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일가 중 유일한 사죄, 비리 폭로…손자 전우원씨 인터뷰

기자 2023. 5. 17.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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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피해자 만나고 ‘지옥 같은 삶’ 알게 됐다”
전두환 대신 고개숙인 손자 전우원

“ ‘5·18이 북한군 소행이고 계엄군 발포도 없었다’는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피해자들을 만나보거나 광주에 가본 적이 있나요?”

흰색 셔츠를 걷어올린 젊은 청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는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우리 할아버지에게 얼마나 많은 혜택을 받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사람들을 독재자였던 ‘할아버지 추종세력’이라고 규정한 이는 다름 아닌 2021년 11월 사망한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의 손자 우원씨(27·사진). 그는 전씨의 둘째 아들 재용씨의 아들이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미국 뉴욕의 한 회계법인에서 일했던 우원씨는 공개적으로 할아버지를 ‘5·18학살자’로 규정했다. 그러고는 입국해 광주의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전씨 일가 중 5·18과 관련해 사죄한 사람은 그가 처음이다. 전씨는 3남1녀를 뒀으며, 우원씨를 포함해 11명의 손자·손녀가 있다.

청년의 거침없는 행보를 두고 여러 궁금증이 일었다. 재혼한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이라거나 ‘약물 과다 복용자’의 돌발행동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5·18 피해자들은 우원씨를 기꺼이 품어주며 용서했다. 이기봉 5·18기념재단 사무처장은 “충분히 (사죄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우원씨의 용기는 전씨 일가와는 별개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했다.

3월13일부터 ‘할아버지의 비자금’으로 호화롭게 생활하고 있는 일가의 비리를 폭로하고, ‘5·18학살 책임이 할아버지에게 있다’며 사죄하고 있는 우원씨를 직접 만났다.

인터뷰는 5·18 43주년을 사흘 앞둔 지난 15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됐다. 우원씨가 국내 일간지와 인터뷰를 진행한 것은 경향신문이 처음이다.

- 당신은 ‘이중국적자’입니까.

“1996년 1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고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갔습니다. 자원입대해 한국에서 2년 군 복무를 했고 다시 미국 대학에서 경영학과 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3월까지 뉴욕에 있는 회계법인 전략컨설팅 부서에서 일했습니다. 한국 국적에 미국 영주권이 있습니다.”

“할아버지, 국군 명예 위한다며 늘 변명…가족들은 어둠서 나왔으면”

집안 자산 ‘천문학적 규모’일 것
내 명의로 회사 세워진 것도 파악
추징금 929억원 내고도 남을 듯

- 갑자기 세상에 나왔습니다. 계기가 있습니까.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살아가는 과정에서 항상 느끼고 마음에 담아뒀던 것을 꼭 한번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큰 파장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5·18 이후 43년이 흘렀지만 저희 가족들이 갖고 있는 생각은 바뀌지 않습니다. 계속 방관하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서 해방되고 싶었고 진실도 더 알아내고 싶었습니다. 인터넷 방송 직전 회사에 미리 ‘사직하겠다’고 얘기하고 시작한 겁니다.”

- 가족들에게 미납된 할아버지 추징금(929억원)을 내고도 남을 자산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예전에는 금융실명제도 없었고 규제도 약했습니다. 추적할 수 없는 연 10% 이율의 무기명 채권을 많이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할아버지 집권 당시 공개된 비자금 규모만 몇천억원입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정말 재산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40년 정도가 흘렀으니 ‘천문학적 규모’의 자산을 갖고 있다는 건 압니다.”

- 현금이 가득 쌓인 ‘연희동 비밀금고’의 존재가 주목받았는데요.

“저는 금고를 직접 본 적도 없고 그건 사실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할아버지는 충성하면 ‘경제적 보상(돈)’으로 지배했습니다. 그런 시스템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연희동을 찾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는데 항상 돈봉투를 받아 갔습니다. 인근 학교의 체육관을 빌려 일가족을 포함해 수십명이 배드민턴 경기를 하기도 했는데 끝나면 역시 봉투를 받았습니다.”

- 지금도 가족들이 차명으로 재산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한국에 입국한 이후 세무당국을 통해 확인했는데 제 명의로 회사가 세워졌었고 주식들이 계속 옮겨 다녔다는 점을 처음으로 파악했습니다. 10곳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모두 국내 법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된 기록이 없었습니다.”

- 구체적으로 확인한 사례가 있습니까.

“2006년 어린 저에게 3억~4억원 정도의 증여세가 부과된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증여받았던 재산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는데 없다고 합니다(세무 전문가는 이 정도의 세금이 부과됐다면 증여된 재산이 10억원 정도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사실을 당시 가족의 재산을 추적한 검찰이나 당국은 알고 있었을 텐데 저를 상대로 어떤 조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공무원들에 대한 신뢰가 크지 않습니다.”

압수수색 전까지 연희동 손님 북적
그가 치매 걸리고 재산분배 끝나니
발길 끊기며 ‘복종 체계’ 깨지더라

우원씨는 검찰이 2013년 연희동 자택을 압수수색하기 전까지는 전씨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전씨 일가는 매주 일요일 연희동에 모이는 규칙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청와대 생활문화가 그대로 집으로 옮겨온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신처럼 받들었고, 할아버지는 마피아 보스 같았다. (할아버지는) 두려움과 불편함의 존재였고 고문당하는 것 같아 나는 가기 싫었다”고 했다.

