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건설노조, 조선일보에 정면 반박 "허위, '검경' 조력 의심"

최승영 기자 2023. 5. 17.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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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기자회견 "노조 간부, 양회동 열사 분신 말렸다... 언론윤리 선 넘어"

양회동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이 분신할 당시 노조 간부가 이를 말리지 않았다는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과 건설노조가 “여론을 선동하기 위한 악의적 보도”라며 정면 반박하고 나섰다. 보도 자체가 “명백한 허위”이고 “유가족과 목격자에게 2차 가해를 자행”해 언론 윤리를 위반했으며, 보도에 쓰인 CCTV 영상 유출경위에서 "검찰과 경찰의 조력"이 의심된다는 비판이다.

언론노조와 건설노조는 1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8층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16~17일 조선닷컴과 조선일보 지면에 게재된 보도에 대해 반박했다. 조선일보는 '양 지대장이 지난 1일 노동절에 분신할 당시 현장에 있던 노조 간부 A씨가 말리지 않았다'는 취지의 보도를 CCTV 영상, 목격자 진술 등을 근거로 내놨다. 이에 대해 김준태 건설노조 교육선전국장은 “A씨는 열사의 분신을 말리려 했다. 양희동 열사는 목격자와 조우하기 전 이미 휘발성 물질을 자신의 몸과 주변에 뿌린 상황이었고 조우 당시엔 한 손에 라이터를, 다른 한 손엔 또 다른 휘발성 물질을 들고 있었다”며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에 따라 A씨는 섣부르게 접근할 수 없었고, 불의의 사고에 대비해 대화로 설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언론노조와 건설노조는 1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16~17일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반박했다. (언론노조 제공)

이어 “(말리지는 않고) 휴대전화를 만졌다라고 언급되는 내용에 대해선, 열사가 동료들에게 메신저로 자신의 결정을 이미 알렸고, 한 동료가 열사를 어떻게든 말리라며 전화를 하고 열사에게 통화를 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A씨와) 전화가 오가던 상황이었다”며 “열사의 결정을 최대한 막으려고 했던 노력이 있었음에도, 조선일보는 그것을 마치 악의적으로 휴대폰만 만지고 있었던 상황으로 의도적으로 부풀려서 보도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신선아 변호사(건설노조 100인 변호인단)는 “일반적으로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것을 사실이라고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쓰려면 명백한 근거가 존재해야 할 것”이라며 “CCTV 화면을 보고 A씨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게 보도의 주된 내용이다. CCTV엔 보통 소리가 녹음되지 않기 때문에 A씨의 움직임, 당시 상황을 봤다는 목격자 진술 몇 가지가 제시됐을 뿐 고인과 A씨가 나눈 말에 대한 내용은 빠져있다. (중략) 일부 사실만 선별하고 부각해 악의적으로 사실관계를 왜곡한 허위보도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보도 이후 당시 현장 상황이나 사실관계 등과 관련해 '현장에 있었던 YTN 기자의 발언이 담긴 보도', '강릉경찰서 관계자의 설명이 포함된 기사' 등이 타 매체를 통해 지속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관련기사: <"분신 안 말려" 조선일보 왜곡에, 수사 경찰 "취재 없었다">(한겨레), <노동자 분신 목격 언론인 "현장 있던 노조 간부 만류 취지 말 들었다">(미디어오늘))

