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분신 목격 언론인 "현장 있던 노조 간부 만류 취지 말 들었다"

김예리 기자 2023. 5. 1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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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기자 "도착하자마자 동료가 '도대체 왜 이래' 만류 목격"
트라우마 시달리는 목격 동료에 조선일보 "왜 안 막았나"
동의없이 CCTV 공개 보도, 유족들은 자료 존재도 몰랐다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지난 1일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의 분신 현장에 있던 취재진이 당시 현장에 도착했을 때 양 지대장의 동료 건설노조 간부가 만류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가 '현장에 있던 노조 간부 A씨가 분신을 막지 않고 지켜만 봤다'고 보도한 가운데 이를 정면 반박하는 진술이다.

17일 양 지대장의 분신 당시 현장에 있었던 YTN 기자와 통화에 따르면, YTN 취재진이 도착한 뒤 양 지대장이 분신을 하기까지는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취재진은 도착하자마자 현장에 있던 양 지대장의 동료가 그에게 분신을 만류하는 모습을 발견했다고 했다. 양 지대장은 접근하려는 사람에게 휘발성 물질을 뿌린 상태라며 제지했다고 했다.

이 기자는 “도착했을 때 양회동 선생님이 잔디에 앉아계시고 그 앞에 휘발성 물질 한두 통이 보였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라 생각이 들었다”며 “처음에 '선생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만류하며 한두 발자국 접근하니 양 선생님이 '내 주변에 이미 휘발유(휘발성 물질)를 뿌려놓은 상태이니 가까이 오지 마라, 위험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그가 6~7보 거리에서 재차 만류한 직후 양 지대장은 분신했다.

이 기자는 “(기자가) 딱 도착했을 때, 앞에 있던 동료분이 '도대체 왜 이래', 이런 한탄 조의 어떤 말을 하는 걸 들었다”며 “'도대체 왜 이래' 이런 것들을 만류하는 취지의 말로 이해했다”고 했다. 그는 “정신이 없어 기억이 안 나고 정확한 워딩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 기자는 이 내용을 경찰에도 진술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전국건설노동조합은 17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일보 보도에 입장을 발표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2분 사이 일어난 일, 목격 간부는 만류했다”

이 기자는 “제가 그 분(양 지대장)과 말을 나눈 순간이 40~50초 정도 됐던 것 같고, 소화기를 가져와서 하기까지 채 2분이 안 됐던 것 같다”며 “솔직히 말하면 그 때 경황이 없었기 때문에 (분신 상황이 발생하고 나서) 그 분(목격 노동자)이 뭘 하시는지, 뭔가를 볼, 기억나는 것이 없고 뭘 했는지는 전혀 모른다”고 했다. 이 기자는 “다른 상황을 목격하거나 기억할 경황이 없었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리는 게 심리적으로 굉장히 힘들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겨레는 17일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도 조사 결과 해당 간부가 양씨의 분신을 만류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한겨레에 “노조 간부는 양씨에게 '하지 말라, 그러지 말라'고 말렸다고 한다”며 “(조선일보) 기사는 해당 기자가 알아서 쓴 거지 경찰에 취재하거나 연락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16~17일 이틀에 걸쳐 온라인과 지면으로 <건설노조원 분신 순간, 함께 있던 간부는 막지도 불 끄지도 않았다>, <분신 노조원 불붙일 때 민노총 간부 안 막았다> 기사를 냈다. 현장에 있던 양 지대장의 동료인 건설노조 간부가 분신을 말리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다고 보도했다.

▲민주노총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전국건설노동조합은 17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일보 보도에 입장을 발표했다. 박미성 건설노조 부위원장이 기자회견을 낭독하다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양 지대장과 절친했던 동료 간부…“조선 기자, '왜 안 막았나' 물어”

민주노총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전국건설노동조합은 17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일보 보도에 입장을 발표했다. 건설노조는 “어제 오늘 이어진 조선일보 보도 사건의 핵심은 CCTV 유출, 조선일보의 유가족과 목격자, 건설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혐오범죄와 2차 가해”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건설노조 설명에 따르면 고 양 지대장은 목격자와 만나기 전 이미 휘발성 물질을 자신의 몸과 주변에 뿌렸고, 목격자와 만났을 당시 라이터와 휘발성 물질을 들고 있었다. 김 국장은 “열사의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에 따라 섣부르게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불의의 사고가 날 것을 우려해 대화로 설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고 했다. 이는 그 뒤 현장에 도착한 YTN 기자의 정황 묘사와도 일치한다.

