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다룬 영화 ‘케랄라 이야기’에 증오 더 불 붙는 인도

박은하 기자 2023. 5. 1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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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케랄라 이야기’ 포스터

영화 한 편이 인도를 갈라놓고 있다. 미디어 선전에 속아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한 인도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케랄라 이야기>가 종교분쟁으로 얼룩진 인도 사회의 증오에 기름을 붓고 있다. 집권 인도인민당(BJP)이 영화를 활용해 증오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도 중서부 마하라슈트라주 아콜라시에서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케랄라 이야기>로 촉발된 집단 충돌로 1명이 사망하고 8명이 다쳤으며 100명 이상이 체포됐다고 BBC가 16일 보도했다. 당국은 소요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인터넷 서비스를 중단하고 통행금지 시간을 선포했다.

지역 주민 2명이 1주일 전 개봉해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이 영화를 보고 채팅으로 나눈 대화가 발단이 됐다. 대화 내용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퍼지면서 갈등이 확산됐고 13일 경찰서 앞에서 벌어진 항의시위 도중 충돌이 발생했다. 경찰 관계자는 “(인스타그램에 공개된 대화 내용 중 일부가) 종교적 감정을 상하게 했다”고 말하며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고 더인디언익스프레스가 전했다.

영화는 꾐에 빠져 이슬람교로 개종한 후 IS 전사와 결혼한 인도 남부 케랄라주의 힌두교도와 기독교도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허구이지만 실화도 일부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케랄라 출신 여성 4명이 아프가니스탄의 IS조직에 가담했다가 2019년부터 현지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2021년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 후 알려지기도 했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됐다. 힌두 민족주를 표방하며 무슬림을 공공연히 비난해 온 정당인 BJP 집권 이후 힌두교와 무슬림, 무슬림과 기독교인 간 갈등이 극심해진 상황에서 영화가 무슬림에 대한 증오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인도의 힌두교도는 14억명의 전체 인구 가운데 80%가량을 차지한다.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의 비중은 각각 14%와 2%이다.

영화가 개봉하자 SNS에서는 ‘나의 케랄라 이야기(#MyKeralaStory)’, ‘진짜 케랄라 이야기(#RealKeralaStory)’ 등의 해시태그와 함께 무슬림에 대한 증오와 비판을 표출하는 감상평이 쏟아졌으며 모스크가 공격받는 일이 보고됐다.

BBC에 따르면 피나라이 비자얀 케랄라주 총리는 “영화가 증오와 선동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고 했지만 상영을 금지하지 않았다. 서벵골주 정부는 이 영화가 “평화와 질서에 위협이 된다”며 상영을 금지했다. 남부 타밀나두주의 복합상영관 대표자 협회도 시위 발생 등을 이유로 이 영화의 상영을 중단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BJP 지도자들은 영화가 중요한 문제를 다뤘다며 찬사를 쏟아냈다. BJP가 집권한 우타르 프라데시와 마디아 프라데시는 이 영화에 면세 혜택을 줬다. 국가가 영화를 ‘면세’로 선언하면 티켓 가격의 6~9% 상당으로 매겨지는 오락세가 면제된다. 티켓값 할인 효과뿐 아니라 홍보 효과도 커진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지난주 인도 남부에서 유일하게 BJP가 집권한 카르나타카주의 선거 운동에 참석해 이 영화가 “테러리즘의 결과를 폭로하려 했다”고 말했다.

더인디언익스프레스에 따르면 집권당의 지원을 받는 <케랄라 이야기>는 15일 기준 전국 1500개의 스크린에서 상영하고 있다. 이 매체는 이 영화의 흥행은 비슷한 시기 개봉한 영화 <아프와아>와 대조된다고 지적했다.

<아프와아>는 소수종교나 여성 등 소수자를 향한 대중의 확증편향을 활용해 수완이 좋은 개인이나 그룹이 증오를 부추기는 모습을 담은 스릴러물이다. 유명 감독이 연출했고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지만 확보한 스크린은 60개에도 미치지 못했다. 상영시각도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 등 흥행에 불리한 시간에 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더인디언익스프레스는 “<케랄라 이야기>는 BJP 정부의 지원을 얻었고 <아프와아>는 개봉일에 사라졌다”고 전했다.

인도 야권은 <케랄라 이야기>가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영화 티저 영상은 케랄라에서만 3만2000명의 여성이 IS에 합류했다고 밝힌다. BBC는 케랄라주의 한 경찰 관계자를 인용해 “2016년 이후 이슬람교 개종 후 IS에 합류한 케랄라주 여성의 수는 10∼15명을 넘지 않는다”고 전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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