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불효자 웃게 하는 상속인가, 가난한 세대 최후 보루인가

오연서 2023. 5. 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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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17일 배우자와 자녀, 형제자매에게 피상속인의 재산의 일부를 유언보다 우선해 물려주도록 하는 '유류분 제도'에 대한 공개변론을 열었다.

김형두 재판관의 질문에 유류분 제도를 찬성하는 쪽 참고인으로 나온 서종희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피상속인(아버지)의 의사에 반하는 결과가 예외적으로 발생할 수 있지만 그게 유류분 제도가 의미가 없다는 주장으로 바로 이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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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유류분 제도 위헌심판 공개변론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유류분 제도 관련 법 조항의 위헌 심판을 위한 첫 공개변론에 입장해 있다. 유류분은 상속인인 배우자와 자녀, 부모, 형제자매에게 법정 상속분의 일정 비율을 보장하는 제도다. 이번 사건은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장학재단에 재산을 기부하겠다는 유언을 남기자 자녀들이 유류분을 침해당했다며 재단을 향해 소송을 제기한 사건과 사망한 어머니가 생전 손자 등에게 부동산을 증여하면서 딸들의 유류분이 침해당했다는 사건이 병합돼 진행된다. 연합뉴스
“피상속인인 아버지가 살아있는 동안 자식하고 엄청 사이가 안 좋습니다. 아니면 자식이 결혼해 외국에 가서 교류가 전혀 없고, 그래서 아버지가 ‘내 재산을 전부 국내에 있는 내 다른 자식들한테 주겠다’고 했어요. 그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갑자기 (그 자녀는) 유류분만큼 받게 됩니다. 그 아버지의 뜻하고 전혀 반대되는 결과가 되는데, 자식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시는 게 자기한테 도움이 되는 것이고…. 뭔가 좀 이상하거든요?
아버지의 입장에선 생전에 재산 처분의 자유가 있고, 그 재산을 갖고 어떻게 처분함으로써 나름대로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 건데 그것에 반한 결과를 초래하거든요. 유류분 제도가 재산권, 그리고 정의의 관념하고 맞느냐는 의문이 드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형두 헌법재판관)

헌법재판소는 17일 배우자와 자녀, 형제자매에게 피상속인의 재산의 일부를 유언보다 우선해 물려주도록 하는 ‘유류분 제도’에 대한 공개변론을 열었다. 김형두 재판관의 질문에 유류분 제도를 찬성하는 쪽 참고인으로 나온 서종희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피상속인(아버지)의 의사에 반하는 결과가 예외적으로 발생할 수 있지만 그게 유류분 제도가 의미가 없다는 주장으로 바로 이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지난 2010년과 2013년에 유류분 제도를 합헌이라고 결정했던 헌재가 10년 만에 다시 위헌 여부를 따지기로 하면서, 헌법소원을 청구한 변호사들, 법무부, 찬·반 입장인 교수들이 이날 참고인으로 변론에 참여했다.

청구인 쪽에선 “유언보다 우선하는 유류분 제도가 피상속인의 재산처분권을 침해한다”며 유류분 제도의 위헌성을 주장했다. 부모가 부양한 자식에게 더 많은 재산을 물려주고 싶어도 다른 자식의 유류분액을 넘어 상속하면 유류분 소송이 발생할 수 있다. 공익재단에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유언을 남겨도 일부는 배우자와 직계비속, 직계존속, 형제자매에게 돌아간다.

법무부는 가족제도가 변했지만 남은 유족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유류분 제도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20·30대에 비경제활동 인구가 많고, 실업률이 높은 점을 들며 “일한 만큼 자산을 벌기 힘든 시대라 상속 자산이 젊은 세대에게는 최후의 보루일 수 있다”며 “(유산을) 무제한 처분할 수 있도록 하면 경제적 능력 없는 상속인이 보호 사각지대에 놓일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유류분 제도가 상속 분쟁의 원인이 되느냐, 해결책이 되느냐를 두고는 양쪽이 치열하게 공방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상속 재산을 못 받은 자녀와 받은 자녀 간 갈등이 커져 폭행·살인 등 범죄로 이어지는 뉴스를 적지 않게 접할 수 있다”며 “유류분을 부인하면 상속을 못 받는 상속인에게 최후의 수단(유류분)까지 봉쇄돼 이런 갈등을 악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청구인 쪽인 강인철 변호사(법무법인 린)는 “부모를 돌보지 않다가 갑자기 유류분권자라고 나타나서 ‘유언장에 (본인 이름이) 안 쓰였다’며 싸우는 게 오히려 분쟁을 유발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배인구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도 “현재 유류분 소송은 (유산을) 덜 받은 상속인과 더 받은 상속인 사이 (갈등으로) 격화했다. 소송 피로감이 너무 누적돼서 사회 갈등의 요소가 된다”고 강조했다.

시대 변화에 맞춰 유류분 제도를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유류분 제도는 지난 1979년 시행 뒤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류분 제도가 합헌이라 주장하는 서종희 교수는 “형제자매까지 유류분 권리를 인정한다는 점이 문제로 많이 제기됐는데 배우자와 직계비속까지는 (유류분을) 인정하는 데 찬성한다”고 말했다. 또한 피상속인의 생전증여 재산을 유류분에 포함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사망 5년 또는 10년 전 증여분으로 제한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했다. 법무부는 형제자매를 제외하고, 부양 의무 등을 중대하게 위반한 상속인의 유류분·상속권을 상실시키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유류분 제도를 규정한 민법 1112조 등 관련 조항 위헌심판 사건은 헌재에 현재 40건 올라와 있다. 헌재는 추가 심리를 거쳐 선고 기일을 정할 예정이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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