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프로듀서’ 정키가 ‘상실한 자’들에 띄우는 말[★인명대사전]

이선명 기자 2023. 5. 1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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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 정키. 빅텐트에이앤엠(Big Tent A&M Corp) 제공



프로듀서 정키(JUNG KEY)는 ‘홀로’ ‘진심’ ‘우린 알아’ ‘내가 할 수 없는 말’ 등 히트곡으로 사랑받는 뮤지션이다. 함께한 이들 면면이 화려하다. 양다일, 휘인, 김나영, 선우정아, 지소울을 비롯해 세계적 뮤지션 시스코, 뮤직 소울차일드가 그의 부름에 응했다.

반면 정키의 음악은 마냥 화려하지만은 않다. 차분하고 깊다. ‘몰락한 이별의 아픔’의 감성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던 정키는 대중 앞에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이기도 하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방송된 KBS2 오디션 프로그램 ‘리슨업’에 직접 도전했다. 프로그램에서 여러 가수와 협업한 정키는 자신만의 걸작을 또 다시 탄생시키며 높은 성적을 거뒀다.

그랬던 정키가 1년 6개월 만에 다시 팬들 곁으로 복귀했다. 이번 앨범에서는 지난 공백기만큼 더욱더 음악적으로 기민하고 농익은 정키를 만나볼 수 있다.

여러 해 동안 혼자서 깊숙이 자신만의 도전을 이어온 정키. ‘감성을 갈고’ 새 앨범 ‘아임 파인’(I’m fine)으로 돌아온 정키에게 근황이 정말로 괜찮았는지를 물었다.

-그간 어찌 지냈나? 근황이 궁금하다.

싱글 앨범도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를 경험해 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나를 돌이켜보는 시간이라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특히 음악 외적으로 제가 할 수 있는 다른 예술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시도를 해보는 시간을 보냈어요.그림을 잘 못 그리는데 웹툰도 잠깐 배워보고, 평소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영화도 좋아하는 편이라 시나리오도 써보고 했습니다. 참, 앨범에 맞물려 이사도 준비했어요. 마음에 드는 공간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찾는데 이사를 자주하다 보니 눈만 높아져 생가보다 엄청 힘들었어요.

-KBS2 ‘리슨업’에서 뛰어난 프로듀싱 실력을 펼쳤다. 기억나는 에피소드나 소감이 있다면.

아무래도 4라운드에 리메이크 미션이 아니었나 싶어요. 아이돌 그룹 퍼플키스의 수안님과 함께 했는데, 장르도 제가 평소 하던 어쿠스틱 장르가 아닌 퓨처 베이스나, 신스 사운드를 많이 썼고,곡도 제가 직접 쓴 곡이 아닌 크라잉넛 선배님들의 밤이 깊었네 노래를 리메이크했는데 그게 최고 점수를 받았어요.너무 신나고 기분 좋았지만 반대로 많은 생각이 드는 순간이기도 했어요.

-‘정키’라는 이름으로 1년 6개월 만에 내는 이름이다. 앨범 활동이 뜸했던 이유는?

저는 보컬이 정해지면 곡을 쓰는 이른바 맞춤형 곡을 선호하는 편이에요.하고 싶은 가수들이 제가 제안했을 때 모두 흔쾌히 해주면 너무 감사하겠지만, 다들 스케줄이 많고 바쁜 경우가 많아서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아요.그래서 곡을 써놓고 제안을 넣었는데 거절을 당하면 다시 곡을 써야 해요.거진 작업실에 앉아 곡을 많이 쓰는 편인데 피처링이 정해지고 앨범이 나오기까지는 늘 이러한 이유로 오래 걸리는 것 같아요.

-정키는 그간 애절한 음악으로 ‘정키 발라드’ ‘정키 감성’이라는 영역을 확장해왔다. 이번 앨범도 이러한 범주에 속하는가?

