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 양성법’인가 ‘아들·딸 평등법’인가…유류분 위헌 공개 변론

민법 1112조 등 헌법소원
청구인 “고인 재산 처분 자유가 우선”
법무부 “유언의 자유 VS 친족 상속권의 타협 산물”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아 있다. /뉴스1

고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법정 상속인들의 상속분을 보장해주는 유류분 제도가 위헌인지를 놓고 공방이 벌어졌다. 헌법소원 청구인은 유류분 제도가 ‘불효자 양성법’이라며 위헌을 주장한 반면, 법무부 측은 제도가 상속재산 분쟁의 격화를 막는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다며 맞섰다.

17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는 5명이 낸 민법 1112조 등의 헌법소원 사건 공개 변론이 열렸다.

유류분이란 상속인이 고인의 유언과 관계 없이 상속재산 중 일정 부분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유언에 의한 재산 처분의 자유를 제한해 특정 상속인에게 재산이 집중되는 것을 막는 기능이 있다. 민법에 따라 직계비속과 배우자는 법정 상속액의 2분의 1,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는 3분의 1을 유류분으로 인정 받는다. 유류분 제도는 앞서 지난 2019년 가수 고(故) 구하라씨가 사망한 뒤 오래 전 가출한 생모가 상속권을 주장하며 논란이 된 바 있다. 상속권 상실 제도를 신설하는 이른바 ‘구하라법’은 21대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이날 헌재는 A씨의 장학재단과 B씨의 아들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 건을 병합해 같이 심리했다. A씨는 생전 장학재단을 설립해 운영하다 2019년 사망했으며, 모든 재산을 재단에 기부하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이에 A씨 자녀들은 자기 몫의 유류분을 돌려달라며 재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B씨의 경우, 지난 2017년 10월 사망하면서 아들에게만 유산을 물려줬다가 유족 간 소송이 벌어졌다.

청구인 측 변호인은 “피상속인(고인)의 재산 처분 자유는 상속권에 우선하며, 유류분 제도는 구체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배우자뿐 아니라 직계존비속, 형제자매까지 획일적·일률적으로 유류분 비율을 정하고 있어 매우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피상속인과 상속인 사이 유대관계가 단절된 경우 과연 상속재산을 보장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이해관계인인 법무부장관 측은 유류분 제도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법무부 측은 “유류분 제도는 유언의 자유와 친족 상속권의 타협의 산물”이라며 “피상속인의 재산 처분 자유를 원천 박탈하지 않고 유족의 생존권 보호에도 기여하는 만큼, 사회 현실에 맞게 수정할 필요는 있지만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입법 정책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출석한 참고인들의 의견도 갈렸다. 청구인 측 참고인인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류분 제도의 입법 목적은 정당하지만 현행 제도는 지나치게 경직되고 재산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에서 기여상속인의 정당한 기여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유류분을 산정하는 것은 기여상속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무부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서종희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입법 당시 취지가 약해지거나 퇴색됐더라도 개정의 필요성이 그 조항의 위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헌재는 이날 변론 내용을 검토해 유류분을 규정한 민법 조항의 위헌 여부를 판단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