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1년, 이재명의 1년

황준범 2023. 5. 17. 18: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편집국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3주년 4·19 혁명 기념식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편집국에서] 황준범 | 정치부장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문재인 정부 비난으로 ‘기념’했다. 그는 국무회의 생중계 발언 등을 통해 며칠 연속으로 외교·안보, 부동산, 금융, 탈원전, 코로나19 방역, 노동, 마약범죄 등 전 분야에 걸쳐 직전 정부를 비판하고, 자신이 이를 “정상화”했다고 말했다. ‘아직도 전 정부 탓이냐’는 수군거림이 여당 안에서도 나오지만, 윤 대통령의 이런 모습은 놀랄 일도 아니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이렇다 할 입법 성과는 없고 대내외 경제 성적표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달리 1년을 자평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2년 전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문재인 정부를 일컬어 “약탈 정부” “무도한 행태”라고 했던 점까지 상기해보면, 앞으로도 윤 대통령이 ‘뒤집기’나 ‘복원’을 국정운영의 주요 좌표이자 동력으로 삼을 것임은 더욱 분명해진다.

윤 대통령의 1년은 더불어민주당에는 여당에서 야당으로 처지가 바뀐 기간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이 “무너진 대한민국을 재건하겠다”며 일방적으로 가속페달을 밟아온 지난 1년, 민주당은 무엇을 했나.

이 기간은 이재명 대표가 대선 패배 뒤 국회의원 보궐선거(6월1일)에 출마해 원내에 입성하고, 곧장 민주당 전당대회(8월28일)에서 승리해 제1야당 대표가 되어 윤 대통령의 대척점에 서 온 시간이다. 이 대표는 대선·지방선거 패배 책임론과 ‘사법 리스크’에 대한 안팎의 우려 속에 당대표에 출마하면서 “책임은 문제 회피가 아니라 문제 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며 “이기는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는 “이 임무에 실패한다면 이재명의 시대적 소명도 끝날 것”이라며 이를 위해 “미래, 유능, 강함, 혁신, 통합 다섯가지 약속을 드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지난 1년 이 대표는 비전과 희망을 보여주지 못했다. 민주당의 시간과 에너지는 온통 이 대표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 공방과 ‘방탄 정당’ 논란에 소진됐다. 이 대표 개인의 위험 부담이 당 전체의 짐이 될 것이라는 우려는 현실이 됐고, 이 대표 리더십에 대한 신뢰와 그의 거취 문제를 두고 민주당 내부에선 정서적 내전이 이어지고 있다. 이 대표는 체포동의안 ‘턱걸이 부결’로 구속영장 실질심사는 면했지만 당내 반감의 실체를 확인했다. 이 대표가 ‘통합’ 메시지를 내세우며 겨우 내분을 추슬러갈 무렵인 지난달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이 터지더니, 이달엔 김남국 의원 코인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러는 사이, 민주당의 색깔을 담은 정책노선 제시는 잘 보이지 않았고, 윤석열 정부에 대한 당당한 견제 목소리도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국회 다수석을 활용해 양곡관리법과 간호법을 통과시키며 존재감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협치에는 별 관심 없는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도돌이표에 그쳤다.

특히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기 의혹은 민주당에서 도덕이나 책임 의식이 얼마나 무뎌졌는지를 드러내 보였다. 의혹 당사자인 김 의원은 당에 자료도 성실하게 제출하지 않고 당 차원 진상조사를 시작도 하기 전에 탈당해버렸다. 당 소속 의원들의 요구에도 지도부는 김 의원의 의원직 제명 추진을 위한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제소를 미루다, 뒤늦게 떠밀려 움직였다. 당원·국회의원으로서의 책임감이나 윤리 의식은 실종됐고, 온정주의와 도덕 불감증이 당내에 만연한 모습이다. 의혹을 받는 당사자가 “검찰의 기획 수사”라고 외부로 화살부터 돌리는 게 공식이 됐다.

위기를 헤치고 나가는 맨 앞줄에 이 대표가 있어야 하지만, 시원한 ‘사이다’ 이재명은 안 보이고 답답한 ‘고구마’ 이재명만 보인다. 자신의 사법 리스크가 마음에 걸리는 것일 수도 있고, ‘김남국을 지키자’는 강성 지지층을 의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위기가 언제 어디서 추가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이 대표는 지난해 당대표 수락 연설에서 “상대의 실패에 기대는 무기력한 반사이익 정치,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했다. 지금 민주당은 상대의 실패에 따른 반사이익조차 챙길 처지가 못 된다. 그걸 누리고 있는 쪽은 윤 대통령과 여당이다.

jaybe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