 실패합니다.
로키츠 입장에선 기적과도 같은 앤더슨의 자유투 연속 4개 실패였죠. 그해 앤더슨의 자유투 성공 확률은 70%였으니 이건 뭐 귀신에 홀렸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로키츠의 케니 스미스가 종료 1.6초를 남기고 동점 3점슛을 꽂으며 경기는 연장으로 흘러갔습니다.
연장에서도 접전은 이어졌습니다. 종료 5.5초 전 매직의 데니스 스캇이 동점을 만드는 3점슛을 성공합니다. 마지막 순간 로키츠의 드렉슬러가 레이업 슛을 시도했고, 공이 림을 맞고 나오자 올라주원이 팁인으로 연결해 로키츠가 승리를 가져갑니다.
1차전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둔 로키츠는 파죽지세로 2~4차전을 잡아내면서 정상에 오릅니다. 올라주원은 2연속 파이널 MVP에 올랐고요. 이렇게 6번 시드로 NBA 우승을 차지한 1994-1995시즌의 로키츠가 가장 낮은 시드로 NBA 정상에 오른 팀으로 역사에 남아 있습니다.
8번 시드로 결승전에 오른 팀도 있습니다. 바로 1998-1999시즌의 뉴욕 닉스입니다.
파업 여파로 단축 시즌으로 열린 이 시즌에 닉스는 동부 8위(27승23패)로 플레이오프에 턱걸이합니다. 당시 앨런 휴스턴, 라트렐 스프리웰의 ‘트윈 테러’에 유잉과 래리 존슨 등이 뒤를 받쳤죠. 1라운드에서 동부 1위 마이애미 히트를 3승2패로 제압한 닉스는 애틀랜타 호크스와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누르며 결승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로빈슨과 팀 던컨이 ‘트윈 타워’로 버틴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1승4패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골밑에서 로빈슨과 던컨을 상대해야 했을 유잉이 부상으로 파이널에 뛰지 못한 것이 치명적이었습니다. 1998-1999시즌 플레이오프는 던컨의 시대가 열리는 시리즈였습니다.
◇ 역대 최다승 팀을 꺾다
지금까지 NBA를 훑어보았습니다. 이젠 NHL을 살펴볼까요?
올 시즌 8번 시드의 반란을 이끄는 플로리다 팬서스는 정규리그에서 42승32패8연장패(승점 92)로 플레이오프에 올랐습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 상대는 정규시즌 1위(65승12패5연장패·승점 135)의 보스턴 브루인스. NHL에선 승리할 경우엔 승점 2, 연장전에서 패할 경우엔 승점 1을 부여합니다.
2022-2023시즌의 브루인스는 NHL 역대 최다승과 최다 승점을 기록한 팀이었습니다. 당연히 대부분 전문가가 브루인스의 승리를 예상했고요. 그런데 팬서스가 7차전 접전 끝에 브루인스를 4승3패로 꺾고 콘퍼런스 준결승으로 진출한 겁니다.
보스턴 지역을 제외한 미국 현지 스포츠 팬들은 브루인스의 탈락에 즐거워했죠.
2000년 이후 보스턴 연고 팀이 미국 4대 프로스포츠에서 12회(수퍼볼 6회, 월드시리즈 4회, NBA 파이널 1회, 스탠리컵 1회)나 우승하면서 다른 지역 팬들 사이에선 ‘안티 보스턴’ 분위기가 형성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브루인스의 충격적인 탈락으로 소환된 팀이 바로 보스턴을 연고로 하는 NFL(미 프로풋볼)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입니다.
전설적인 쿼터백 톰 브래디가 이끈 패트리어츠는 2007시즌 정규리그에서 16전 전승의 ‘퍼펙트 시즌’을 보내고도 정작 수퍼볼에서 정규리그 10승6패의 뉴욕 자이언츠에 무릎을 꿇으며 우승에 실패했습니다. 당시 브래디를 꺾은 뉴욕 자이언츠의 쿼터백 일라이 매닝은 4년 뒤 수퍼볼 재대결에서도 또 한 번 브래디를 물리치며 ‘브래디 천적’으로 남게 됩니다.