이러한 범주를 넓히고자 혹은 벗어나 보고자 하는 곡들도 있는데 이번 앨범은 반대로 이런 범주에 속한 음악이 맞는 것 같아요.특히나 일부러 더 이런 범주를 오랜만에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이런 범주의 장르를 너무 자주 할 땐 제가 물렸었는데, 또 한동안 안 하니 제가 그리워했던 것 같아요.

-확장된 질문으로 꾸준히 앨범에 ‘이별’을 담아왔다.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현재 솔로이기도 하고 (슬픔), 주로 곡을 새벽에 작업하다 보니 이별에 대한 감성들이 많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또한 곡 안에 우리나라 언어로 감성을 담아내는 걸 좋아합니다. 근데 한글은 닫힌 발음들이 많아서 영어처럼 어떤 가사를 넣어도 자유롭게 묻는 경우가 드물어요. 특히, 제가 추구하는 느린 템포의 음악에서는 더욱 그래요.

이 두 가지 이유들이 합쳐지니 자연스럽게 이별에 대한 가사와 무드의 곡이 나왔을 때 ‘아 이거다’ 하는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정키 ‘나는 잘 지내’ 뮤직비디오 캡처. 유튜브 방송화면



-그렇다면 이별은 정키에게 어떤 의미인가.

매번 이별할 때 느끼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너무 아프고 허한 감정. 그 순간엔 아무리 가볍고, 생각보다 괜찮았다 해도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깊숙이 들어와 나를 흔드는 그런 존재예요.

-현재 대중음악계는 트로트, 댄스 등이 주류로 아쉽게도 발라드가 설자리가 부족해 보인다. 정키는 꾸준히 발라드 장르를 표방해왔는데 현 발라드 시장에 대한 정키의 시선이 궁금하다.

우선 저부터 발라드를 자주 듣지 않아요. 근데 제가 발라드 작곡했으니 많이 들어주세요는 조금 이기적인 것 같긴 합니다. 발라드는 우리나라의 ‘한’과 같은 단어 의미와 닮아 있는데, 이건 굉장히 딥하고 깊은 공감을 요하거든요. 근데 요즘은 인터넷과 산업의 발전으로 우리나라 감성도 점점 미국과 닮아가는 것 같아요.좀 더 라이트하고, 그 라이트함에 자극성을 담고. 컨텐츠가 너무 넘쳐나니 시선을 짧은 찰나에 사로잡지 않으면 굳이 찾아 듣지 않죠. 그럼에도 이 시장에 수요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도, 앞으로도요. 모두가 트랜디를 좋아하는 게 아니고, 모두가 뉴욕, 라스베이거스와 같은 대도시를 좋아하는 게 아니듯이 말이죠. 저는 제 음악에 발라드를 고집할 마음은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발라드의 시장이 좁아지고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딱히 피할 마음도 없습니다. 중요한 건 정키가 어떤 음악을 하느냐가 아니라, 정키가 이번엔 어떤 감성을 음악으로 표현했냐가 될 것 같거든요. 결정적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 이러한 믿음이 항상 있어요. 제가 좋은 음악을 만들면 언젠가 들을 수밖에 없다.

-정승환과 임세준과 협업한 이유는?

평소 정승환의 보컬을 좋아해서 함께 작업하고 싶었는데 타이밍이 맞지 않았어요. 드디어 함께 하게 되면서 초심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었어요.어떻게 보면 정석적인 감성의 노래를 정승환이라는 대표적인 보컬과 함께 하는 거 자체가 클래식이란 생각이 들었고, 정키의 시작을 함께한 보컬이 임세준이었기에 저의 초심이자 클래식이라고 생각했거든요.세준이도 흔쾌히 응해주면서 함께 진행할 수 있었어요.

-‘나는 잘 지내’ ‘여전해’ 이번 곡에 대한 정키의 직접적인 설명을 듣고 싶다.

