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율 급상승, 피할 수 없는 공포의 시작 [마켓톡톡]

한정연 기자 2023. 5. 1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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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개인회생 역대 최대치
은행·카드·부동산PF 연체 급증
정부 부동산 대출규제 대폭 완화
연체 증가세와 정반대 정부 정책

모든 금융회사의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다. 금융회사들의 건전성을 위협할 수준은 아니지만, 위험 신호를 주기에는 충분한 수치다. 하지만, 정부는 부동산 규제를 확 푸는 등 연체 해법과는 정반대의 길을 고 있다.

대출 연체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개인회생 접수건수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사진=뉴시스]

미국은 지난해 5월 기준금리를 22년 만에 최대폭으로 인상하고, 6월부터는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매입해 시장의 유동성을 축소하는 양적 긴축에 나섰다. 한국은행도 세계 각국 중앙은행과 함께 가파른 금리인상을 꾀했지만, 물가상승률은 쉽게 잡히지 않고 있다. 고금리와 긴축 기조가 1년 이상 지속되면서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높아졌고, 연체율은 갈수록 치솟고 있다.

■ 급증하는 연체율=17일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8개 카드회사들의 올해 1분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7.48% 줄어들었다. 하나카드의 순이익 감소분은 63%, 우리카드는 46%였다.

카드사들의 연체율도 크게 높아졌다. 1분기 신한카드 연체율은 2019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1.37%였고, 삼성카드 연체율은 2년 2개월 만에 처음으로 1.00%를 넘어섰다. 8개 카드사 모두 연체율이 상승했다.

대출 연체율이란 원리금을 1개월 이상 연체한 비율이다. 연체 기간이 3개월 이상이면 고정이하여신(부실채권)으로 분류된다.

은행 중에선 저신용자 대출이 몰려있는 인터넷은행의 연체율이 눈에 띄게 올랐다. 2021년 5월 금융위원회가 "인터넷전문은행이 설립 취지에 맞게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을 2023년까지 30% 이상으로 확대하도록 하겠다"고 말한 뒤 인터넷은행의 중저신용 대출이 10배 이상 늘어났고, 결국 이 결정이 '연체 증가'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토스뱅크의 지난해 3분기 연체 대출은 619억원으로 1분기보다 56배로 증가하고,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의 연체 대출은 각각 2.5배, 2배가 됐다. 인터넷은행들의 지난해 3분기 기준 연체율은 1% 이하지만, 지난해 1분기보다 모두 상승했다.

저축은행들의 1분기 평균 연체율은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저축은행중앙회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저축은행들의 평균 연체율은 5.1%로 전 분기보다 1.7%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3개월 이상 연체한 1분기 고정이하여신 비율도 5.10%로 전 분기 4.04%보다 1.06%포인트 올라갔다.

대부업체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한국대부금융협회가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대형 대부업체 25곳의 지난 2월 신용대출 연체율은 9.8%를 기록해 1년 전보다 2.6%포인트 상승했다.

핀테크 업체인 토스, 네이버파이낸셜, 카카오페이 3사의 연체율도 치솟고 있다. 금감원이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토스의 연체율은 5.0%를 기록했다. 3개월 전보다 1.52%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카카오페이의 3월 연체율은 0.51%로 3개월 전보다 5배나 치솟았다. 네이버파이낸셜의 3월 연체율은 지난해 말보다 0.56%포인트 오른 2.7%를 기록했다. 다만, 이들 3사의 연체금액은 400억원대로 비교적 적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도 여전한 골칫거리다. 특히 증권사들의 PF 대출 연체율이 치솟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증권사들의 부동산 PF 연체율은 1년 전보다 3배 가까이 상승한 10.4%였다. 증권사 부동산 PF 연체 잔액은 지난해 말 4657억원으로 1년 전 1690억원보다 2배 이상 늘어났다.

금융위원회는 16일 농협·수협·신협·산림조합‧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의 부동산 관련 대손충당금 비율을 현재 100%에서 130% 이상으로 상향하는 내용의 감독규정 개정안을 마련했다. 손실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이를 흡수할 수 있도록 대손충당금 비율을 높이려는 것이다.

