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만에 첫 단체행동 나선 간호사들…주요병원 "아직은 괜찮은데…"

이창섭 기자, 정심교 기자 2023. 5. 1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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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간호협회 첫 단체 행동 돌입
"환자 곁 떠나지 않을 것"… 의료 공백 우려 진화
1차 단체 행동은 수위 조절… "더 강한 2차 행동할 수도"
(서울=뉴스1) = 김영경 대한간호협회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회관 인근에서 정부의 간호법 거부권 행사 관련 1차 대응방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간호협회 제공) 2023.5.17/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간호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에 반발, 대한간호협회(이하 간협)가 출범 이후 첫 단체행동에 나섰지만 상급종합병원에선 간호사들이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1923년 조선간호부회에서 시작된 간협은 출범 이후 지금까지 단체 행동을 한 적이 없다. 이번이 첫 단체 행동이다. 다만 간협이 이번 단체 행동이 '1차'일 뿐이라며 향후 상황에 따라 더 높은 수위의 투쟁을 전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단체 행동을 개시하기로 한 17일 현재, 병원가에서는 간호사들이 실제로 면허증을 반납하거나, 타 직역 업무에 대한 지시를 거부하는 등의 움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인 서울대병원과 서울성모병원, 한양대병원, 길병원, 중앙대병원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특이사항은 없으며, 추이를 보고 있다"고 답했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아직 현장에서 특별한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내일은 어떨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는 간협이 단체행동에 나서긴 했지만 환자 진료공백을 최소화하겠다고 공언한데 따른 것으로 평가된다. '간호사 면허증 반납' 운동을 전개하기로 했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간호사의 연차 사용도 동시에 조직적으로 전개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간협이 이날 발표한 단체 행동 방안은 △간호법 관련 포스터 유인물 배포 △불법 진료 지시 거부(준법 투쟁) △불법 진료 지시 의사·병원 고발 △간호사 면허증 반납 운동 △규탄 대회 개최 및 연차 사용 △간호법 반대 정치인 총선 낙선 운동 등이다.

이 중에서 준법 투쟁과 면허증 반납 운동, 조직적인 연차 사용이 의료 현장에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간협은 "환자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다"며 진료 공백이 실제로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밝혔다.

특히 면허증 반납 운동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는 게 간협 설명이다. 앞서 간협이 회원 10만5191명을 대상으로 단체 행동 방안을 물었을 때, 6만7408명(64.1%)이 간호사 면허증 반납 운동에 참여하겠다고 답했다.

간협은 이날부터 간호사 면허증을 회원으로부터 받아서 모은 뒤 한 달 후 보건복지부(복지부)에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면허증을 복지부에 반납하는 날에는 장·차관을 고발할 예정이다. 협회 관계자는 "대통령께서 간호법 제정 거부권을 행사했는데 간호사한테 간호 업무를 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고 저희는 본다"며 "(면허증 반납은) 그것에 대한 저항의 표시이다"고 말했다. 이어 "면허증 반납 운동에 참여하겠다는 회원이 60%가 넘는데 복지부가 반납된 면허를 그대로 다 받아들이겠느냐? 업무를 정지시키겠느냐? 그렇게 보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간협에 따르면 이미 전국의 2·3차 의료기관 상당수에선 간호사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간호사는 1차 의료기관(개원가)보다 전문 간호 수요가 높고 중증질환을 다루는 2·3차 의료기관에 몰려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간호사들이 면허증을 반납하거나 의사 지시를 거부하는 사태가 현실화할 경우 사실상 병원 내 업무 혼선과 마비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간호사들이 근무를 기피하는 기관으로 꼽히는 장기요양기관의 경우 간호사의 업무 공백으로 인한 차질은 불 보듯 뻔하다. 한마디로 중증질환자와 장기 입원 중인 고령 환자에게 간호사 공백으로 인한 타격이 심할 것이란 관측이다.

(서울=뉴스1) 구윤성 기자 = 대한간호협회 회원이 1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의 간호법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관련 기자회견을 마친 뒤 눈물을 닦고 있다. 2023.5.16/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협회 관계자는 조직적인 연차 사용과 관련해서도 "한낱 한 시에 연차를 내면 우려하시는 의료 공백이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다"며 "간호사 본인이 사용하지 못한 연차를 일정 기간 설정해서 쓰는 방식이다. 병원 운영상 어려움이 있겠지만, 환자 곁을 떠나서 실제로 의료 공백 사태까지 발생한다고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의사의 불법 진료 지시를 따르지 않겠다는 '준법 투쟁'은 앞으로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이참에 간호사가 다른 의료 직역의 일을 떠맡아온 관행을 뿌리 뽑겠다는 것이다. 김영경 간협 회장은 "오늘부터 대리처방, 대리 수술, 대리기록, 채혈, 초음파 및 심전도 검사, 동맥혈 채취, 수술 수가 입력 등에 관한 의사의 불법 지시를 거부하겠다"고 말했다.

임상병리사를 대신해 채혈하는 등 실제로 의료 현장에서의 간호사 업무 비중은 크다. 대형병원에서는 의사를 대신해 의료 행위를 하는 이른바 'PA 간호사'가 관행적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준법 투쟁이 강도 높게 진행되면 현장에서 일정 부분 혼란이 예상된다.

간협은 이번 단체 행동이 '1차'일 뿐이라고 밝혔다. 전날 오후부터 밤까지 마라톤 회의를 거친 결과, 국민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수위를 조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향후 간호법 제정 재추진 상황에 따라 더 강도가 센 '2차' 단체 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복지부는 간호사의 단체 행동에 대응하기 위해 의료 공백 점검에 나섰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긴급상황점검회의에서 "진료 공백 발생으로 국민이 어려움을 겪는 일이 없도록 '보건의료 재난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에 따라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조치를 적절하게 시행해 달라"고 당부했다.

박 차관은 "간호사들께서 지금까지 환자 곁을 지켜오셨던 것처럼 앞으로도 환자와 함께해 주시길 바란다"며 "정부는 간호사가 자부심을 갖고 일하실 수 있도록 근로 여건 개선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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