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美 동부 대정전의 교훈

김인수 기자(ecokis@mk.co.kr) 2023. 5. 1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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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적 적자에 시달리는 한국전력이 12일 비용 절감을 위해 발전소와 송배전망 투자를 1조3000억원 줄이겠다고 했다. 이미 2022~2026년 송배전망 투자 예산을 당초 계획보다 2조705억원이나 줄였는데 더 줄이겠다는 것이다. 순간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2003년 미국 동부 대정전이 기억났다. 5000만명이 이틀 동안 전기를 못 썼다. 기업이 입은 손실만 78조원이었다. 전력회사가 비용 절감을 위해 송전망 관리에 제대로 투자를 못한 탓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국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까 두렵다.

2003년 대정전의 직접적인 원인은 미국 오하이오주 교외 지역의 웃자란 나무 세 그루였다. 36만볼트에 달하는 고압선에 웃자란 나뭇가지가 닿았다. 순간 불꽃이 일었다. 세 그루 나무에 닿은 세 개의 전선망이 모두 차단돼 대정전이 발생했다. 가지치기만 자주 했어도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그러나 그레천 바크가 쓴 책 '그리드'에 따르면 미국 전력회사들은 가지치기 주기를 3년에서 5년으로 늘렸다고 한다. 특히 해당 지역을 관리하는 전력회사는 송전망 정비 같은 기초 설비 작업을 하던 숙련공 500명을 해고하기까지 했다. 전년에 수행해야 하는 정비 작업 중 17%만을 수행하고 1만1000건은 이듬해로 넘겼다. 비용 절감 말고 다른 이유를 상상하기는 힘들다.

한전도 각종 정비·보수 작업의 주기를 늘리고 있다. 돈이 없어서다. 긴급 보수는 제대로 하고 있고 일상적 보수의 주기만 늘어난 것이라고 해명은 한다. 그러나 미국 전력회사의 가지치기 역시 일상적 보수 작업이었다. 그 주기를 늘린 탓에 대정전이 왔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전기 수요는 폭증할 게 틀림없다. 예를 들어 전기차가 늘어날수록 전기는 더 많이 쓰게 된다. 전기 수요는 느는데 전력 시설 투자를 안 하면 대정전 위험은 더욱 커지게 된다.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을 미룬 탓에 한전 적자가 계속되고 끝내 대정전으로 한국 경제가 천문학적 손실을 입을 거 같아 두렵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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