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김영환의 ‘황제 오찬’
연일 치솟는 물가에 ‘1000원 아침밥’이 대학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학생식당 문을 열기 전부터 긴 줄을 서는 ‘오픈런’이 벌어진다고 한다. 1000원짜리 아침밥이 호응을 얻자 대학 학생식당마다 청년들의 환심을 사려는 정치인들의 발길도 줄을 잇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3월 경희대에서 아침밥 지원 확대를 약속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전남대에서 “지원 대상과 금액을 더 늘리자”고 했다.
‘1000원 아침밥’은 대학생 부담을 덜어주자는 사업이다. 학생이 1000원을 내면, 정부가 1000원을 보태고, 나머지는 학교가 부담한다. 정부가 투입 예산을 확대해 현재 145개 대학이 참여 중이다. 재정 형편이 어려운 대학들은 멀리서 속만 끓이고 있고, 시행 대학들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 물음표가 달려 있다.
이 와중에 김영환 충북지사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9일 대학생 기숙사 식당에서 학생들 한 끼보다 10배 이상 비싼 특식을 제공받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학생들 앞에서 ‘1000원 아침’을 외치던 이들이 칸막이 뒤로 옮겨선 전복·장어 등이 들어간 특식을 제공받았다고 한다. 당시 학생식당 메뉴는 카레밥·된장국·단무지였다. 그에 견줘 김 지사 일행은 ‘보여주기 정치쇼’를 하다 된통 당한 셈이다.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의 이런 행태는 잊을 만하면 되풀이된다. 이태원 참사 후, 한덕수 국무총리는 외신기자회견장에서 ‘안 들리는 책임’ 문제를 농을 섞어 빗대다 빈축을 샀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폼나게 사표” 발언으로 국민의 공분을 일으켰다. 저 멀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전 총리는 지진으로 터전을 잃은 이재민 텐트촌을 찾아가 “캠핑 온 것으로 생각하라”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공통점이 있다. 책임 회피에 바빠 공감 능력이 결여되었다는 것이다.
외식물가가 또 줄줄이 올라 삼겹살은 2만원, 냉면은 1만1000원, 짜장면은 7000원에 근접했다고 한다. 청년들은 저렴한 한 끼를 찾아 오늘도 발품을 판다. 대학식당에서 맞닥뜨린 청년들의 민생고는 공감도 격려도 못하고, 외려 그 맘에 상처만 주고 온 김 지사 일행의 ‘황제오찬’ 뒷맛이 씁쓸하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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