■ 개인회생 역대 최대=연체율이 급상승한 건 사실이지만 금융회사들이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위기는 아직 아니다. 우리 경제가 그만큼 허약해졌다는 신호 정도로 받아들이는 게 합리적이다.

실제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국내 은행들의 부실채권 비율은 12.9%였는데, 지난해 12월 말 기준 이 비율은 0.40%에 머물렀다. 다만, 3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의 비율이 2년 9개월 만에 소폭이지만 상승세로 전환한 건 눈여겨봐야 한다.

이렇게 모든 금융회사의 연체율이 치솟으면서 개인회생 신청 건수가 3월에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 3월 개인회생 접수 건수는 1만1228건을 기록해 지난해 1월보다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 월별 개인회생 접수 건수는 지난해 4월 6993건에서 점차 증가해 12월 8855건을 기록했고, 올해 1월에는 9218건, 2월에는 9736건을 기록했다.

신용회복위원회가 지난 4월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채무조정 신청자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채무조정 신청자 수는 지난해 10월 1만1788명, 11월 1만4579명이었는데 올해 3월 1만7567명으로 증가세를 이어갔다.

■ 급증하는 부동산 관련 대출=이처럼 연체와 파산이 늘어나는 와중에 가계대출은 더 늘어났다. 금감원이 지난 12일 발표한 4월 가계대출 동향 잠정치에 따르면, 4월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은 지난해 8월 이후 처음으로 반등해 2000억원 증가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이 1조9000억원 늘어났다.

가계대출 증가세를 주도하고 있는 대형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이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신규 가계대출은 지난 3월 18조4028억원으로 1년 전보다 86% 늘어났다. 4월 신규 가계대출 취급액은 15조3717억원으로 1년 전보다 69% 증가했다. 주담대가 3월과 4월에 각각 93%, 76% 급증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난 3월부터 부동산 대출 완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2일 규제 개정안을 의결했다. 다주택자가 규제지역 내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도록 명시한 기존 규정을 개정해 이를 가능하게 했다.

다주택자들은 규제지역에서 집값의 30%까지, 비규제지역에서는 6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연소득 9000만원 이하인 무주택 세대주가 규제지역 내에서 살 수 있는 집값을 6억원으로 한정했던 것도 폐지했다. 9억원 이상 고가주택을 보유했거나 부부합산 소득이 1억원이 넘는 1주택자들의 전세대출을 제한했던 규제도 3월부로 사라졌다.

■ 정부의 부채축소 의지=대출 연체는 부채를 줄이거나, 대출금을 낼 수 있도록 소득을 확보하게 해주는 방법이 최선이다. 당장 금융회사들의 건전성을 걱정해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연체율이나 회생건수가 이렇게 늘어나는데도 정부는 해법과는 정반대의 결정을 내리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를 보자. 금융위원회는 2021년 5월 인터넷전문은행들이 중저신용 대출을 크게 늘리도록 지도하면서, 중저신용자들의 상환능력을 평가하는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신용평가시스템(CSS)을 고도화하겠다고 밝혔다.

시중은행의 연체 규모가 그리 크진 않지만, 지금부터 관리에 들어갈 필요는 있다. [사진=뉴시스]

그런데 금융위는 지난 16일 카카오뱅크가 비금융정보를 활용해서 대출자들의 신용평가를 고도화하려는 신사업인 '본인 신용관리업'과 '전문 개인 신용평가업' 허가심사를 중단했다. 카카오뱅크의 연체율이 치솟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위가 이미 2년 전 권고한 대로 신용평가를 고도화하려는데 이를 막아선 것이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금융위가 카카오뱅크의 대주주 적격성에 문제를 제기한 게 영향을 미쳤다. 금융권 인허가·승인 심사중단제도는 소송·조사·검사 등 심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인정되면 기계적으로 중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21년 5월 이같은 '중단사유'에 문제가 있다며 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던 금융위로선 제 발등을 찍은 꼴이 됐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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