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철칼럼] 68년 역사 민주당의 '도덕적 파산'

박정철 기자(parkjc@mk.co.kr) 2023. 5. 1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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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돈봉투·코인 의혹에
위선과 가식 '민낯' 드러나
온정주의 땐 당 전체 공멸
재창당 각오로 인적쇄신을

도덕성은 그동안 진보진영의 무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부패로 진보세력이 망하는 세상이 됐다. 정의와 공정, 청렴 등 도덕적 이상을 내세워 권력의 단맛을 보더니 기득권에 취해 사회적 변화와 요구를 팽개친 결과다. 문재인 정권 시절 사회적 공분을 샀던 조국·박원순·윤미향 사태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평소 법치와 개혁, 사회적 약자 보호를 부르짖었으나 실제 드러난 민낯은 특권과 반칙, 위선과 가식투성이였다. 일반 사람들이 기대하는 도덕적 신념과 가치관을 제시해 세간의 이목을 끌면서 자신들에 대한 사회적 명성과 지배력을 확보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였던 셈이다. '그랜드스탠딩'의 저자 저스틴 토시와 브랜던 웜키는 이처럼 자기 과시를 위해 도덕적 우월성을 꾸며내는 세력을 '도덕적 허세꾼'이라고 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사태도 이와 다르지 않다. 민주당이 '이재명 대장동' '송영길 돈봉투' '김남국 코인게이트' 의혹으로 풍비박산 난 것은 그동안 숨겨온 도덕적 허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탓이다. 겉으로는 '깨끗한 진보'를 외치던 공당의 전·현직 대표와 청년 국회의원이 상식을 뛰어넘는 부정과 협잡을 일삼고 사익을 꾀했으니 많은 서민과 청년이 배신감과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니 정의당조차 민주당을 향해 '도덕적 파산선고'를 내리는 것 아닌가. 진보정치의 목표가 국가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려는 것이라면, 민주당은 되레 '불의'를 향해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꼴이다.

국민 분노를 더 키우는 것은 정치적 책임을 저버린 채 어떻게든 위기를 모면해보려는 민주당의 얄팍한 행태다. 민주당은 비리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진심 어린 반성과 사죄보다 '모르쇠'로 버티거나 "야당 보복" "정치 공세" 운운하며 음모론으로 맞서기 일쑤다. "왜 우리만 문제 삼느냐"는 물귀신 작전도 불사한다. 그래도 비난 여론이 가라앉지 않으면 형식적인 진상조사나 '뒷북 사과' '탈당쇼'로 시간을 벌며 꼬리 자르기에 나선다. 이 같은 꼼수야말로 민주당이 집단적 도덕 상실증에 걸렸다는 방증이자, 당의 자정 시스템이 완전히 고장 났다는 신호다.

우리 헌법 제46조 제1항은 국회의원의 청렴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 윤리규범에도 청렴 의무, 이해충돌 방지 의무가 명시돼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 친명계가 "우리끼리 사냥하지 말자"며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선 것은 당의 신뢰와 존립 기반이 무너지든 말든 자신들의 '이익 공동체'만 보호하면 된다는 소아병적 자세다.

하지만 민주당이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온정주의와 극성 팬덤에 사로잡혀 낡은 잔재와 악습을 청산하지 못하면 당 전체가 공멸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사회심리학자 쿠르트 레빈의 지적처럼, 혁신은 과거와의 결별에서 시작된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4월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이 참패한 직후 천정배·신기남·정동영 등 소장파 의원들이 'DJ 가신 후퇴' 등을 촉구하는 '정풍운동'을 주도한 것은 당의 도덕적 파산과 추락을 막기 위한 승부수였다.

이 대표 취임 이후 온갖 부정과 비리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민주당이 68년의 역사를 계승하고 정통 야당 시절의 도덕적 신뢰를 되찾으려면 이제라도 재창당 각오로 인적쇄신에 나서야 한다. 부정부패에 대한 엄격한 기준과 원칙을 만들어 과감히 환부를 도려내고 연루자도 전원 퇴출시켜야 한다. 대문호 헤밍웨이는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파산하는 방법은 두 가지로 온다"며 "점진적으로, 그리고 갑자기"라고 했다. 망망대해에 던져진 민주당이 숭숭 구멍이 뚫린 낡은 배를 고쳐 살아남을지, 우두망찰 있다가 폭풍우에 휩쓸려 침몰할지는 오롯이 민주당의 선택에 달려 있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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