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아루스를 떠올려 보세요” 순수한 낭만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장형순 작가
손에 쉽게 잡히는 종이를 통해 또다른 세상을 구현하고, 세상과 세상을 잇는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데 진심을 다하는 이가 있다. 건축학도로 출발해 종이를 통한 디자인에 몰두해온 장형순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그가 일부러 종이라는 소재에만 매달리는 건 아니다. 다만 그의 관심사가 면을 디자인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각과 면을 마음껏 다룰 수 있는 소재인 종이는 그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는 다보탑과 팔달문 등 각종 문화재뿐 아니라 동물이나 캐릭터, 건축물 등을 종이모형으로 디자인하고 제작해오면서 어린이들과 소통을 이어왔다. 2005년부터 전시를 꾸준히 개최해 작품 세계를 알리는 데도 열중하는 그는 여러 지역의 학교에서 종이모형을 알려주는 장형순종이모형교실로 소통의 장도 마련해왔다. 또 그는 2013년부터 종이모형을 기반으로 한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간 ‘이드의 선택’, ‘언덕 위의 아루스’, ‘스피사틀란의 젠더시스’ 등을 통해 작가만의 상상력과 생명력이 살아숨쉬는 세계관을 구축해왔다.
장 작가가 만든 작품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단순한 작품들의 나열로 다가오지 않는다. 작업실을 비롯한 전시 공간 등 그의 궤적이 묻어나는 곳곳에서 존재감을 한껏 드러내고 있는 종이모형들은 그의 머릿속을 본떠 만든 하나의 거대한 세계다.
장 작가는 평소 상상 속의 어딘가에서 만날 법한 그의 작품들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친밀하게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 그의 염원을 담은 전시 ‘언덕 위의 아루스’가 복합문화공간 111CM에서 지난 2일 개막해 시민들과 만나고 있다. 이번 전시 기간 동안 장 작가의 종이모형 작품, 그가 만들어낸 창작 캐릭터에 얽힌 배경과 스토리, 책과 스케치 등 그의 애정이 듬뿍 담긴 61점을 전시장 곳곳에서 접할 수 있다. 그는 전시 기간 가운데 지난 9일에 이어 오는 23일 작품 세계를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구성한 예술교육프로그램도 시민들을 위해 선보인다.
사실 건축학도였던 그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계기로 건축을 그만두게 됐다고 회상했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를 죽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애니메이션계로 눈을 돌렸다. 펜 스케치을 비롯해 각종 디자인에 꾸준한 관심을 이어오던 그에게 현실과 멀게만 느껴지던 가상의 세계를 만드는 일은 그 자체로 도전이자 숙명과도 같은 작업이었다.
그래서인지 장 작가의 내면엔 순수한 낭만이 꿈틀댄다. 판타지 세계 속 비인간과 인간 존재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들을 묘사하는 데 있어 장 작가는 세밀한 부분들까지 자신이 생각한 구상을 적용하면서 세계관을 구축하는 데 몰두한다. 그가 만든 온기가 스며든 로봇인 ‘언덕 위 아루스’는 철공소가 늘어서 있던 서울 문래동에서 탄생했다. 이 마을에 마지막으로 남게 된 아이가 누구와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생각하던 작가는 한 아이 만을 위한 공간을 마음속에 품은 로봇을 떠올렸다. 그렇게 집필하게 된 책 속의 아루스는 펜 스케치를 거쳐 종이모형으로 여러 차례 만들어지면서 생명력을 획득했다.
그의 손에서 탄생한 캐릭터가 마침내 구현돼 현실에 자리할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장 작가는 “사실 캐릭터 하나하나 만들 때마다 설렘과 걱정이 뒤섞인 채 애틋하게 바라보게 된다”면서 “아루스도 세상에 알려지지 못한 채 묻혀버리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이렇게 전시를 통해 사람들과 만나고 다시금 생명력을 얻지 않나. 결국 캐릭터들이 오랫동안 회자되기 위해선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송상호 기자 ssh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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