▲민주노총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전국건설노동조합은 17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일보 보도에 입장을 발표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이날 건설노조에 따르면 조선일보가 보도에서 공개한 양 지대장 분신 모습이 담긴 CCTV 자료는 유족들도 그 존재를 고지 받거나 열람한 적이 없는 자료다. 목격자는 양 지대장과 학창시절 동창이자 가족끼리도 잘 아는 사이인 절친한 사이로, 현재 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김준태 건설노조 교육선전국장은 “조선일보는 사건 이후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목격자에게 접근해 집요하게 '왜 막지 못했냐'가 아니라 '왜 막지 않았냐'며 결론을 정해두고 접근해 답변을 유도하고자 했다”고 했다.

김 국장은 조선일보가 '목격자 간부 A씨가 양 지대장의 분신 과정에서 휴대전화만 만졌다'고 보도한 내용에는 “열사는 동료들에게 메신저로 자신의 결정을 이미 알린 상황이었고 (다른) 동료가 열사와 목격자에게 전화를 해 통화가 오고가던 상황이다. 전화한 동료는 어떻게든 말리라고 말해 목격자는 해당 동료와 통화를 열사에게 요청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열사의 결정을 최대한 막으려는 노력이었음에도 조선일보는 악의적으로 휴대폰만 만지고 있었던 것처럼 비틀었다”고 했다.

언론노조 위원장 “대신 사과하겠다”… “반노동 넘어선 폭력”

▲민주노총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전국건설노동조합은 17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일보 보도에 입장을 발표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이 발언하다 목을 가다듬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아무도 사과하지 않으니 저라도 사과하겠다. 양회동 조합원과 그 주변의 동지들, 가장 마음 아프실 유족분들께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사죄한다”고 했다. SBS 기자인 윤 위원장은 메인 목소리로 “건설노조 위원장께서 조선일보의 보도로 갈갈이 찢긴 상처를 부여잡고, 이 자리에 계신 언론노동자들에게 취재 와줘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장면을 보며 참담함과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했다.

윤 위원장은 “조선일보의 왜곡조작 선동은 스스로 정한 윤리규범, 가이드라인을 정면 위배할 뿐 아니라, 노동3권을 보호하라고 명시한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조차 정면으로 무시하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홈페이지에 공개한 윤리규범 가이드라인에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상의 정보나 영상은 보완 취재를 하는 등 사실 확인 절차를 거친다 △확인된 사실을 기사로 쓴다 △사실 여부는 공식 경로나 복수 취재원을 통해 확인한다는 원칙을 명시했다.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은 “정치권력이 양회동 열사를 죽음으로 내몰아놓고, 그들과 한편이 된 언론권력이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 혐오 범죄를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저지르고 있다”며 “조선일보의 어제 보도는 검찰과 경찰로부터 자료를 받아 작성됐다는 정황이 여러 가지 있다. 유족과 당사자 동의도 받지 않은 자료를 조선일보란 특정 언론에 넘겨 왜곡선동할 목적으로 사용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민주노총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전국건설노동조합은 17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일보보도에 입장을 발표했다. 권영길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서울신문 기자 출신으로 초대 민주노총 위원장과 언론노조 위원장을 지낸 권영길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기자회견에 참석해 “건설노동자 양회동은 스스로 목숨을 던졌지만 그것은 윤석열 정권과 조선일보 같은 언론이 발맞춰 저지른 사회적 살인”이라고 말했다.

건설노조는 이날 조선일보를 상대로 명예훼손 고소와 기사 삭제, 정정보도와 손해배상 등 법적 대응에 나선다고 밝혔다. 춘천지검 강릉지청 CCTV 유출에 대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에 대해 고소고발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17일 페이스북에서 조선일보 보도를 언급하며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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