해당 보도가 유가족과 목격자 등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중한 2차 가해란 비판도 나왔다. 실제 목격자인 간부 A씨는 양 지대장과 초중고 동창이고 가족들끼리도 교류가 있는 가까운 사이로 현재 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박미정 건설노조 부위원장은 이날 “조선일보가 민주노총과 건설노조를 혐오한다는 사실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취재’와 보도‘라는 이름 하에 벌인 행태는 언론 역할과 윤리로서도, 인간으로서도 넘지 많아야 할 선을 넘었다”는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김준태 교육선전국장은 “조선일보는 사건 이후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목격자의 목격자에게 집요하게 ‘왜 막지 못했냐’가 아니라 ‘왜 막지 않았냐’라는 결론을 이미 정해놓고 접근을 해서 답변을 유도하고자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의 모습.(언론노조 제공)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아무도 사과하지 않으니 저라도 사과하겠다. 양회동 조합원과 그 주변의 동지들, 가장 마음 아프실 유족분들께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사죄의 말씀을 먼저 드린다”고 했다. 그는 “새 시대에 맞는 언론운동으로서 안티조선운동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저널리즘의 원칙에 기반해 논쟁과 토론을 해야한다고 저는 강력히 주장해왔다. 그러나 어제 조선일보의 처참한 보도는 최소한의 합리성을 상실한 명백한 허위조작 선동행위로 규정한다”며 “조선일보 노조 관계자께 호소한다. 언론의 이름을 내걸고 다른 노동자를 위협하고 혐오하고 죽음마저도 왜곡하는 행위가 조선일보 언론노동자들이 지향하는 언론윤리에 부합하는 것인지 스스로 엄정히 평가하고 시민들 앞에 결과를 공개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보도에 주요하게 사용된 CCTV 영상 등이 “검찰과 경찰 조력”을 통해서만 나올 수 있는 자료란 의혹도 제기됐다. 단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기사 속 갈무리로 쓰인 영상은 독자로부터 제공받았다고 했으나 현장 확인 결과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 종합민원실 건물 외부를 촬영하는 폐쇄회로티비(CCTV)인 것임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목격자 진술 조사에 대한 내용도 경찰로부터 흘러나왔을 개연성이 크”며, “양희동 열사 마지막 행적에 관한 부분도 열사의 차량 블랙박스를 확보해 가지고 있었던 경찰과 이를 넘겨받은 유가족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내용들”이라고 했다.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은 “정치권력이 양해동 열사를 죽음으로 내몰아놓고 그들과 한편이 된 언론권력이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 수 있는 혐오 범죄를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저지르고 있다”며 “조선일보의 어제 보도는 검찰과 경찰로부터 자료를 받아 작성됐다는 정황이 여러 가지가 있다. 유족과 당사자 동의도 받지 않은 자료를 조선일보란 특정 언론에 넘겨 왜곡‧선동할 목적으로 사용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조선일보의 악의적인 보도 행태와 이에 조력한 정황이 의심되는 검찰과 경찰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묻고, 윤석열 정권의 사과를 받아낼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 (언론노조 제공)

신 변호사는 “허위 보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명예훼손 고소 및 기사 삭제 정정 보도 청구를 할 예정”이라며 “정신적 충격이 큰 유족과 목격자 A씨에게 근거 없는 왜곡 보도를 통해 고통을 한층 가중한 부분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등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보도에 사용된 CCTV 영상의 출처 등에 대해선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공무상 비밀누설죄 위반 소지 등을 두고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한 고소고발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언론시민단체와 사회 원로 등은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 보수언론의 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새언론포럼 등 원로 언론인 단체는 17일 공동성명을 통해 “우리는 그의 죽음이 정권의 무리한 수사와 노조 탄압에 따른 사회적 타살임이 분명하다고 판단한다”며 “노조 혐오 여론몰이에 홍위병 역할을 한 보수재벌언론의 책임 또한 매우 크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기자 출신이자 초대 민주노총 위원장과 언론노조 위원장을 지낸 권영길 민주노총 지도위원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건설노동자 양회동은 스스로 목숨을 던졌지만 그것은 윤석열 정권과 조선일보 같은 언론이 발맞춰 저지른 사회적 살인”이라고 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이날 성명에서 이번 보도가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노조혐오’ 정책과 (노동)혐오를 자극하는 조선일보의 보도 시스템이 만난 결과로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언론연대는 조선일보 자회사 '조선NS' 소속 기자가 해당 기사를 썼고 지면에까지 실린 점을 거론, “조선일보는 그동안 자회사인 조선NS를 통해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혐오’를 증폭시키는 기사를 지속해서 작성해 왔다"고 비판했다. 이어 ”조선일보 구성원들에게 묻고 싶다. 조선NS가 취재윤리에 입각해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며 ”기사는 조선일보 지면에도 실렸다. 더 이상 ‘NS는 자회사다. 본사에서 쓰는 기사가 아니니 상관없다’는 식의 태도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이제라도 기자로서 반성하고 책임 있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회견의 원인이 됐던 조선일보 지면 보도 캡처.

조선일보 보도 후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이날 페이스북에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는 글을 게시한 데 대해서도 언론연대는 “사회 갈등을 조정해야 할 주무부처의 장관이 노조 혐오 확성기 역할을 자행한 것”이라며 “양희동 열사의 죽음을 진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은 다름 아닌 윤석열 정부와 원희룡이다. 원희룡 장관은 혐오선동을 중단하고 사퇴로 그 직에 맞는 책임을 져야한다”고 비판했다.

앞서 양 지대장은 지난 1일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했는데 공갈이라고 한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유서를 남기고 분신했다. 그는 지역 건설사들과 교섭 과정에서 조합원 고용과 노조 전임자 활동비 등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공동공갈’ 혐의 수사를 받아왔다. 건설노조는 16~17일 서울 중구 등에서 양회동 지대장을 추모하고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진행했다. 조선일보 보도 뒤 보수성향 시민단체는 노조 간부를 ‘자살방조’ 혐의로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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