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민, 쓴소리 맞다만...동료 소환 꼭 필요했나 [이슈&톡]

김지현 기자 2023. 5. 1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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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작가의 불호로 하차를 통보 받았다는 배우 허정민의 폭로글이 업계 내 캐스팅 시스템 문제로 비화되는 분위기다. 드라마 제작진이 “배우가 캐릭터에 맞지 않아 생긴 일”이라고 해명했지만 문제를 지적하는 허정민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허정민의 폭로글은 꽤 원색적인 뉘앙스로 쓰였다. 그는 지난 16일 SNS를 통해 KBS2 새 주말드라마 ‘효심이네 각자도생’에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작가가 자신을 싫다는 이유로 합류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작가님께서 싫다고 까버렸다’게 그의 주장. 배우는 자신이 못생겨서인지, 싹수가 없어서인지 연기를 못해서인지 (하차의 이유를) 알수가 없다고 적었다.

논란이 커지자 KBS는 진화에 나섰다. "작가가 캐스팅에 관여한 바 없으며, 허정민의 하차는 배우와 작품이 맞지 않다고 판단한 제작진의 생각이었다"는 입장이다. 동시에 배우의 글에도 유감을 표했다.

허정민은 또 즉각 반응했다.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깊은 사과를 드린다. 제가 많이 모자랐다”고 사과하면서도 “(제가) 뒤늦게 통보를 받고 미친X처럼 글 올리고, 난리를 친 거다. 제작진의 유감 겸허히 수용하겠다. 결국 사과는 1도 없네”라며 SNS에 제작진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자신만의 분노가 아님을 강조하고 싶던 것일까. 동료 배우와의 경험담도 소환했다. 10년 전 KBS 3층 복도에서 있던 일이다. KBS 미니시리즈 대본 리딩실에 한 낯선 사내가 자신과 동료인 고 배우의 뒷덜미를 붙잡고 구석 골방에 끌고 간 일화다.

허정민은 이 낯선 사내에게 드라마 제작사 대표의 말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대표가 잠시 해외 출장을 간 사이 ‘너희 같은 놈들을 감독 마음대로 캐스팅해서 열 뻗친다’고 했다는 것. 사내는 허정민과 고 배우의 대본을 가져갔고, ‘이건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다. 나중에 잘 돼서 다시 와라’고 말했다고. 애초 허정민이 맡을 역할은 모 아이돌이 꿰찼다.

그의 주장은 일부 사실일 가능성이 높인 보인다. 허정민은 대중에게 확실한 설득력을 얻고 싶었는지 고 배우에게 해당 글을 계속 게시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내용의 문자메시지까지 공개했다. 졸지에 고 배우는 현재 한창 활동 중인 배우 고필규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허정민이 소환한 고필규의 실명은 여러 연예 매체 헤드에 실렸다. 마치 SNS에 무작위로 태그되는 것 마냥 ‘갑질 캐스팅 피해자’로 지목돼 보도되는 중이다. 하지만 (SNS 내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허정민의 글에는 고규필이 ‘내 실명도 공개해도 된다’는 내용은 살펴볼 수 없다. 사적으로 고 배우에게 연락을 구하고, 괜찮다는 답변을 얻은 것으로 마무리 될 일을 굳이 ‘전체 공개’ 했다.


배우를 인터뷰이로 만나다 보면 꽤 많은 이들이 허정민과 비슷한 고민을 토로한다. 긴 시간을 통해 축적됐을 이들의 불합리한 경험과 상처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오직 비슷한 입장에 처해 본 동료 연기자들 뿐일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순응한다는 이유로 동료들이 입을 다물고 ‘일방적인 하차 통보는 잘못된 관행’이라고 지적하지 못하는 상황이 허정민의 눈에는 답답했을지도 모른다.

K엔터 시장은 이미 오래 전 K팝의 성장에 따라 높은 부가가치를 갖게 된 아이돌을 배우로도 공급하기 시작했다. 10여년 전만해도 ‘연기돌’이라는 단어가 따로 쓰일 정도로 아이돌은 영화, 드라마 콘텐츠 시장에서 하나의 트랜디한 세력일 뿐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음악과 연기를 겸업하는 아이돌을 굳이 ‘연기돌’로 지칭하지 않는다. 그들이 연기 시장에 완전히 흡수됐기 때문이다. 데뷔 전부터 연기 트레이닝을 받기에 연기력 논란도 전에 비하면 덜하다. 물론 허정민이 언급한 10여년 전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OTT 플랫폼이 콘텐츠 시장의 판도를 흔들기 전 제작사들은 방송사 편성과 해외 판권 판매에서 승부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제작진은 수익을 위해 해외에서 인지도가 높은 아이돌을 선호했다. 현재도 그렇지만 연기돌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높았던 시절이다.

OTT는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다. 이제 ‘연기돌’만 찾아나서는 제작자는 많지 않다. OTT 시대가 열리면서 콘텐츠 자체의 중요성이 커졌고, 배우는 콘텐츠라는 퍼즐판의 일부 조각이 되어가고 있다. 아이돌을 겸업하지 않고, 연기만 하는 신인 배우가 주인공을 하는 시대다.

허정민이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강한 뉘앙스와 오래 전의 예가 다소 아쉽다. 그럼에도 그의 폭로글에서 새겨볼 만한 요점은 있다고 본다. 콘텐츠가 시장의 갑이 되면서 스타 작가와 스타 감독, 이들을 거느린 대형 제삭사의 지위는 동반 상승했고. 허정민의 주장처럼 이들이 캐스팅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느 때 보다 막대하다. 적어도 허정민의 글이 자신 보다 연기가 부족한 아이돌이 자리를 대신하는 현실을 꼬집는, 색안경은 아니라고 믿는다.

황금 알의 거위가 된 K-콘텐츠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다. 시장의 기준에 맞춰 캐스팅을 결정하는 건 온전히 제작진의 몫이고, 계약서에 최종 날인하지 않은 이상 배우는 그 결과를 인정하는 게 맞다. 다만 구두 약속이라도 결국 하차하게 된 배우가 키보드에 욕설 타자를 칠 정도의 일방 통보는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비슷한 이유로 동료 배우의 이름과 문자를 강제 소환한 허정민의 태도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지금 허정민이 분노하는 건 예의없음이 아니었던가.

콘텐츠를 만드는 소수의 제작사, 제작진들은 더욱 권력화될 것이며, 이들이 갖는 영향력 범위는 더 확대될 것이다. 그러나 입김을 물리치고 살아남는 생존자는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게 콘텐츠가 갖는 힘, 배우라는 직업이 가진 힘이다. 이를 가장 먼저 알아보는 게 바로 관객과 시청자, 대중이다.

허정민의 말대로 10년 전 대본을 뺏긴 그 고 배우는 존재감 빛나는 배우가 됐다. 배우가 폭로글로 대중의 공감을 얻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터. 귀한 지지를 받게 된 허정민이 이를 발판 삼아 배우로서 더욱 성장하길 기대해 본다.

[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news@tvdaily.co.kr]

고규필 | 허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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