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다큐' 여당 반발, 민주당 침묵…인권위 "2차 가해 우려"

박준우 기자 2023. 5. 17.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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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다큐멘터리 '첫변론'을 두고 비판 여론이 일고 있습니다. 여성단체들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며 제작 중지를 요구하고 있죠. 국민의힘은 인권위가 인정한 2차 가해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날을 세웠습니다. 다만 민주당은 아직 명확한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고있는데요. '줌 인'에서 관련 소식을 정리했습니다.

[기자]

[이미경/한국성폭력상담소장 (2020년 7월 13일) : 인구 천만명의 대도시인 서울시장이 갖는 엄청난 위력 속에서 어떠한 거부나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는 전형적인 위력 성폭력의 특성을 그대로 보였습니다. 가해의 수위는 심각해졌고, 심지어 부서 변동이 이루어진 이후에도 개인적 연락이 지속되었습니다.]

[김재련/변호사 (2020년 7월 13일) : 속옷만 입은 사진을 전송하는 등 피해자를 성적으로 괴롭혀왔습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지난 2020년 7월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여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당하자 소명 대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데요. 박 전 시장의 사망으로 고소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지만 이후 인권위의 진상 조사가 이뤄졌죠. 당시 인권위는 피해자를 포함해 50명이 넘는 서울시의 전·현직 직원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는데요. 서울시와 수사기관 등이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끝에 박 전 시장의 성희롱을 사실로 판단했습니다.

[JTBC '뉴스룸' (2021년 1월 25일) : 우선 인권위는 박 전 시장의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늦은 밤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그리고 이모티콘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피해자의 손을 만졌다는 피해자의 주장을 사실로 판단한 겁니다. 피해자와 참고인 진술이 명확하고, 구체적이고, 일관성이 있으며, 그리고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남겨진 사진 증거 등을 근거로 봤습니다.]

인권위의 조사 결과 발표 이후 2년여가 지난 지금, 이 결과를 뒤집으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습니다. 박 전 시장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겠다는 이들이 나타난 건데요. 이른바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이란 다큐 제작위원회가 어제 제작 발표회를 열었죠. 이들은 박 전 시장은 성추행을 하지 않았고 자신들을 향한 2차 가해 논란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주장을 이어갔는데요.

[김대현/감독 (유튜브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 / 어제) : 2차 가해라는 논란이라는 거는 1차 가해의 내용이 뭔지에 대한 확실한 판단들이 내려진 다음에 가능한 논의고 지금의 2차 가해에 대한 논란이라는 것은 굉장히 비생산적이고 비합리적인 지금 이 논의 자체를 막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인권위 조사 결과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발언인데요.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증거는 오로지 피해자의 머릿속에만 있을 뿐이라고 항변했습니다.

[손병관/오마이뉴스 기자 (유튜브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 / 어제) : 피해자가 들었다는 성적 언동이라는 거는 지금 어디에 존재하는 겁니까, 피해자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겁니까.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피해자의 머릿속에만 있는 거에 대해서 지금 우리가 계속 어떻게 보면 탁상공론하고 있다고 봅니다. 저는 박 (전) 시장이 자살한 이유는 이른바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거를…]

심지어 박 전 시장을 찬양하기도 했는데요.

[이연주/변호사 (유튜브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 / 어제) : 제가 아는 박원순 (전) 시장은 선(善)을 향해 멈추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법률가로서, 사회 디자이너로서 행한 일들은 제가 두 번, 세 번 인생을 살아도 따라잡지 못할 것입니다. 박 (전) 시장의 삶을 닮아 전 생애 동안 꿈꾸고 싶습니다.]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 이름처럼 박 전 시장에 대한 무한신뢰를 나타내는 모습인데요. 훌륭한 삶을 살았던 박 전 시장이 성추행을 저질렀을리 없다는 믿음이 드러나는 대목이죠.

하지만, 인권위는 내심 불쾌했나 봅니다.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을 향해 경고장을 날렸는데요. 인권위가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서입니다. 다큐멘터리에 대해 "피해자 유발론이나 피해자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 등으로 피해자의 고통이 가중된다면 2차 가해에 해당될 소지가 있다"고 밝혔죠. 인권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성희롱이라고 판단했는지도 상세히 설명했는데요.

국민의힘도 거들었습니다. 오늘 논평을 내고 박 전 시장의 다큐멘터리 제작 중단을 촉구했는데요.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을 미화하는 후안무치한 행태를 멈추고 피해자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라"는 겁니다.

