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하의 '그런데'] 눈치 좀 챙기세요
옛 송나라 때 화원이라는 장군이 전투를 앞두고 군사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양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군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배급을 기다리던 전차 운전병은 몹시 실망하고 맙니다. 전차병은 전쟁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양고기를 주지 않거든요. 먹는 거 갖고 차별하다니 참 치사하죠.
문제는 다음 날 전투에서 벌어집니다. '양고기를 장군 마음대로 나눠줬으니 전차는 내 마음대로 몰겠다'며 전차병이 적진으로 돌진해 전차에 타고 있던 장군은 꼼짝없이 포로가 됩니다.
지난 9일, 21세기판 반상 차별이 발생했습니다.
김영환 충북지사와 충북 지역 국회의원들이 서울에 거주하는 충북 학생들의 기숙사인 충북 학사에서 정책 간담회를 한 후 학사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메뉴가 학생들과 아주 달랐거든요.
학생들은 카레밥에 된장국, 단무지로 구성된 원가 2천7백 원짜리 식사를 김 지사와 의원들은 전복내장톳밥, 아롱사태 전골, LA돼지갈비찜, 잡채, 장어 깻잎 튀김 등이 포함된 원가 2만 8천 원에 달하는 만찬을 즐겼습니다. 학생들 한 끼보다 10배 이상 비싼 특식입니다.
거기까지 가서 학생들과 한 끼 도란도란 먹는 게 어려웠던 걸까요. '차라리 딴 데 가서 먹지, 먹는 거로 놀리냐, 저러고 어떻게 2030 표심을 잡겠다는 거지?'라는 말이 쏟아질 만하죠.
충북 측은 배려가 부족했다는 입장인데 맛있는 냄새만 나도 고개부터 돌아가는 게 본능 아닌가요. 게다가 학생들은 한창 먹을 때잖아요.
특히 김 지사는 충북대 '천 원의 아침밥' 사업 시작일이던 지난 2일 학생 식당을 방문해 배식 행사를 한 바 있어 그건 보여주기 시식쇼였냐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권력 연구의 권위자인 심리학자 켈트너는 권력을 누리는 사람들은 충동적으로 식사하고 무례한 방식으로 소통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청년의 공간을 빌려 쓰며 격려도 공감도 없이 맛있는 거 먹으니 좋으셨습니까. 의원님들 옆에서 식사하던 학생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생각해 보셨나요?
무오류, 무흠결의 지도자가 아니라 국민과 함께 숨 쉬며 동고동락할 수 있는 리더가 보고 싶은 것뿐인데 이게 그렇게 큰 욕심일까요.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눈치 좀 챙기세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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