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기록은 남은 자의 몫"..민주화운동 43주기

정자형 2023. 5. 17.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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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전북대에 재학하던 고 이세종 열사가 5.18 민주화운동 첫 희생자로 알려지면서 전북의 5.18 운동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이영호 목사]"결코 의지가 꺾이지 않았던 시대예요. 그럴 땐 제가, 저에게 가까이 오는 사람들, 또 피신이 필요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당연히 도와줄 수밖에 없고,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고 이세종 열사가 5.18 민주화운동의 첫 희생자로 알려지면서 전북의 5.18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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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북대에 재학하던 고 이세종 열사가 5.18 민주화운동 첫 희생자로 알려지면서 전북의 5.18 운동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반세기를 향해 가는 만큼 정확하게 기억하고, 기록해 5.18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정자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머리칼이 희끗해지는 중년이 돼도 도통 희미해지지 않는 기억이 있습니다. 


농성을 준비 중이었던 1980년 5월 17일 자정 무렵, 


전북대 학생회관에 들이닥친 계엄군 군화에 40여 명의 학생들이 짓밟히고, 무차별 폭행을 당했습니다. 


[김완술, 김차순 / 당시 전북대 학생]

"총에 꽂혀있던 대검을 뽑았어요. 뽑았을 때 주변에 있던 모든 학생들도 "찌르지 마"라고 이야기를 했고, "살려주세요"라는 이야기가 저절로 나올 만큼."


18일 새벽 1시 반쯤 당시 2학년이던 고 이세종 열사가 학생회관 부근에서 숨진 채 발견됩니다. 


당시에는 단순 추락사로 처리된 사건이 이제는 5.18 민주화운동의 도화선으로 역사에 기록됩니다.  


올해로 43주년을 맞은 5.18 민주화운동.


전주 시내 곳곳에 배치된 계엄군의 눈을 피해 학생들의 민주화에 대한 염원을 불태웠고, 이들을 응원하며 기꺼이 피신처를 내어 준 이들도 있습니다.  


[이영호 목사]

"결코 의지가 꺾이지 않았던 시대예요. 그럴 땐 제가, 저에게 가까이 오는 사람들, 또 피신이 필요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당연히 도와줄 수밖에 없고,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고 이세종 열사가 5.18 민주화운동의 첫 희생자로 알려지면서 전북의 5.18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희생으로 일군 민주주의가 퇴색되지 않도록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정우식 / 전북 5.18 동우회 이사장]

"우리 기성세대들이, 우리가 겪은 역사를 한 줄씩이라도 제대로 기록해 내고 우리의 역사를 완성해 나가는 것이 우리 먼저 산 사람들의 몫이 아닌가."   


5.18 진상조사위원회는 당시 계엄군의 발포가 '최소 20곳에서, 50회 이상 이뤄졌다'라고 밝혔지만 아직 최초 명령자를 공식화하진 않았습니다.   


MBC뉴스 정자형입니다. 


영상취재: 조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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