[강사빈/국민의힘 부대변인 (17일, 국민의힘 논평 / 음성대역) : 인권위도 인정한 2차 가해의 가능성을 고려조차 하지 않는 이들의 발상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박 전 시장의 비상식적, 비도덕적 행위를 미화하는 이들의 행태는 후안무치하다. 명백히 드러난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을 미화하며 피해자의 고통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의 만행은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여성단체도 팔을 걷어 붙였는데요. 한국성폭력상담소 등은 제작발표회가 진행된 어제 공동성명을 냈습니다. "성폭력을 부정하고, 정치적인 책임을 회피하고, 2차 가해를 방치하고 부추기는 행위는 끔찍한 폭력"이라는 겁니다. 보수 성향 여성단체인 한국여성단체협의회도 입장을 밝혔죠. "박 전 시장의 죽음으로 사건이 중도에서 종결됐지만 그의 성희롱 사실이 사라진 것은 절대로 아니다"라고 못 박았는데요. 정의당 류호정 의원은 제작위원회를 향해 '먼저 인간이 돼라'는 일침까지 날렸습니다.

[류호정/정의당 의원 (유튜브 'YTN' / 어제) : 추모도 좋고 예술도 좋지만, 지금 이 영화의 내용이 2차 가해를 명백히 내포하고 있는 내용일 것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먼저 인간이 돼라'라는 말이 절로 나왔던 것 같아요. 또 앞으로 다큐멘터리가 개봉되고 나면 더 가혹해질 거라는 협박, 현실이 있는 거거든요. 저는 60대 남성과 20대 여성이 연애가 가능하다라는 그런 전제 혹은 그래야만 한다라는 집착으로 이렇게 전개되는 현실이 좀 소름이 끼칩니다.]

이 와중에 유일하게 침묵하는 곳이 한 군데 있죠. 민주당인데요. 민주당 지도부는 박원순 다큐와 관련해 아무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라도 의견을 낸 민주당 인사들도 없는데요. 사실 박 전 시장의 사망 직후 민주당이 보였던 태도에 비춰 봤을 때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남인순/당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2020년 7월 15일) : 젠더폭력대책TF 위원장으로서 반복된 사건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피해 호소인이 현재 느끼고 있을 두려움과 당혹감에 마음이 아픕니다.]

[이해찬/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2020년 7월 15일) : 피해 호소인께서 겪으시는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이런 상황에 대해 민주당 대표로서 다시 한번 통절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피해호소인'이라는 독창적인 표현을 사용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었죠. 당시 민주당 당대표였던 이해찬 전 대표는 박 전 시장의 빈소 앞에서 성추행 의혹을 묻는 기자를 향해 반말로 호통을 치기도 했습니다.

[이해찬/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2020년 7월 10일) : {고인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는데 혹시 여기에 대해서, 당 차원에서 대응하실 계획은 있으신가요?} 그건 예의가 아닙니다. {지금 가족들에게는 뭐라고 위로 말씀 전하셨나요?} 그런 걸 이 자리에서 예의라고 합니까, 그걸. {가족들에게는 뭐라고 위로 말씀 전하셨나요?} 최소한도 가릴 게 있고… 나쁜 자식 같으니라고…]

여기서 의외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인데요.

[한동훈/법무부 장관 (어제) : 명백한 약자인 성폭력 피해자를 공격하는 박원순 전 시장 다큐에 대해서 주변에서 '왜 아무 말 안 하느냐'고 말을 계속 해도 빈말이라도 한마디 못 하는 게 어떻게 참여연대가 말하는 약자 보호인지 저는 묻고 싶습니다.]

한 장관, 최근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와 각을 세우고 있죠. 어제 참여연대를 향해 박원순 다큐와 관련해 왜 침묵하느냐고 한 마디 쏘아붙였는데요.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타쌍피를 노린 것 같기도 합니다. 참여연대뿐만 아니라 민주당도 돌려 까는 발언이었기 때문인데요. 한 장관도 애매모호한 건 싫었나 봅니다. 뒤이어 쐐기를 박았습니다.

[한동훈/법무부 장관 (어제) : '참여연대 공화국'이라고까지 불렸던 지난 5년 외에도 모든 민주당 정권의 경우에 참여연대는 권력 그 자체였잖아요. 시민단체 이름을 걸고 정부의 권력에 대해서 정치적 지지를 해주는 대가로 권력으로부터 자리를 제공받는다? 그렇게 되면 저는 공익에 도움이 되는 정상적인 시민단체로서 역할을 하기가 어려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자, 오늘은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에 '줌 인'해봤는데요. 2년 전 3월, 박 전 시장의 성폭력 피해자가 직접 기자들 앞에 섰었죠. 박 전 시장을 '그분'이라고 부르며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오늘 '줌 인' 한 마디는 여전히 그분의 위력을 실감하며 낙담하고 있을 피해자의 목소리로 대신하겠습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말하기 기자회견 (2021년 3월 17일) : 그분의 위력은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저를 지속적으로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위력은 자신들만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저를 괴롭힐 때에 그들의 이념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고 저를 괴롭히는 일에 동조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분의 위력은 여전히 강하게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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