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 ‘볼 맛’ 안 나는 세계문화유산 경주 양동마을…집 주인은 ‘죽을 맛’[현장에서]
생활 불편해 보수하기 꺼려 땜질만
주민들 “슬레이트로 바뀐 것도 역사”
“여기는 관리가 안 되는 것 같아.”
지난 16일 오후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 곳을 방문한 독일인 스벤 슐츠(36)가 오래돼 보이는 지붕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붕 사이에는 빛바랜 기와 여러 장이 부서진 채 방치돼 있었고 물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한 천막과 비닐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지붕 위 천막과 비닐을 고정하기 위해 폐타이어를 얹어놓은 경우도 있었다.
슐츠는 “한국 전통가옥들 사이에 어울리지 않는 풍경들이 보여 아쉽다”며 “친구들도 (전통가옥과는 어울리지 않는) 알록달록한 색깔(천막) 때문에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세계문화유산인 경주 양동마을이 훼손된 채 방치되고 있다. 문화재청과 마을주민들이 오래된 가옥의 지붕 형태를 두고 갈등을 빚으면서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양동마을은 경주손씨와 여강이씨가 600년 넘게 살아온 전형적인 양반촌으로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곳은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승격 지정됐는데, 문화재청은 이때 건물 원형 보존을 위해 양동마을 일부 가옥의 지붕 형태를 초가지붕으로 규정했다.
이후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2013년과 2017년 두 차례 양동마을 정비계획을 수립하면서 각 가옥을 기와집과 초가집으로 구분했다. 이에 따라 초가로 구분된 가옥의 경우 지붕을 수선하거나 교체하려면 이엉(짚으로 엮어 만든 지붕재료)을 이용한 지붕만 가능하도록 했다. 당시 문화재청은 원형 고증을 위해 가옥 규모와 용도, 기둥 크기 등을 종합해 구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1960년대 새마을운동 이후 양동마을 가옥 대부분이 이미 지붕을 기와와 슬레이트 등으로 개보수했다는 점이다. 그간 초가지붕을 쓰지 않았던 집들이 규정에 따라 초가지붕을 써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주민들은 2014년 문화재청에 ‘양동마을 평기와 가옥 개축 건의서’를 전달하는 등 지붕을 기와로 변경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초가지붕에는 빗물이 고이면서 벌레가 발생하고 매년 교체를 해야 하는 등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일부 주민은 초가지붕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수리가 필요한 지붕에 천막 등을 덮어두고 생활하고 있다.
가옥 일부만 초가지붕으로 교체한 권혁두 할머니(84)는 “안채를 초가지붕으로 교체해봤는데 보통 일이 아니다”며 “(초가지붕에서) 굼벵이 배설물이 떨어져 마당이 벌겋게 물이 든다. 오죽하면 (다른 건물들은) 비가 새는데도 천막을 둘러놓겠느냐”고 말했다.
이지관 양동마을 운영위원회장도 “초가집 지붕이 슬레이트로 바뀐 것도 양동마을의 역사 아니냐”며 “원형 보존이라는 의미로 실제로 생활하는 주민들 불편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동마을에는 현재 기와집 183채와 초가집 242채에 141가구 273명이 살고 있다.
문화재청은 양동마을과 관련해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보호·관리 되고 있다고 했다. 수리가 필요한 가옥이 보수정비를 신청하면 원형 고증에 따라 국비로 보수 및 정비작업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초가지붕을 전통기와로 변경하는 것은 민속마을의 진정성 훼손 우려 등으로 문화재위원회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라는 입장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문화유산의 전통경관을 회복하고 주민들의 거주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현재 노후가옥 및 주변정비 사업과 민속마을 내 생활기반시설 정비를 추진하고 있다”며 “지속 가능한 민속문화유산 보존 및 관리를 위해 주민들의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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