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의 ‘민족주의 자극’ 재선 전략에 튀르키예 야권은 ‘쿠르드족과 거리’ 고심

손우성 기자 2023. 5. 17.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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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결선투표 관전포인트
“정권 교체 땐 테러로 몸살”
에르도안, 선거 내내 주장
친쿠르드 클르츠다로을루
‘표 확장성’ 놓고 선택 기로
캐스팅보트로 뜬 오안
“쿠르드족과는 선 그어야
튀르키예 남성이 대통령 선거 다음날인 지난 15일(현지시간) 이스탄불에 있는 공화인민당 대표이자 야권 단일 대선 후보인 케말 클르츠다로을루의 광고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민족주의 정서가 확인됐다.”

뉴욕타임스(NYT)는 16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 1차 투표 결과를 이렇게 분석했다. 여론조사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선거 기간 내내 쿠르드족과 야권의 관계를 물고 늘어지며, 정권을 내줄 경우 튀르키예 전역이 테러로 몸살을 앓을 것이라고 선전했다. 반면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 대표는 인구의 15~20%에 달하는 쿠르드족의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았다. 결과는 49.5%의 지지를 얻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판정승.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44.9%의 득표율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민족주의 성향의 지지 기반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며 사실상 쿠르드족 이슈가 승패를 갈랐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오는 28일 결선투표에서도 쿠르드족을 희생양 삼아 재집권 시동을 걸 가능성이 커졌다.

문제는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다. 야권 내에서조차 결선투표까지 쿠르드족과 거리를 두고 민족주의 메시지를 쏟아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1차 투표에서 쿠르드족 표심을 대거 흡수한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로선 선택의 갈림길에 선 셈이다.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와 연합했던 민주진보당(DEVA) 고위 인사인 이드리스 사힌은 NYT와 인터뷰하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쿠르드족 공격은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를 깎아내리는 데 고통스러울 정도로 효과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에르도안 대통령은 유세장마다 튀르키예 쿠르드노동자당(PKK) 관계자가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에게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장면을 악의적으로 짜깁기해 방영했다. 쿠르드족을 악마에 비유하고 시리아 내전으로 흘러온 난민 300만명을 즉시 추방하겠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WP는 “악마인 쿠르드족과 손잡은 야권이라는 프레임은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가 집권할 경우 선보일 방대한 이념 스펙트럼에 대한 두려움을 일으켰다”고 평가했다.

1차 투표에서 5.17%의 지지율을 얻어 ‘캐스팅보트’로 떠오른 시난 오안 승리당 대표가 극단적인 민족주의 성향의 정치인이라는 점도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에겐 부담이다. 오안 대표는 이날 AFP통신과 인터뷰하면서 “에르도안 대통령과 클르츠다로을루 대표 모두 지지하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반드시 쿠르드족 무장세력과는 선을 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종류의 테러 세력에 반대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며 “테러 단체와 거리를 두지 않으면 나는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주진보당 고위 인사 사힌은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1차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유권자를 끌어오고, 오안 대표에게 투표했던 이들을 설득할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튀르키예리포트’의 칸 셀쿠키 국장도 NYT에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의 승부처는 교차 투표”라며 “에르도안 대통령을 선택한 표심을 돌리기 위해선 보다 민족주의적인 어조를 택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훼손한 튀르키예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되찾아오겠다는 기존의 입장에 반할 뿐더러 1차 투표에서 표를 몰아준 쿠르드족의 표심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의 전반적인 선거 캠페인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6개 야당이 연합한 상황에서 각 정당 대표들이 유세장마다 모습을 드러내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에게 집중됐어야 할 여론이 분산됐다는 시각도 있다. 이스탄불 정치연구단체인 ‘이스탄폴’은 “야권은 결선투표 전략을 전혀 세우지 않은 것 같다”며 “지금의 야당은 난파선을 청소하는 데 며칠을 낭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번 선거 최대 실수”라고 말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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