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봄학교’ 100곳 늘린다는데…“인력·공간 없이 속도전” 우려
[윤석열 정부]
#1. 경기도 부천의 한 초등학교 교장 ㄱ씨는 지난 3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분이었다. 정부가 학부모 돌봄수요 해소를 위해 실시하고 있는 ‘늘봄학교’ 시범 사업을 맡을 인력을 충원해야 했기 때문이다. 늘봄학교 업무를 총괄할 부장 교사도 없이 일반 교사 한두명에게 업무를 떠맡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ㄱ씨는 “기간제 교사를 급하게 채용해서 지난달부터 겨우 운영을 시작했다”며 “교사는 늘봄 업무를 맡지 않는다는 입장이고 돌봄전담사랑도 협의가 안 되어있는데 전면 시행되면 대혼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2. 경북 구미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돌봄 공간을 마련하지 못해 고충을 겪었다. 초등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방과후 프로그램을 제공 하는데, 학생들이 늦게까지 남아있을 공간이 없어서 학교 도서실에서 칸막이를 치고 학생들을 앉혔다. 책이 들어찬 공간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도 없고, 도서실을 이용해야 하는 다른 학년 학생들에게도 불편이 컸다.
정부가 초등학생들에게 저녁 8시까지 돌봄을 제공하고 돌봄 유형을 다양화하는 정책인 ‘늘봄학교’ 시범 교육청을 현재 5곳에서 오는 2학기 7∼8곳으로 확대한다. 늘봄학교 업무를 전담할 교사 직군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자녀 돌봄 수요 해소를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내놓는 방향은 맞지만, 인력과 공간 부족 문제가 충분히 해소되지 않은 채 정책을 무리하게 확대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늘봄 시범학교 300곳으로…돌봄신청 자격 완화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7일 ‘초등 돌봄교실 대기 수요 해소 및 2학기 늘봄학교 정책 운영 방향’을 발표했다. 늘봄학교는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인 초등 전일제 학교의 새 이름으로, 초등돌봄교실 운영 시간을 저녁 7시에서 8시까지로 연장하고 아침돌봄·틈새돌봄 등 다양한 유형의 돌봄과 방과후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2025년 전면 도입 예정으로 현재 경기·인천·경북·대전·전남 등 5개 교육청 214개 초등학교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교육부는 2개 교육청 100개 내외의 학교를 추가로 선정해, 2학기부터 총 7∼8개 교육청의 300여개 학교에서 늘봄학교를 시범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당초 2024년부터 시범교육청을 7∼8곳으로 확대할 계획이었는데 앞당겨졌다. 올해 시범교육청에 지원되는 특별교부금 예산도 기존 6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늘린다.
교육부는 2학기 늘봄학교 시범운영 때는 질 좋은 방과후 프로그램 확대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대학, 민간, 지역사회와 협력하고 학부모의 만족도가 높은 예체능 활동도 확대한다. 또 현재 수익자 부담 방식으로 이뤄지는 방과후 프로그램의 경우, 수강하는 학생이 희망하면 프로그램을 하나 더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과후 1+1’ 제도를 도입한다. 초등 1학년의 학교 적응을 돕기 위해 방과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에듀케어’도 현행 최대 1학기에서 1년으로 확대한다.
초등돌봄교실의 신청 자격을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초등돌봄교실은 현재 맞벌이·저소득층·한부모가정 자녀를 우선 선정해 대기자가 지난 4월 기준 8700명에 달하는 등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교육부는 이를 다자녀나 다문화 가정 등으로도 단계적으로 확대해 궁극적으로는 모든 초등학생이 신청 가능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돌봄 대기를 이미 해소하여 여력이 있는 지역부터 의견 수렴을 실시할 예정이다.
인력 확보하려 ‘늘봄교사’ 도입…“속도전” 비판
교육부는 인력이나 공간 확보 방안으로 △돌봄교실 증실과 학교 리모델링 추진 △특별실·도서관 등을 활용한 돌봄공간 우선 마련 △돌봄전담사, 퇴직교원, 실버인력 등 적극 활용 △지역별 늘봄학교 지원센터로의 업무이관과 전담인력 배치 등의 방안을 제시한 상태다. 특히 교육부는 인력 확보를 위해 ‘늘봄 전담 교사제’라는 방안을 꺼내들었다. 이 장관은 “‘늘봄 담당 교사제’를 확립해, 늘봄 업무를 전담하는 (새로운) 비교과 교사 체제를 구축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올해 하반기에 가칭 ‘늘봄학교지원특별법’을 발의해 늘봄교사 도입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 방안으로 교사가 관련 업무를 떠맡거나 한시적 정원외 기간제 교사, 자원봉사자 등 비정규직 인력 위주로 불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문제가 해소될지는 미지수다. 도서실 등 아동 친화적이지 않은 공간에서 학생들을 늦은 시간까지 잡아놓고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컸다.
교육계에서는 시범교육청에서 지적된 교사의 업무 과중이나 돌봄에 부적합한 공간 운영과 같은 문제가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는데 무작정 정책을 펼치는 것은 ‘무리한 속도전’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이날 성명을 내어 “필수 전제인 돌봄인력 확충 등은 개선책 없이 선언적으로 모호하게 언급됐다”며 “정부는 정책에 속도를 붙이기 이전에 돌봄전담사 확충 등 인력 운영 방안을 시급히 보완하라”고 촉구했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교육부는 급하면 특별실이나 도서관을 돌봄에 활용하도록 하고 일부는 ‘교실당 20명 기준’을 넘겨도 된다고 했는데, 돌봄의 취지와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감안하면 부득이하게 활용하는 것 외에는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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