역대 최다승 팀의 운명은 NBA와 MLB(미 프로야구)에서도 비슷했습니다.
스테픈 커리를 앞세운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2015-2016시즌 73승9패로 1995-1996시즌 시카고 불스(72승10패)를 제치고 최다승을 올렸죠.
하지만 파이널에서 르브론 제임스가 이끈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7차전 승부 끝에 3승4패로 패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르브론이 고향인 오하이오주에 안겨준 귀중한 우승이었죠.
MLB 역대 최다승 팀인 2001년의 시애틀 매리너스도 우승을 이뤄내진 못했습니다. 바로 루키인 스즈키 이치로가 센세이션을 일으킨 시즌이었죠.
이치로가 타율 0.350, 242안타, 56도루로 타격왕과 도루왕을 거머쥐며 신인왕과 아메리칸리그 MVP를 석권한 매리너스는 116승 46패로 최다승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매리너스는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에 2승4패로 패하며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했죠.
다시 팬서스 얘기로 돌아와 봅니다.
올 시즌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브루인스를 물리친 팬서스는 서부 콘퍼런스 준결승에서 토론토 메이플리프스와 맞붙습니다. 아이스하키의 나라 캐나다에서 가장 큰 도시를 연고로 하는 메이플리프스는 야구로 따지면 뉴욕 양키스와 비슷한 위상을 지닌 명문 인기 구단입니다.
하지만 메이플리프스도 최근 플레이오프 성적이 신통치 않았죠. 이번이 10년 만의 콘퍼런스 준결승 진출이었습니다.
2016-2017시즌부터는 무려 6년 연속 1라운드 탈락(2019-2020시즌은 그해에만 적용한 퀄러파잉 라운드에서 탈락)의 아픔을 맛봤습니다.
오랜만에 2라운드에 오른 토론토 팬들은 신이 났지만, 팬서스는 그 팬들의 바람이 무색하게 1~3차전을 모두 잡아냅니다. 상대적으로 비인기 구단이자 8번 시드 팀인 팬서스는 결국 4승1패로 시리즈를 가져가며 토론토 팬들을 울렸습니다.
팬서스는 2021-2022시즌 정규리그 1위로 1번 시드를 차지하고도 콘퍼런스 준결승에서 탬파베이 라이트닝에 4전 전패를 당하며 탈락했는데 이번엔 8번 시드로 나가 오히려 콘퍼런스 결승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팬서스엔 관중들이 모형 쥐를 아이스 링크로 던지는 문화가 있습니다. 1995-1996시즌 라커룸에 갑자기 쥐가 튀어나와 놀란 선수들이 쥐를 잡았고, 그 시즌에 팀이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올랐는데 이를 길조로 여기면서 생긴 전통입니다.
◇ 8번 시드로 스탠리컵 거머쥔 킹스
NHL은 NBA보다는 이변이 자주 발생합니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처지는 팀이라도 골리가 미치는 날에는 웬만하면 실점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죠. 스틱으로 퍽을 다루는 종목이다 보니 의외의 굴절로 골이 터지는 장면도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NHL에선 하위 시드 팀의 업셋이 종종 일어납니다. 플레이오프 진출 팀 중 가장 낮은 시드인 8번 시드 팀이 우승을 차지한 경우도 있고요. 바로 2011-2012시즌의 LA 킹스입니다.
킹스는 시즌 초반 부진으로 테리 머리 감독이 경질되고 대행을 거쳐 대릴 수터가 지휘봉을 잡는 등 혼란 끝에 겨우 서부 8위(40승27패15연장패)를 차지합니다. 승리한 경기보다 패배한 경기가 더 많은 정규리그였죠.
그런데 플레이오프에 올라가더니 완전히 달라진 팀이 되어버립니다.
골리 조나단 퀵이 미친 선방을 보여준 가운데 더스틴 브라운과 마이크 리처즈, 저스틴 윌리엄스 등이 맹활약하면서 1번 시드 밴쿠버 커넉스, 2번 시드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3번 시드 피닉스 카요티스를 연달아 물리치고 스탠리컵 파이널에 오르죠.
