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사건 7주기…“살았더라면, 우리 같이 ‘서른’이 됐겠지”

강은 기자 2023. 5. 1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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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사건 3주기 추모제가 열린 지난 2019년 서울 강남역 11번 출구 앞에 시민들이 바닥에 놓은 추모 꽃.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6년 5월17일, 23살 여성이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살해당했다. 여성을 흉기로 찌른 남성은 피해자와 일면식이 없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논쟁이 불붙었다.

당시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피해자를 추모하고 억울한 죽음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담긴 메모지가 가득 붙었다. 경향신문이 기록한 1004개의 메모 중엔 이런 글귀가 있었다. “나와 똑같은 23세 여성, 단지 다른 점에 있다면 난 그 시간 다른 공간에 있었다는 것, 그뿐이다.” 피해자를 추모하는 촛불은 7년째 같은 장소에서 이어지고 있다. 17일 밤에도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시민들이 모인다.

또래 여성의 죽음을 바라봤던 이들 상당수는 사건 이후 ‘페미니스트’가 됐다고 증언한다. 어떤 이는 여성운동에 뛰어들었고, 어떤 이는 삶의 태도가 달라졌다. 적지 않은 이들이 인생의 경로가 달라졌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7년, 피해자와 동갑내기였던 여성들은 ‘서른’이 됐다. 이들은 2016년 강남역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으며, 20대를 어떻게 살아왔을까. 17일 경향신문이 만난 3명의 서른살 여성들은 “강남역 살인사건 전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고 했다.

“나는 계속 싸울 거야”
이주영씨(30) | 강은 기자

이주영씨(30)는 2015년 대학 졸업을 1년 앞두고 직장에 들어갔다. 회계법인 비서직이었다. 원하던 일은 아니었지만 생계 탓에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일터에서는 성희롱이 빈번했다. 하루는 상사가 단체대화방에 게시물을 올렸는데, 여성 연예인들 이름 옆에 수천만원씩 가격을 매겨둔 것이었다. ‘나가보겠습니다’ 짧은 메시지를 남기고 황급히 대화방을 나왔지만 불쾌한 감정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수많은 여성들이 강남 번화가에 모여 ‘묻지마 살인이 아니라 여성혐오 범죄’라고 외쳤다. 이씨는 “차별과 폭력의 대상이 됐던 여성들이 ‘이젠 정말 못 참겠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우연히 살아남았다’ ‘여자라서 죽었다’ 등 포스트잇에 적힌 글귀가 마음에 박혔다.

이씨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당당히 말하며 살았다”고 했다. 그동안 겪은 부당한 일들이 ‘여성혐오라는 토양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하게 됐다. 성희롱에 즉각 대처하는 것도 능숙해졌다.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한 편”이라는 이씨는 안정적인 직장을 관두고 성폭력 상담소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페미니즘을 빼고는 나를 설명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사건 이후 7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이씨는 여전히 공중화장실을 잘 가지 않는다. 그는 “지난해 신당역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 ‘또?’라는 생각이 들어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했다. 7년 전 떠난 또래 여성에게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우리 같은 여성들이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나는 계속 싸울 거야.”

“내가 살아온 7년은 피해자가 갖지 못한 시간”
류현아씨(30) | 강은 기자

류현아씨(30)는 강남역 살인사건 소식을 듣고 처음엔 당연히 ‘묻지마 살인’이라고 생각했다. 여성혐오라는 단어에 막연한 거부감을 느꼈다. 류씨는 “저 또한 마음 속에 저항감이 엄청 컸기 때문에 지금도 ‘여성차별은 없다’고 말하는 이들의 감정이 뭔지 잘 알 것 같다”고 했다.

사건을 둘러싼 토론과 논쟁이 류씨의 생각을 조금씩 바꾸었다. 같은 해 동아리에서 만난 남성으로부터 ‘준강간 피해’를 당한 경험이 류씨가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매년 5월17일이 다가오면 류씨는 꼬박꼬박 강남역 인근 추모제에 참석했다. 3주기 행사 때는 ‘묻지마 살해는 없다’라는 글귀가 적힌 포스터도 직접 제작했다.

그는 “내가 살아온 7년은 피해자가 살지 못한 시간”이라며 “피해자가 당연히 가지고 누려야할 것을 빼앗긴 게 너무 분하다”고 했다.

미술감독이던 그의 작품에도 점차 페미니즘이 스며들었다. 그는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생겨난 여성단체에 들어가 끊임없이 페미니즘을 이야기했다. 20대를 통과해 30대에 접어든 지금은 영화 일을 그만두고 한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중이다. 페미니스트로서 품는 고민도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바뀌는 중이다. 그는 “20대 때는 분노를 쏟아내고 불타올랐었다면, 서른이 된 지금은 (페미니즘을) 어떻게 삶과 잘 융화시킬지 더 고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누군가에는 지금이 그런 (불타오르는) 순간일 것”이라고 했다.

“네 삶은 그 자체로 의미 있었다”
배지은씨(30) | 강은 기자

배지은씨(30)는 모태신앙이다. 아버지가 목사였다. 비교적 개방적인 분위기의 교회들이었지만, 기독교 특유의 보수성은 어쩔 수 없었다. ‘늦게 다니지 말아라’ ‘단정하게 입어라’ ‘술 먹지 말아라’ 교회에 다니는 젊은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듣는 말이었다. 답답했지만, 익숙하기도 했다. 배씨는 “강남역 살인사건 이전까지 ‘성평등’은 내게 중요하지만, 조금은 부차적인 문제였다”고 했다.

사건 이후, 배씨는 “‘빨간약’을 먹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빨간약은 영화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소재로, 기존에 갇혀 있던 세계의 불편한 진실을 깨닫게 만드는 계기를 의미한다. 배씨는 “강남역 이후 여성들이 ‘이건 정말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들이 많아졌다”면서 “이것만큼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현상”이라고 했다.

배씨는 기독교와 페미니즘의 접점을 찾으며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어갔다. 여성 목사가 설교하는 교회를 찾아가고, 기독교인 페미니즘 운동 단체에서도 활동했다.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기간이 돌아올 때마다 젠더 폭력 희생자를 기리는 예배에 참석해 기도를 한다.

배씨는 7년 전 숨진 또래 여성을 생각하며 “(살았더라면) 서른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7년 전 23살이면, 뭔가를 성취할 수 있었을 만한 나이는 아니었잖아요. 그래서 피해자가 (짧은 삶을) 아쉬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네 삶은 그 자체로 소중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네 삶으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사는 곳이 더 좋은 자리가 돼가고 있다는 말도요.”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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