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재진 구분, 환자정보 보안 논란에 … 원격의료 '예고된 혼선'

심희진 기자(edge@mk.co.kr) 2023. 5. 1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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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시범사업 가이드라인 '소통·준비 태부족'

다음달부터 시행하기로 했던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이 돌연 수정된 것은 보건복지부의 깜깜이 전략과 안이한 판단, 준비 미흡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17일 "재진 환자에 한해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면 플랫폼 업체들이 초진 환자를 걸러낼 시스템을 새로 구축해야 하는데, 시범사업 예정일이 열흘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 작업을 마무리 짓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며 "도대체 지금까지 복지부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어이가 없을 정도"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앞서 플랫폼 업체들은 시범사업을 원만하게 시행하기 위해 '초진만 고집하지 않겠다'며 가이드라인을 함께 논의하자고 제안했지만 복지부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결국 물리적 시간이 임박해서야 계도 기간이라는 꼼수로 급한 불 끄기에 나선 것이다.

이날 복지부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대상 환자 범위를 재진 중심으로 가되, 일부 초진도 허용하는 것이 골자다. 섬·벽지에 거주하는 환자, 65세 이상 노인·장애인 등 거동 불편자, 감염병 확진자 등이 초진 허용 대상이다.

환자가 개인 의료 기록을 플랫폼에 올리면 의사가 이를 보고 판단하는 형태로 초진·재진을 구분 짓는다. 실시기관은 일반의원급이 원칙이지만 희귀질환자, 대면진료 후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환자 등에 한해 병원급도 허용하기로 했다.

약 배송 범위는 대폭 조정된다. 현행 체제에선 누구든 재택 수령이 가능하지만 앞으로는 약국에 직접 가서 받아야 한다. 계도 기간은 3개월로 9월 1일자부터 시범사업이 시행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새로운 시스템 구축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플랫폼 업체들 의견을 반영해 유예기간을 두게 됐다"고 말했다.

계도 기간을 두기로 한 것은 정부 스스로 준비 부족을 시인한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올 초 이미 5~6월에 코로나19 종식 선언이 있을 것으로 예견됐음에도 복지부가 관련 업계와 논의를 적극적으로 이어오지 않으면서 적시 시행이 어려워졌다는 설명이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이달 들어 복지부와 두 차례 만났지만 두 번 모두 업계 의견을 묻는 자리였고, 복지부 생각과 추진 방향에 대해선 들을 수 없었다"며 "그동안 가이드라인을 함께 만들어온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시범사업과 관련해 아무런 대비를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복지부가 대통령실 눈치를 많이 보면서 문제 해결이 늦어지고 있다"며 "사회적으로 반발이 예상되는 일은 아예 미루자는 기조로 가고 있고, 이번 비대면 진료를 대하는 모습도 그런 양상"이라고 꼬집었다. 일단 초진·재진 환자를 구분할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요구되는 만큼 6월 1일 시행은 불가능하다.

환자의 의료 데이터가 민간업체에 공유되는 문제에 대해 복지부가 어떤 보안 조치도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시범사업 연기에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이번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본인이 재진 환자임을 직접 증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해당 환자가 같은 병명코드로 30일 내 같은 의사에게 진료받은 적이 있다는 자료를 플랫폼에 업로드해야 한다. 민간업체가 의료 데이터를 수집·관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정보 유출 가능성은 없는지, 보안 시스템은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등 후속 조치가 전무한 상태다.

의료 데이터는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보안이 철저히 담보돼야 하는데 민간업체로 넘어갔을 때 과연 가능할지에 대해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 플랫폼 업체들이 계도 기간 내 보안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지, 해당 시스템이 정보 유출 가능성을 원천 차단할 수 있을지 등도 장담할 수 없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뚜렷한 안전장치를 마련해두지 않은 상태다. 한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의·약사와 환자를 연결하는 중개 역할만 하면 되는데 앞으로는 의료 데이터까지 관리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스러워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이번 시범사업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환자가 재진임을 입증하기 위해선 병·의원을 찾아가 미리 서류를 구비해 둬야 한다. 비대면 진료의 장점은 편리성에 있는데, 대면 진료보다 불편해져 이용자들이 아예 포기해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병·의원 측도 비대면 진료를 원하는 환자가 재진이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대면 진료보다 꺼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해당 환자가 재진이 맞는지, 혹시 조작된 서류는 아닌지를 꼼꼼히 들여다봐야 한다. 의도치 않은 불법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아예 비대면 진료를 포기하는 곳이 늘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부산 금정구의 한 의사는 "만약 환자가 같은 질환이라고 생각하고 비대면 진료를 요청했는데 막상 해보니 병명코드가 다르다면 의사는 시간을 허투루 쓴 것이 된다"며 "초진·재진 여부는 현장에서도 구분하기 어려워 나중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확인을 받아야 알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사는 "이번 시범사업은 병·의원의 행정적인 수고를 오히려 늘리고 의사에게 많은 짐을 떠넘기고 있다"고 밝혔다.

[심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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