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美 보란 듯 중국과 밀착하는 사우디
서로 으르렁 거리던 중동의 '앙숙'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중국 베이징에서 손을 잡았다. 양국 외교수장의 가운데엔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자리했다. 이 한 장의 사진이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2차 대전 이후 중동의 굵직굵직한 일에는 항상 미국이 있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미국이 있어야 할 자리에 중국이 있었다. 미국의 충격은 꽤나 컸다.
사우디가 변심한 걸까. 최근 전통적인 친미 국가 사우디의 행보가 심상찮다. 사우디가 석유 증산 요청을 바이든 미국 대통령 앞에서 거부하더니 중국과의 브로맨스는 날로 뜨거워지는 양상이다. 중동지역 중국 파워의 바로미터로 사우디가 지목받고 있다. 중국과 사우디가 밀착행보를 보이는데는 둘 다 나름의 계산과 이유가 있다.
사우디와 중국의 노골적인 '애정행각'은 지난해 말부터 도드라졌다. 시진핑 주석은 사우디를 방문해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시진핑은 38조 원 규모의 투자협정각서에 서명하는 등 푸짐한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전통적인 친미국가 사우디가 친중국으로 행보를 틀었다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한 일대 사건이었다. 미국의 초강력 제재를 받고 있는 중국의 화웨이가 사우디에 클라우드 컴퓨팅 센터, 데이터 센터 등 첨단 기술산업 단지를 건설하는 계획도 공개됐다. 보란듯 미국에 일격을 가하는 모습이었다.
사우디는 1945년 이븐 사우드 국왕과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석유와 안보를 맞바꾸는 협약을 맺은 이래 미국에 안보를 의존해왔다. 석유 거래를 달러로만 하고 그 달러로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페트로 달러'가 시스템으로 정착됐다.
하지만 여기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사우디는 최대 원유 수입처인 중국으로부터 무역대금으로 위안화를 받기로 했다. '페트로 위안화'까진 아니어도 미국 달러 위상에 금이 가는 것은 분명하다. 사우디 국영은행이 무역 대금 결제용으로 위안화 대출을 처음 시행한 것인데, 위안화 국제화와 달러 패권 잠식을 노리는 중국몽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여기엔 양국의 에너지 이해관계가 핵심 관심사로 자리잡고 있다. 2000년대 셰일 붐으로 사우디의 세계 최대 산유국 지위를 흔든 미국은 청정에너지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대 산유국 사우디로선 위기다. 중국의 최우선 관심사도 석유다.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에너지 수급 위기를 겪고 있다. 두 국가가 가까워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사우디가 미국과 '거리두기'를 결심한 단초가 있었다. 2018년 반정부 성향의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사건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사우디의 모하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배후로 지목하며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감정 상한 사우디는 미국에 대놓고 격분했다.
이 사이를 중국이 비집고 파고들었다. 미국 대신 중국이 사우디와 이란을 불러 모아 서로 손을 맞잡게 했다. 중재를 이끈 왕이는 "우리는 모든 국가의 바람에 따라 세계의 분쟁 문제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주요국으로서 책임감을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 미 행정부의 외교는 실패했고 중국이 빛을 봤다. 수십년 동안 중재자를 자처해온 미국은 체면을 구기고 그 자리를 중국에 내줬다. 미국은 체면을 구겼다.
요즘 사우디를 보면 친중국 행보가 거침없다. 중국 주도의 상하이협력기구에 부분 가입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미국에게는 이스라엘과 수교할 테니 그 대가로 농축 기술과 핵연료 기술 같은 민간차원의 핵개발을 지원해달라고 생떼를 부린다.
미국은 뒤늦게 '달래기 모드'다. 작년 10월 석유 감산 조치 당시 미국은 '대가가 있을 것'이라며 협박했지만, 완전히 상황은 변했다. '사우디는 여전히 전략적인 파트너'라며 사우디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최근 사우디를 전격 방문해 무함마드 왕세자를 만나 양국의 관계 강화 방법들을 논의한 것도 미국의 다급한 사정을 말해준다.
사우디의 자신만만한 외교전략은 우리나라에도 시사점을 준다. 바로 국익 우선이라는 점이다. 미중 패권 경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도 우리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해법은 뭘까. 안보환경이 매우 민감한 시기다. 어느 때보다 정교한 외교가 중요해졌다.
김광태 디지털뉴스부장 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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