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돌봄노동 안 된다’…초고령사회 대비 허무는 서울시

박다해 2023. 5. 1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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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업체 외면 요양보호 맡는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존폐 위기
김성일(가명)씨의 치료 후 이동을 지원하는 서문희(왼쪽)씨와 이귀엽씨. 박다해 기자

성인 남성 1명이 서면 꽉 차는 좁고 가파른 계단, 엘리베이터가 없어 5층을 꼬박 걸어 올라야 하는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한 고시원에 신장질환 환자인 김성일(가명·75)씨가 산다. 그에게 이 공간은 ‘낙원’이 아니라 늘 ‘떨어질’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곳이다. 투석 치료를 위해 매일 중구 신당동의 한 내과까지 약 4km를 오가는데, 장시간 투석을 한 뒤엔 몸을 가누기조차 쉽지 않다. 계단 한 칸을 오를 때마다 온몸의 근육을 짜내야만 한다. 호흡이 가팔라지고 금세 몸에서 힘이 빠진다.

이런 김씨를 돕는 건 서울시사회서비스원(서사원) 소속 요양보호사인 서문희·이귀엽씨다. 이들은 지난해 10월부터 매일 1시간~1시간30분 가량 이동지원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지난 3일, 신당동의 ㄱ내과에서 5시간 남짓 투석 치료를 받은 김씨는 두 요양보호사가 자신의 팔을 양옆에서 꽉 붙든 뒤에야 겨우 발걸음을 뗐다. 이동시 배변 실수를 하거나 땀을 흘리는 경우도 종종 있어 이들은 귀가 후에 김씨가 옷을 갈아입는 일까지 돕는다. 김씨가 유달리 좋아하는 간식도, 때때로 함께 식사하는 지인도 이들은 속속들이 안다. “좋아하는 닭꼬치 사다 드리려고 종로 인근 편의점을 전부 돌아다닌 적도 있어요.” 이씨가 웃으며 말했다.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이순희(가명·87)씨도 지난해 7월부터 서사원의 돌봄 서비스를 받고 있다. 그는 뇌경색 발병 이후 거동이 어려운 와상 환자다. 의미를 알기 어려운 의성어로 의사 표현을 하는데 이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이들은 그를 매일 4시간 넘게 돌봐온 요양보호사 마순자씨와 임경희씨다.

지난 4일 이씨의 집에서 만난 이들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30분~1시간마다 이씨의 자세를 바꿔주고 수시로 그의 팔다리를 주무른다. 특히 자세를 바꾸는 일은 홀로 하기 어렵고 두 요양보호사의 합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일사불란하게 일을 나눠 할 때도 있다. 임씨가 청소와 마사지를 하는 동안 마씨는 이순희씨가 부드럽게 넘길 수 있는 죽을 끓이는 식이다. 이들의 돌봄은 늘 정해진 시간을 훌쩍 넘는다. 보호자가 퇴근할 때까지 돌봄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민간처럼 시급제로 일하면 이렇게 둘이 일하는 것도, (유동적인) 이용자 상황에 따라 추가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어려워요.” 두 요양보호사가 입을 모았다.

와상환자인 이순희(가명)씨를 돕는 요양보호사 임경희(왼쪽)씨와 마순자씨. 박다해 기자

김성일씨와 이순희씨의 일상이 유지되는 건 ‘2인1조’로 함께 일하는 서사원의 요양보호사 덕이다. 두 사람 다 민간기관 서비스를 제공받기 어려워 서사원에 의뢰한 사례다. 문제는 이들의 돌봄이 지속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서울시의회가 서사원 예산 100억원을 줄여 당장 8월부터 임금 지급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시의회와 서울시는 서사원이 ‘정규직 월급제’로 직원을 채용한 점과 이들이 ‘병가’를 쓰는 걸 문제 삼으며 사실상 서사원 폐지를 압박하고 있다. 서울시는 “서사원이 (자체적으로) 경영개선계획을 수립하는 단계”라며 한발 물러난 모양새를 취하지만 “지속적인 운영을 원하면 요양보호사가 받는 월급만큼 수익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돌봄’의 가치를 그 자체로 인정하지 않는 듯한 태도다. 서울시 관계자는 “돌봄종사자가 정규직으로 일하는 근로조건 설계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했다. 이는 “사회서비스와 사회서비스 관련 일자리의 질을 높여 국민의 복지증진에 이바지”한다는 사회서비스원법 제정 목표나 “종사자 처우까지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운영”(서사원 보도자료, 2019년 1월)한다는 서사원의 출범 취지와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불과 1년 전엔 “공공돌봄의 초석을 마련하겠다”(서사원 코로나19 백서)고 공언한 황정일 대표이사는 연일 자사 직원을 비난하는 보도자료를 내고 있다. “서사원은 ‘공공돌봄 기능’ 자체가 현저히 부족하고 그 수혜도 0.23%의 서울시민에게 한정된다”(4월26일), “서사원 소속 요양보호사와 장애인활동지원사의 비용 대비 돌봄서비스 제공 시간이 민간기관의 3분의 1 수준”(5월16일)이라는 식이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살리기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비대위는 17일 기자회견을 열어 “3.8시간 일하고 월급 225만원을 받는다고 공격하지만 3.8시간은 (코로나19 기간인) 2021년 통계로 팬데믹 상황(의 통계)”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서사원의 직접서비스 시간은 5.03시간(2022년 3월)→5.5시간(2022년 12월)→5.8시간(2023년 3월)으로 점차 늘었다. 여기에 서비스 제공지까지 이동하는 시간(1.5~2시간), 교육 및 행정사무 시간(0.5시간)을 더하면, 올해 이들의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7.8~8.3시간이다.

2019년 시범사업을 통해 출범한 서사원이 팬데믹 기간을 거쳐 “이제야 돌봄사업 정착화 단계에 진입”했다는 것이 비대위의 설명이다. 민간기관에 견줘 과한 임금을 받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비대위는 말한다. 2023년 서사원 소속 요양보호사 급여는 시급 기준 1만1157원인데 이는 서울시 생활임금과 같고, 민간 장기요양기관 종사자 시급(1만2300원)보다 오히려 적다. “병가를 남용한다”는 지적도 서사원 돌봄종사자의 평균 연령이 57.7살이고, 직업 특성상 근골격계질환 발병률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긍하기 어렵다는 게 비대위 쪽 반박이다.

서사원과 같은 공적 돌봄망이 사라지면 김성일씨와 이순희씨는 돌봄체계에서 누락될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 시급제인 데다 대상자 1명당 요양보호사 1명을 파견하는 민간 요양시장에서 1~2시간짜리 단시간 서비스나 요양보호사가 2인 이상 필요한 사례는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와상, 알코올중독, 치매 등 중증환자 역시 홀로 돌보는 것이 어려워 기피 대상이다.

요양원이나 민간기관에서 일하다 서사원에 취직한 요양보호사들은 이곳에서 일하면서 비로소 “자부심을 느꼈다”(마순자)고 했다. “쪽방촌 등 열악한 환경에 놓인 어르신을 도우면서 더 보람을 느끼는”(이귀엽) 경험도 한다. 함께 일하는 동료가 생겨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며 배울 수 있고 힘든 일은 서로 나누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모두 민간에서 일할 땐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다.

서사원 요양보호사들은 불투명한 앞날을 서비스 대상자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 크다. “자꾸만 (서사원을) 없앤다고 하니까 불안해. 오히려 더 자주 오면 좋겠는데…” 한 평도 채 안 되는 고시원 침대에 앉은 김성일씨가 말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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