가족들의 이런 규칙은 전씨가 알츠하이머병(치매)에 걸리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전씨는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리고 재산분배가 다 이뤄지고 난 다음부터는 찾는 사람들이 없어졌다”면서 “가족들 중에도 몇 달씩 찾지 않는 분들이 있었다. 돈이 사라지니 ‘복종 체계’가 깨졌다”고 했다.

-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것은 사실입니까.

“2015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에서 군 복무를 하고 병장으로 전역했습니다. 휴가 때 연희동을 찾아가면 제가 군대에 간 것조차 기억을 못했습니다. 1분 후 같은 질문을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감정 조절이 안 돼 평소와 달리 윽박지르기도 했습니다. 할아버지의 골프 영상(2019년 11월)이 공개됐을 때도 사실 굉장히 상태가 안 좋았습니다. 치매가 심해졌는데도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 아무도 치매 사실을 안 믿는 걸 보며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 할아버지 장례식에는 참석했습니까.

“코로나19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에서 사망 소식을 들었지만 감정기복이 크게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생전에 해주셨던 말 중 ‘어느 곳에서든 첫 100일은 죽을 듯이 열심히 일해라. 그러면 인정을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다’고 했던 게 기억납니다. 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와 찍은 사진 등은 모두 연출된 겁니다.”

- 유서는 없었습니까.

“유서를 남길 법도 한데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있었다고 해도 저는 알 방법이 없습니다.”

- 할머니(이순자씨)는 어떤 분인가요.

“제가 미국에서 돌아오면 따뜻하게 맞아주셨습니다. 공부할 때 학비가 꽤 많이 들었는데 할머니가 지원해주셨습니다. 감사하지만 (비자금이나 5·18과 관련해) 일관되게 거짓말을 하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최근 할머니가 저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등이 알려지면서 무작정 비난을 받는 것은 아쉽습니다.”

지난 3월28일 한국에 입국한 전우원씨는 경찰에서 마약 투약과 관련한 조사를 받은 뒤 3월31일 광주를 찾아 5·18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묘역을 찾았다. 당시 겉옷을 벗어 5·18 희생자의 묘비를 닦는 모습에 많은 국민들이 공감했다.

5·18기념재단이 최근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5·18 인식조사’에서는 67.8%가 전우원씨의 사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부정적’이라는 응답은 11.7%에 그쳤다.

- 5·18 사죄에 대해 국민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여태 안 하다가 한 겁니다. 좋게 생각해 주시니까 감사합니다.”

- 할아버지가 5·18을 유혈진압하고 정권을 잡았다는 것은 언제쯤 알았습니까.

“어떤 시점을 말하긴 어렵습니다. 뉴스에 자주 나오고, 주변 사람들이 저를 대하는 것에서 느껴지니까 인터넷을 통해 최대한 좀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지금도 한국 내에서 5·18에 대해 모두 같은 마음이 아닌 것처럼, 일부러 우리 가족에게 유리하지 않은 얘기들은 읽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피해자들을 직접 뵙고 이분들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오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제라도…꽃 한 송이 올립니다 고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씨가 17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제43주년 추모식에 참석해 헌화를 하고 있다. 광주 | 권도현 기자

- 겉옷을 벗어 희생자들의 묘비를 닦았는데요.

“저는 국립묘지에 갈 일이 별로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더러운 묘비를 보고) 그냥 제가 갖고 있던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거로 닦아드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닦는 와중에도 ‘이렇게 하는 게 맞는 행동인가. 잘못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5·18 희생자들에게 사죄드릴 기회가 주어졌다는 데 감사합니다.”

- ‘민주주의 진정한 아버지는 여기에 묻혀 계신 모든 분들이십니다’라는 방명록 글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정말 준비한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방명록을 써야 한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느끼고 있던 것을 그냥 그대로 쓴 겁니다. 5·18 묘역이다 보니 잔인하게 희생된 분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 할머니가 2019년 1월 인터넷 보수 매체와 인터뷰하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저는 우리 남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요.

“할머니 발언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닙니다. 무의식에서 쓴 겁니다. 호화롭게 살면서 죄를 인정하지 않는 가족들과 5·18 희생자들을 비교해 생각하다 보니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진짜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숨진 열사들이 계신 곳까지 와 있나’ 하는 생각으로 쓰게 된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언급한 “죄송”은 ‘쇼’
책임지기 싫어 항상 남에게 전가
광주 와보니 잘못됐다는 것 느껴

- 광주 방문 이후 5·18에 대해 더 알아봤습니까.

“책도 보고 인터넷으로도 찾아봅니다. 우리 가족들 편에서 하는 이야기 말고 진짜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당시 잔인하게 죽은 희생자들의 사진도 많이 봤습니다.”

- 할아버지는 생전에 5·18 피해자들에게 사과하지 않았고, 발포 책임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가 ‘광주에서 있었던 일 죄송합니다’라고 한 적은 있는 것 같은데 실제로 미안해서 한 이야기가 아닌 ‘쇼’였다고 생각합니다. 책임지기 싫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전가합니다. ‘국군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등 항상 변명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광주에 직접 와보니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 가족들이 앞으로 어떻게 해주었으면 합니까.

“이 인터뷰를 읽는다면 이제 그만 어둠 속에 있지 말고 빛으로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전우원씨는 국민에게도 당부했다. “제가 이번에 놀랐던 것은 저보다 나이가 많은 30대 이상도 5·18을 모르는 분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대한민국은 5·18에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에 동의합니다. (올해 기념일에는) 뉴스를 보고 30초라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당분간 미국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전씨는 최근 자신이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모은 전 재산인 5000만원을 익명으로 10곳이 넘는 전국의 사회·복지단체에 기부했다. 5·18 관련 단체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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