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EU 등 '규제 거미줄' 대응···가이드라인 통해 기업 연착륙 유도
◆ 정부, 자산 영향평가 착수
내달 ESG 공시 최종안 공개 앞둬
정부, 탈탄소 여파 측정기법 개발
자산 손실 등 예측 가능성 높여
탄소 다배출 업종 사업전환 지원
삼척블루파워는 2021년부터 네 차례에 걸쳐 총 7450억 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강원 삼척에 2100㎿ 규모의 화력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해 자금 조달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팔린 금액은 130억 원에 불과했다.
올해 초 3년물 2250억 원을 모집했을 때도 80억 원을 조달하는 데 그쳤다. 연 6.96%의 높은 이자율을 제시했음에도 충격적인 결과였다.
삼척블루파워가 회사채 시장에서 계속 고배를 마신 결정적 이유는 화력발전소가 탈(脫)탄소 정책의 영향을 받는 대표적 ‘좌초자산’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탄소 중립 정책이 본궤도에 오를 경우 잠재적인 자산가치가 급격히 하락할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가 깔렸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거론하며 삼척블루파워에 대한 투자를 꺼린 것도 석탄 기업의 ‘탄소 중립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해서다.
17일 산업통상자원부가 탈탄소 정책에 따른 기업 자산가치 하락 효과에 대한 연구에 나선 것도 삼척블루파워의 사례처럼 전 세계적인 탄소 중립 이행이 기업 경영과 재무 전략에 끼치는 영향이 상당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기업의 좌초자산 부담을 어떻게 최소화할지 기초연구를 진행하려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용역의 핵심 목표는 가이드라인 제정 등 좌초자산 평가를 위한 기본 인프라를 구축해 탄소 다배출 업종이 탄소 중립 흐름에서 연착륙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각국 정부는 이미 지구온난화 대응 차원에서 적극적인 탄소 중립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내걸었다. 2050년까지 국내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다.
석탄발전 회사는 물론 정유·철강·발전·시멘트 기업들도 자사가 보유한 탄소 다배출 자산을 다른 설비로 교체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정부는 석탄발전 설비용량을 2022년 38.1GW에서 2036년 27.1GW로 줄일 계획이다. 정유 부문에서는 원유 나프타 설비를 바이오나프타로, 철강에서는 고로 제철을 수소환원제철로 대체해나가야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 고로나 원유 정제 설비, 석탄발전 등은 언젠가 좌초자산이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각국에서 경제정책과 탄소 중립 정책을 연계하고 있는 점도 우리 정부가 이 같은 행보에 나선 이유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기업의 시장가치가 점차 떨어질 수밖에 없어 관련 준비가 절실하다.
가령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2026년부터 본격 시행되는데 철강 등 6개 업종에 대해 일종의 ‘탄소 배출 관세’를 부과한다. 미국도 기후위기 대응을 명분으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제정했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에서 다음 달 공개하는 ESG 공시 기준 최종안 역시 좌초자산이 많은 기업에는 부담이다. ISSB는 유럽 국가들에 기반을 둔 국제회계기준(IFRS)재단 산하 기구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ISSB 기준이 들어오면 기업들이 재무적으로 중요한 좌초자산의 영향을 공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회계법인의 ESG 컨설팅 담당 임원은 “궁극적으로 석탄발전이나 시멘트 등은 탄소 다배출에 따라 사업 전환의 위험에 놓일 수밖에 없다”며 “이들 업종에 있는 회사들은 언젠가는 좌초자산 범위나 평가액 등을 발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제조업 비중이 높아 탈탄소 리스크가 큰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미리 좌초자산 책정 방법론을 연구해 대응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산업부도 국정과제 주요 이행 계획에 2024년까지 기업 자산 손실 영향 평가 기법을 개발하겠다고 밝히면서 관련 정책 실행에 드라이브를 거는 모습이다.
문제는 아직 전 세계적으로도 좌초자산 평가 방법론이 마땅히 정립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론적으로 좌초자산은 기업 보유 자산의 장부가치에 시장가치를 뺀 뒤 정부 정책, 지구온난화 강도, 기업의 사업 전환 계획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여러 시나리오를 짜 책정하게 된다. 좌초자산의 경우 다른 재무분석과 달리 정책 등 외생변수의 영향이 크다. 한 회계법인 임원은 “재무분석에서는 기업의 영업력·브랜드 등을 반영해 가치를 책정하는 반면 좌초자산은 여기에 더해 외부 변수의 영향이 상당히 크다”며 “단순 기업가치 평가의 문제가 아닌 경제 상황 변수, 기업 정책 변화 등이 어느 경로를 타고 갈 것인지 시나리오 분석을 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마치 금융감독원이 보험회사들의 자체 재무 시나리오 분석에 대해 지침을 주듯 좌초자산이 끼치는 재무적 영향력이나 파급효과를 예상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관련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만약 좌초자산을 측정하게 되면 어떤 방법론을 활용하든 상관없이 기업 입장에서 부담이 커지는 것은 일정 부분 불가피하다”며 “정부가 이들 기업의 사업 전환을 어떻게 유도할지 플랜 수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심우일 기자 vita@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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