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스미가세키문학과 일본의 속내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2023. 5. 1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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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디넷코리아=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요즘 일본에서는 G7 정상회의를 앞두고 LGBTQ(여성 동성애자·남성 동성애자·양성애자·퀴어) 차별금지법안을 지정하기 위해 법안심사가 급피치로 진행 중이다.

여야가 함께 논의하고 합의한 법안의 이름은 차별금지법이었지만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자민당 측에서 여야 합의와는 다른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해 여야 간 마찰을 빚고 있다.

마찰 원인은 여야 간 합의한 법안 이름과 내용이 자민당에서 최종 발의하고자 하는 최종안에서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우선 법안 이름을 ‘LGBTQ 차별금지법’에서 ‘LGBTQ 이해증진촉진법’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법 안내서도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문구가 ‘부당한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문구로 바뀐 것이 화근이다.

‘차별을 금지한다’는 말과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해를 증진한다는 말은 비슷하지만 ‘차별금지’와 ‘이해증진촉진’과는 전혀 다른 표현이다.

또 법 안내 문구에서도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말과 ‘부당한 차별이 있어서는 아니된다’는 말도 천양지차다. ‘부당하다’는 정의를 누가 내리고, 무슨 기준으로 판단하느냐에 시의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고 의미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말이다. 아마도 자민당 내부 관련 법안 추진 반대세력을 배려해 법안내용을 완화하려는 타협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일본은 단어 하나하나를 두고 여러 가지 기교를 부려서 표면적인 표현과는 전혀 다른 결론을 만들어 낸다. 일본에서는 이를 가스미가세키문학(霞ヶ関文学)이라고 하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소인수 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뉴시스)

가스미가세키문학이란 가스미가세키(한국으로 이야기하면 세종로), 즉 중앙부처가 입주해 있는 지역을 통칭해 일컫는 가스미가세키에서 흔히 사용하는 ‘고도의 말장난’을 은유한 문학이라고 지은 조어다.

일본 정부가 작성하는 외교문서에는 우리로 하여금 오해를 하게 만드는 수사가 많이 사용된다. 일본과의 협약이나 합의문서를 작성할 때는 한 글자 한 글자 조심해야 한다. 한국에는 글자 하나하나 정확히 이해하고 상대할 능력을 보유한 정부 당국자가 없는 것 같다는 걱정과 우려가 앞선다.

며칠 전에도 니시무라 경제산업성 대신이 조만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정화시설과 해양방류 시설을 조사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할 한국시찰단에 어디까지나 ‘이해증진’을 위해 받아들이는 것이지 조사 혹은 사찰단은 아니라고 발표했다.

LGBTQ 차별금지법을 이해증진 촉진법으로 무력화하는 수법처럼게 단순히 본인들의 주장처럼 원전 오염수가 안전하다는 한국 측 동의를 확보하기 위한 알리바이 만들기일 뿐이다. 우리가 희망하는 것처럼 정확한 근거와 자료제시로 한국 국민을 납득시킬 만한 의도는 없어 보이며 더더욱 우리 국민을 납득시키기 위한 추가 안전대책 확보 등의 요청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것을 드러낸 말이라 생각된다.

일본인 특유의 말장난은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나타났다. 정상회담 후 열린 공동기자회견 중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당시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이 고통스럽고 억울하고 분한 일을 겪은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고 발언했고, 이어진 기자 질문에서 ‘지금 발언이 일본 총리로서 공식발언인지’ 재차 확인을 하자 기시다 총리는 ‘개인적’인 견해라며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우리 상식으로 판단하자면 일국의 총리가 공적인 자리에서 발언하면서 개인적인 견해라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개인적인 견해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지만 일본인은 이를 개인적인 발언으로 인정하고 총리에게 발언에 대한 정치적인 추궁을 하지 않는다.

기시다 총리는 이러한 기교를 통해 한국 정부엔 립서비스를 하고 일본 지지세력에는 총리대신으로서 추가로 사과 하지 않았다는 실리를 챙겼다.

윤석열 정부는 위안부문제와 징용공 문제 그리고 원전 오염수 문제 등 산적한 현안를 일거에 해결하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만만해 보이는 과제는 아닌 것 같다.

한번 속으면 속인 놈이 나쁜 놈이고,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고, 세 번 속으면 그때는 공범이 된다는 말이 있다. 이제 더는 이런 일로 속는 일이 없길 고대한다. 이왕 하는 것이라면 제대로 하면 참 좋으련만.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yomutaku@e-corporation.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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