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데이터 “있어도 활용 못해” vs “민간 무임승차 말라”

배옥진 2023. 5. 1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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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공단 보유한 국민건강정보 5502억건
활용 가이드라인 재정비 놓고 업권별 충돌

보건의료연대 관계자들이 17일 서울 건강보험공단 서울강원지역본부에서 열린 ‘건강보험자료 제공 가이드라인 토론회’에서 토론회 해산을 요구하고 있다. 이 날 보건의료연대는 약 40분 가량 토론회장을 점거하다 건보공단 측과 합의 후 현장을 빠져나갔다. (사진=전자신문DB)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유한 국민 건강정보를 민간기업이 활용하는 방안을 놓고 의료계·시민단체와 보험업권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렸다.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개인 의료정보 유출 우려와 소비자에 불리한 편향된 상품 설계에 활용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보험업권은 보장 사각지대 해소와 새로운 보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데이터 활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17일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동 개최한 ‘건강보험자료 제공 가이드라인 토론회’에서는 이같은 업권별 입장이 충돌했다.

현재 쟁점은 민간보험사에 가명처리 건강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난 2021년 5개 보험사에서 데이터를 요청했으나 당시 △정보주체의 이익침해 여부 △과학적 연구 해당 여부 △자료제공 최소화 등 심의기준에 미흡하다는 이유로 불허했다.

그러나 당시 심의기준에 대한 이견이 다수 제기되고 데이터 활용 필요성에 대한 지적이 계속됨에 따라 건보공단은 작년 10월 각 분야 의견을 담은 새로운 가이드라인 중재안을 마련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특정 집단이나 국민에게 불이익을 주는 연구(특정 계층 해지 혹은 보험료 인상을 위한 서비스 개발, 특정 계층 가입 거절을 위한 서비스 개발)에 자료를 제공하지 않고 △데이터 왜곡·오용 방지를 위해 공단과 학계가 필요 시 공동연구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방안을 담았다. 또 △연구결과를 부적절하게 활용하지 않도록 공단에서 ‘사전동의’를 획득하도록 했다.

“공·사보험 데이터 협의체 필요”

이날 행사에서는 민간 보험사의 보험상품 개발을 위한 연구도 개인정보보호법상 ‘과학적 연구’에 해당하므로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에 부합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윤아리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 총무이사는 “보험사가 신규 상품개발이나 기존 상품 개선 목적으로 수행하는 연구도 과학적 방법을 적용하는 한 개인정보보호법에서 규정한 과학적 연구에 해당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또 “건강보험자료가 양이 방대하고 건강 관련 민감 정보가 다수 포함돼 있어 가명정보라 해도 재식별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며 “가이드라인에서 재식별 가능성, 목적 외 이용, 제3자 제공 여부 등을 고려하고 자료 제공을 최소화하도록 한 것은 의미있다”고 말했다.

보험업권은 최근 의료계가 질병의 사후 치료에서 예방 중심으로 변하고 있고 보험도 이에 맞게끔 변화하는 과정에서 공공의료데이터 활용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건전한 공공의료데이터 개방·활용을 위해 일종의 컨트롤타워인 ‘공·사보험 데이터 협의체’를 국무총리 산하에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부, 학회, 시민단체, 건보공단, 심평원, 보험업계가 참여해 체계적인 데이터 활용기반을 조성하는 등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봤다.

정성희 실장은 “과거에는 진단, 수술비를 보장하는 사후적 성격이 짙었지만 이제는 공공의료데이터 기반으로 검사·검진비용 등 예방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보장모델 개발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며 “공공의료데이터 기반으로 보험 사각지대 해소와 새로운 보장 수요 충족 등의 효과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문병준 한화생명 데이터랩 과장은 “국내 공공의료데이터가 있음에도 활용이 어려워 해외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우리 국민의 유전형질과 생활패턴이 서양인과 달라 정교한 위험분석이나 적정보험료 산출, 보장 확대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으며 건보공단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가 공익에 기여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공공목적 데이터, 민간서 무임승차 말라”

이날 행사에서는 건강보험데이터 제공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다수 제기됐다.

건보공단은 익명에 기반한 통계 데이터를 산업계에 지속 제공하고 있다. 2016년부터 2022년까지 민간보험사에 제공한 것은 676건으로 전체 중 45.3%를 차지했다.

김명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책통계지원센터장은 “병원, 제약사 등은 데이터 확보를 위해 각자 거액을 투입하고 있다”며 “보험사는 사실상 공공의료데이터 무임승차를 원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는 건보공단 데이터에 진료정보 외에 납세, 재산, 소득 등 다양한 금융정보가 담겨있어 개인을 특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희귀질환자일수록 신분 노출 가능성이 커져 보험료 인상이나 보험가입 거절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종민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는 “의료정보와 금융정보가 결합했을 때 생산되는 데이터가 가장 리스크가 높다”며 “보험사는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일 뿐이며 국민을 위한 상품을 설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보험사의 공공의료데이터 이용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부족한 것 같다”며 “의료 소비자가 정보 주체가 되고 본인이 정보제공·활용 범위, 제3자 제공을 알고 선택해야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보험사가 많은 정보를 갖게 되면 소비자를 선택·차별할 수 있게 되고 궁극적으로 소비자 후생 증진이 아닌 비용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김성현 대한병원협회 자문위원은 “보험사의 상품 개선을 위해 공공의 자산을 사용하겠다는 것은 과도한 요청”이라며 “생산은 의료계가 하고 돈은 보험사만 버는 박탈적 구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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