파이널에서 대결한 팀은 전통의 강호 뉴저지 데블스. 킹스는 데블스마저 4승2패로 제압하며 사상 첫 스탠리컵 정상에 오릅니다.
선방 퍼레이드를 펼친 퀵이 플레이오프 MVP에게 주어지는 콘 스마이스 트로피의 주인공이 됐죠. 레이커스와 다저스 등에 밀려 LA 지역에서 인기가 상대적으로 없었던 킹스는 2013-2014시즌에도 우승하면서 LA 스포츠 팬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 ‘가을 좀비’ 카디널스
MLB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팀 숫자가 적어 하위 시드 팀의 반란이란 말이 사실 어울리진 않습니다. 그렇다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정규리그 최저 승률 팀은 어디일까요?
2006시즌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입니다.
카디널스는 2006시즌에 83승78패로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해 중부지구 팀들이 워낙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둔 탓에 1위를 차지하긴 했습니다만 다른 팀과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이었죠. 승률이 0.516에 불과했거든요. 그해 정규리그에서 카디널스보다 좋은 성적을 올린 팀은 30팀 중 12팀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카디널스는 ‘가을 좀비’란 별명답게 플레이오프에서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선보입니다.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 정규리그에서 88승74패를 거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3승1패로 꺾은 카디널스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그해 97승(65패)을 올린 뉴욕 메츠마저 4승3패로 물리칩니다.
‘가을 야구’에선 이른바 ‘미친 선수’들이 나오기 마련인데 카디널스에선 당시 24세의 젊은 포수 야디어 몰리나가 중심 타자급 활약을 펼치죠.
특히 그는 챔피언십시리즈 7차전 9회초 1-1 상황에서 투런 홈런을 치면서 3-1을 만듭니다. 그리고 9회말 당시 25세의 불펜 투수 애덤 웨인라이트가 마무리로 등판, 9회말 2사 만루의 위기에서 벗어나며 팀을 월드시리즈로 이끌죠. 이후 몰리나와 웨인라이트는 카디널스에서 15년 이상 뛰며 전설이 되었습니다.
대망의 월드시리즈 상대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95승67패).
카디널스는 크리스 카펜터, 제프 위버, 제프 수판 등 선발진이 잘 던지고, 173cm의 단신 타자 데이비드 엑스타인이 13타수 8안타 4타점으로 맹활약하며 타이거스를 4승1패로 제압, 통산 10번째 월드시리즈 정상에 등극합니다. 엑스타인이 MVP에 뽑혔죠.
카디널스가 2004년 105승, 2005년 100승을 할 때는 정작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루지 못하다가 2006년 83승으로 미끄러졌을 때 우승을 차지한 걸 보면 정말 ‘야구 모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 브래디를 두 번 물리치다
NFL 수퍼볼 챔피언 중 정규리그에서 가장 고전했던 팀을 찾으라면 2011시즌의 뉴욕 자이언츠를 들 수 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 자이언츠는 2008년 수퍼볼에서 정규리그에서 16전 전승을 거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꺾고 우승한 적이 있죠. 그때 자이언츠의 정규리그 성적이 10승6패였는데 2011시즌엔 더 나쁜 9승7패였습니다.
간신히 5할을 넘긴 승률을 기록한 자이언츠는 플레이오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애틀랜타 팰컨스를 물리친 뒤 디비저널 플레이오프에서 정규리그 최다승(15승1패)의 그린베이 패커스도 제압합니다. 콘퍼런스 결승에선 13승3패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꺾었죠.
2012년 수퍼볼(수퍼볼은 정규리그 이듬해에 개최)은 4년 만에 열린 리턴 매치였습니다. 제가 취재를 위해 유일하게 직관한 경기이기도 하고요.
톰 브래디가 이끄는 패트리어츠는 설욕을 별렀지만, 이번에도 일라이 매닝의 자이언츠에 무릎을 꿇고 맙니다. 자이언츠가 21대17로 승리했고, 팀 우승을 이끈 쿼터백 매닝은 두 번째 수퍼볼 MVP의 영광을 차지합니다. 수퍼볼 7회 우승에 빛나는 브래디는 10번 수퍼볼에 올라 딱 세 번 패했는데 그 중 두 번이 매닝에게 당한 패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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