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은 제대로…” 줄서서 공짜점심으로 끼니 떼우는 독거노인[소액생계비리포트]
열심히 산다고 누구나 풍족한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안락한 잠자리, 균형 잡힌 식사, 계절에 맞는 옷차림이 어려운 이들도 있다.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잘 짜여졌는가가 선진국의 요건이라면, 한국은 몇 점일까.
금융위원회는 3월 27일 소액생계비 대출을 출시했다. 신용점수를 따지지 않고 당일 최대 100만원을 대출해주는 이 상품은 한 달 만에 2만5000여명이 몰렸다. 이들의 평균 대출금액은 61만원. 병원비를 내려고, 전기세가 밀려서 등 적게는 몇만원 많게는 100만원이 없어서 빌리는 이가 이렇게나 많다.
헤럴드경제 특별취재팀은 소액생계비 대출을 받은 이들을 직접 만났다. ‘씁쓸한 흥행’을 가져온 정책을 만든 까닭도 듣고, 생계비를 빌리려온 이들이 어떤 이유로 찾아왔는지 상담사에게도 물었다. 돈이 없다고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각자 세상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생계가 어려워진 비극은 누구에게든 올 수 있다.
[특별취재팀=성연진·김광우·서정은·홍승희 기자] “우리 같은 사람들은 대부업자들도 돈을 안 빌려주는데, 신용도 안 보고 해준다니 그저 고마울 뿐이지. 50만원이 적다면 적은 돈이지만, 막상 구하기는 쉽지 않은 금액이라…”
지난달 4일 서울 양천구 양천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찾은 이모(69·남)씨는 소액생계비대출 승인 문자가 울리자, “오늘 만큼은 먹고 싶은 저녁을 먹을 수 있다”며 기뻐했다.
이 씨는 무직이고 신용불량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대출지원한 보증금 800만원에 월세를 살고 있다. 월 생활비는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되는 62만원으로 충당한다. “서울시의 노인 일자리 알선으로 매월 10회 따릉이 등을 청소하면 27만원이 추가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주거급여 12만원도 받지만 보증금에 대한 이자로 나간다. 때문에 월세를 내고 식비나 공과금을 해결하면 남는 돈은 없다.
그래서 끼니는 지역 복지원에서 주는 공짜 점심을 줄서서 해결한다. 3년 전부터 파킨슨 병을 앓아 발음이 잘 안되고 거동이 불편해, 일자리는 구하기 어렵다. “당뇨를 앓고 있는데 공짜 점심으로 끼니를 떼우다보니 식습관 관리가 안된다”며 씁쓸해 했다. 그래도 “의료수급자로 의료비 지원을 받아 치료는 받을 수 있다”는 게 희망이다.
이 씨의 삶이 처음부터 나라에서 주는 돈을 받고 공짜 식사를 찾아 끼니를 해결하던 것은 아니었다. 젊은 날에는 식자재 등을 식당에 배달하고 공급하는 자영업자였다. 1997년 시작된 외환위기 당시 그의 회사는 견디지 못하고 망했다. 이후 2000년 들어 식당들을 대상으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대부 중개를 새롭게 시작했다. 돈은 한 때 밀물처럼 들어오기도 했지만, 썰물처럼 빠져나가기도 했다. 그는 “큰 돈이 들어오기도 했는데, 그만큼 손해도 많이 봤다”고 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자, 경마에 빠졌다. 2003년 아내는 그를 견디지 못하고 이혼했다. 경기도 의정부에 있던 아파트 한 채는 아내와 아들이 가졌다. 이 씨는 이날 이후, 지금껏 월세를 벗어난 적이 없다. 아들은 “대기업에 다닌다고 들었는데, 연락은 닿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의 대부업 사업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자제한법이 강화되면서 2015년 사업을 접었다. 사업을 정리하려하자, 또 돈이 들었다. “시중은행에서 2000만원을 빌리고, 신용보증기금 햇살론과 저축은행 신용대출로 모두 1억원 가까이 대출받았다”면서 “일자리가 없는 상태서 빌린 돈을 갚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원금은 커녕 이자도 갚지 못하자, 6~7등급이던 신용등급은 그대로 신용불량자로 고꾸라졌다. 이 씨는 지금도 이 빚을 갚지 못하고 있다.
소액생계비 대출은 이 씨처럼 돈을 벌지도 빌리지도 못하는 이들이 몰려들며, ‘서글픈 흥행’을 이어갔다. 먼저 50만원을 빌려주고 6개월 뒤까지 이자만 갚으면 다시 50만원을 빌려주는 이 제도를 두고 “그렇게 적은 돈을 15.9% 이율에 누가 빌리냐”고 했지만, 오산이었다.
이율이 높아도 50만원에 붙는 이자는 만원이 안된다. 이 씨처럼 단 돈 몇만원이 아쉬운 이들은 몇천원의 이자를 감수하고, 50만원을 빌리려 문턱이 닳게 찾아왔다. 정책 시행 한달 간 약 2만5000명이 몰렸다. 금융위원회는 연내 공급 목표를 1000억원으로 잡았는데, 이 속도대로라면 9~10월께 조기 소진이 예상되고 있다. 이에 금융권 국민행복기금 초과 회수금을 활용해 추가 대출 재원 640억원을 부랴부랴 확보했다. 어려운 이들이 이렇게나 많다.
이 씨는 50만원을 어디에 사용할 것이냐고 묻자, 먼저 ‘먹고 싶은 저녁식사’를 망설임없이 말하면서도 “(어디에 사용할지보다는) 어려운 가운데 마련해준 돈을, 잘 갚는 게 중요하지 않겠냐”고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러나 약 3주가 지나 그와 다시 연락해 50만원을 어디에 사용했냐고 물었더니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어디다 썼겠냐. 뭘 사 먹은 지도 잘 기억이 안 난다”고 대답했다. 상환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금융위는 정책 시행 전 브리핑에서 갚지 못할 사안도 인지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유재훈 금융소비자국장은 “(이번 대출은) 실험적인 제도이고 악용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일부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실패한 제도는 아니다”라며 “도덕적 해이가 있을 수 있지만 어려운 사람을 위해 허들을 낮추어서 진행하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유 국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자를 받는 이유는 “이 상품이 복지 제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대출이기 때문에 성실상환 의지를 확인하는 차원”이라며 “낮은 금리로 소액생계비대출을 지원할 경우 이용자들보다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은 서민들이 자금조달 시 부담하는 이자금액과의 형평성이나 공정성 문제가 제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제도 시행 후 한달 간 소액생계비 대출과 맞물려 채무조정(8456건), 복지연계(4677건), 취업 지원(1685건) 등이 함께 지원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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