언제나 이별 노래를 만들 땐 헤어진 옛 인연에 대한 감정선을 배제하기가 힘들어요. 무조건 특정 누군가만을 떠올렸다고 할 순 없지만 창작할 때 이미지들은 경험을 통해서 나오는 게 크니까요. 보통 헤어진 후 제 마음은 이랬던 것 같아요. 나는 잘 지낸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조금 공허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해요. 근데 너만 좀 덜 힘들어한다면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을 슬프게만 떠올리는 게 아니라 좋은 추억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단 마음이에요. 그래서 너가 혹시나 날 걱정하면서 더 힘들어한다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잘 지내고 있으니까.라고 전하는 곡이라고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위 감정선이 두 번째 노래 여전해에 서도 이어져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가사이기도 한데, 대표적인 가삿말이 후렴 첫 가사에요.

“니가 알던 그대로야, 나는 여전해.”

어떻게 보면 이별 후 덤덤하게 살아가는 삶을 음미하는 노래랄까요?



-뮤직비디오의 감성이 독특하다. 어떠한 의미를 담았는가. 에피소드가 있다면?

예전의 협업은 말만 협업이지 제 기준 안에 모든 걸 들여오려고 했다면, 요즘의 협업은 기준 자체를 잡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함께 하는 거란 생각을 해요. “약은 약사에게”라는 말이 있듯이, 뮤직비디오 같은 부분도 감독의 기획이 자유로운 게 더 중요할 때가 있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평소 비주얼스프럼의 정진수 감독님을 좋아했고 예전에 문의드렸을 때 스케줄이 안 맞아서 함께 못했던 기억이 있어, 이번에 어렵게 부탁을 드렸어요. 다들 해외에서 촬영한 이유가 있냐는 질문을 많이 주시는데 사실 감독님이 미국을 가실 일이 있는데 그게 저희 스케줄하고 겹쳐서 운 좋게 로케이션이 미국이 된 것뿐이거든요. 워낙 실력 있는 감독님이라 제가 딱히 더 한 말은 없고, 딱 하나만 말씀드렸어요.

“발라드라고 너무 뻔하게만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름 감독님 색을 입혀 독특하게 진행시켜 주신 것 같고, 저도 볼 때 그 감정선이 참 묘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달라.

우선 프로듀서 정키로서는 늘 같은 길을 갈 생각이에요. 열심히 진심을 다해 곡 만들고, 기획하고, 제작하고, 발매하고. 올해가 다 끝나기 전에 싱글 한 장 정도는 더 내고 싶은 바람입니다. 더불어, 다른 아티스트들의 앨범도 현재 진행하고 있는 것도 있고, 앞으로 해야 할 것도 있고 즐기면서 최선을 다해서 해나갈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좀 다양한 것들을 경험해 보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그게 뭐가 될진 몰라도 음악을 빼더라도 다양한 예술 분야 안에서 좀 더 허우적거리면서 경험해 볼 생각입니다.

-정키의 음악을 듣는 이들은 대다수 ‘이별의 아픔을 겪은 자’들이다. 이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이별의 경우 물리적인 아픔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유의 아픔은 중독성이 있는 것 같아요. 아픈 채로 지내는 내가 너무 괴롭지만 딱히 벗어나고 싶지 않은 그런 기분 있잖아요. 그래서 더 헤어 나오기 힘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그럴 때 ‘그렇다고 죽을 정도는 아니네.’ 이런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게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이 생각을 한 번 되뇌고 나면 엄청 힘들어만 하고 있는 내가 간혹 바보 같아 보일 때가 있더라고요.

제 음악을 사랑해 주시는 분들 너무 감사하고, 이별 직후에는 제 음악 듣지 마시고 잠시 쉬셨다가 조금 나아졌다 싶을 때 다시 들어주세요.

여러분들의 감성이 건강해야 저처럼 감성을 노래하는 프로듀서가 더 오래 음악 할 수 있으니까요! (하하)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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