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도 상속” vs “상속차별 방지”···유류분 ‘위헌’ 첫 공개변론

김희진 기자 2023. 5. 17.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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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 부부는 네 딸과 두 아들을 뒀다. 생전에 6남매에게 재산을 나눠줬는데 딸들 몫이 적어 보였다. 갖고 있던 땅을 팔아 딸들에게 나눠주려다 양도소득세가 많이 나올 것 같아 포기했다. 대신 A씨와 막내아들이 공유하던 서울의 한 아파트를 팔아 딸들에게 나눠줬다. 팔려던 땅은 2007년 맏며느리 B씨와 손자들에게 증여했다.

A씨 부부는 맏며느리와 장남 집에서 여생을 보내다 2014년, 2017년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딸들은 B씨 등을 상대로 땅 일부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 상속인들에게 최소한의 상속분을 보장하는 ‘유류분 제도’에 따라 자신들이 물려받았어야 할 재산의 몫을 반환하라는 것이다. B씨는 10년 전 시부모에게서 받은 재산 일부를 시누이들에게 돌려줘야 할까.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유류분 제도 관련 법 조항의 위헌 심판을 위한 첫 공개변론에 입장해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17일 유류분 제도의 위헌 여부를 따지기 위한 공개변론을 열었다. 유류분 제도를 정하고 있는 민법 1112~1116조, 1118조가 헌재 심판대에 올랐다. B씨, 공익 목적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한 뒤 재산을 유증하고 숨진 김모씨의 자녀 C씨 등이 이번 헌법소원 사건의 청구인들이다.

유류분 제도는 고인의 유언과 관계없이 상속인의 최소 상속분을 보장해주는 제도로 1977년 도입됐다. 장남이 모든 재산을 물려받아 상속 대상에서 배제되던 딸을 구제하고, 경제적 어려움에 처할 수 있는 상속인의 생계를 보호하는 기능을 해왔다. 민법에서는 직계비속·배우자는 법정 상속액의 2분의 1, 직계존속·형제자매는 3분의 1을 유류분으로 인정하고 있다.

부양에 무관심하던 자녀가 상속분을 챙길 수 있다는 점이 유류분 제도의 문제로 지적돼왔다. 2019년 고 구하라씨가 사망한 뒤 오래 전 가출한 친모가 상속분을 요구해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날 헌재에선 유류분 제도의 위헌성을 두고 두 시간 반 동안 뜨거운 공방이 이어졌다.

“불효자 양성법” VS “유족 생존 위한 최후의 보루”

청구인 측 대리인은 “유류분 제도는 가산 관념에 기반하는데, 가업을 승계하다거나 대가족 제도로 가산을 형성하는 게 현대 사회에서 과연 가능한지 문제”라며 “전근대적으로 보이는 공익을 위해 망인(피상속인)의 재산권 행사를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주장했다. 1인 가구가 늘고 핵가족화된 현실에서 기본권을 침해하는 제도가 됐다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성년 자녀와 ‘노-노상속(노인이 노인에게 상속)’이 늘어나 유족의 생존권 보호라는 과거 입법 취지도 퇴색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상속인(망인)과 유류분권자 사이 유대관계가 단절된 경우 과연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를 보장할 필요가 있는지 회의적”이라며 “그런 기대를 보장하는 게 오히려 일반인의 법 감정에 반한다”고 했다. 현 제도에선 망인의 재산에 전혀 기여한 바 없고, 부양 의무를 다하지 않은 상속인들이 유류분을 마치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주장할 수 있어 이른바 “불효자 양성법”으로 비춰질 여지도 크다고 했다.

반면 법무부 측은 “유류분 제도는 유언의 자유와 상속권 보장의 필요성 사이 타협의 산물”이라며 여전히 유류분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망인의 재산 처분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일부는 공평하게 분배하도록 해 가족들 간 유대를 유지시키고, 상속 차별로 벌어질 수 있는 갈등을 완화하는 ‘완충 장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경제적 능력이 없는 상속인을 보호하기 위한 최후 수단으로서 유류분 제도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했다. 법무부 측은 “젊은 세대는 저성장 시대로 인해 실업 문제에 부딪혀 예전 세대와 달리 열심히 일한 만큼 자산을 벌기 힘들다”며 “부모세대가 고성장 시대 형성한 상속재산이 젊은 세대에게 최후의 보루일 수 있다”고 했다. 비경제활동 인구 중 20~30대 비중이 적지 않고, 이들의 실업률 또한 높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강인철 변호사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유류분 제도 관련 법 조항의 위헌 심판을 위한 첫 공개변론에 참석해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정당성은 있는데…위헌일까, 고쳐써야 할 제도일까

참고인으로 대심판정에 선 전문가들은 유류분 제도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는 데 비슷합 입장을 보였지만 위헌성 여부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청구인 측 참고인인 현소혜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류분 제도의 정당성은 여전히 인정할 수 있지만 현행 제도는 경직돼 있으며 유류분 반환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고 했다.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 제도에선 유류분을 따질 때 ‘기초 재산’에 생전에 증여된 부분도 대부분 포함하는데, 최소한 생전에 증여한 뒤 10년이 지난 재산은 유류분 반환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법무부 측 참고인인 서종희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입법 당시 취지가 약해지거나 퇴색했을지라도 여전히 존재 의의가 있다”며 “개정의 필요성이 그 조항의 위헌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법무부는 시대에 따른 가족 개념의 변화를 고려해 유류분권자에서 형제자매를 제외하고,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상속인을 상속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민법 일부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라고 했다.

헌재는 이날 변론을 토대로 유류분 제도의 위헌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2010년과 2013년 유류분 제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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