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혁신 단상]〈7〉건설혁신을 위한 인접가능성 인프라
우리 건설산업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미국 건설산업을 보면 우리 건설산업의 미래가 보일까? 싱가포르나 영국에서 찾을 수 있을까? 벤치마킹은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그 수준에 목표를 맞추면 안되고, 벤치마킹 대상을 뛰어넘는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혁신의 지향점은 생산성 향상이어야 하고, 경쟁 상대보다 월등한 생산성을 보유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따라만 해서는 결코 상대를 뛰어넘는 생산성을 보유할 수 없다. 다시말해, 우리보다 건설생산성이 높은 국가의 정책이나 기술을 흉내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 건설문화나 정서에 맞을지 모르고, 남의 것을 따라 하자면 시간도 많이 걸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보다도 혁신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산프로세스혁신, 기술혁신, 재료혁신, 디지털혁신과 같은 강력한 처방도 중요하지만, 이런 처방 못지않게 지속적 혁신이 가능하도록 혁신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티븐 존슨은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라는 책에서 혁신이 탄생하는 환경 7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인접가능성(adjacent possibility)’이라는 개념이다. 저자는 ‘아이디어는 브리콜라주(bricolage, 주위에 있는 것을 이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 작품이다’라고 얘기한다. 즉, 혁신적인 것은 현재 존재하는 것들의 새로운 연결과 확장에 의해 생겨나고, 이것은 다시 새로운 연결과 확장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교류할 수 있고 아이디어가 교차할 수 있는 인접가능성 속에서 변화가 일어나며, 우리가 현실 세계의 경계를 멀리 탐험할수록 인접가능성은 커지게 되고, 변화와 혁신의 가능성도 확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접가능성을 튼튼하게 구축하고 나아가 시간적·공간적으로 확장하는 것이 바로 필자가 생각하는 건설혁신의 인프라이다.
우리 건설산업의 현실은 이런 인접가능성이 활성화되어 잘 작동되기에는 너무도 미흡한 환경인데, 몇 가지 짚어보도록 하자. 첫째, 칸막이 업역 규제가 문제다. 그나마 2021년부터 종합건설업과 전문건설업간 상호 시장 진출이 가능해지기는 했지만, 이는 시공단계에 국한되어 있고, 이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자극은 크게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인접가능성을 통한 혁신의 가능성이 훨씬 큰 설계와 시공간의 칸막이는 여전히 굳건하다. 시공성과 안전성은 높이면서 품질결함은 줄이는 설계를 위해서는 시공단계의 경험과 지식이 설계단계에 충분히 반영되어야 하는데, 이런 길이 막혀있는 셈이다. 둘째, 설계엔지니어링 전문분야간 인접가능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종합설계엔지니어링 기업의 등장이 필요한데, 지금까지는 오히려 반대로 설계엔지니어링이 과도한 분업으로 수행되고 있다. 건축설계, 구조설계, 토목설계, 전기설계, 기계설계, 소방설계... 모두 따로따로 진행되고, 친환경 컨설팅, 견적, value engineering, BIM 모델링, 설계안전성검토 등도 별도 용역으로 수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래서야 인접가능성에 기반한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창의적 혁신은 커녕 기술 축적도 어렵고 설계엔지니어링 과업 그 자체의 기본적인 생산성과 경쟁력도 확보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셋째는 시간적 관점에서의 인접가능성인데, 건설기술자 세대간의 인접가능성이라 할 수 있겠다. 선배기술자들의 오랫동안 쌓인 건설 경험과 후배기술자들의 새로운 디지털 지식이나 아이디어가 만나서 건설혁신의 새로운 싹을 틔울 수 있어야 하는데 건설기업의 계약직 비율이 30~40%나 차지하고 있으니, 계약 만료 시점이나 프로젝트 종료 시점이 가까워지면 새로운 일자리 찾기 바쁜 각자도생 상황에서 어떻게 다양한 인적 교류에 기반한 인접가능성 확보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인접가능성에 기반한 건설혁신의 인프라 조성이 탄탄히 되어있지 않다면, 개별적인 기술개발은 생산성 향상의 단기적 처방은 될 수 있을지언정 지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다시말해, 개별적으로 진행되는 기술개발이나 디지털변환과 같은 이벤트도 그 자체로 목적이면서 동시에 다른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내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하며, 이런 것이 가능한 체계 구축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럼 누가 이런 인접가능성이 작동하는 건설혁신의 인프라를 깔아줄 것인가? 규제개혁과 제도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맞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제도적 차원의 신속한 개선도 물론 필요하고 지속적으로 노력도 해야 한다. 하지만, 제도에만 의존하는 태도와 제도개선이 선행되기를 기다리는 자세를 바꿔서, 지금의 환경에서 인접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고 혁신의 새로운 경지로 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바꿔야 바뀌는 것이고, 그 시작점은 개인 스스로와 기업 스스로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속해있는 시스템의 경계선까지 가서 그 너머의 새로운 인접가능성을 탐색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자가 혁신하는 자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혁신의 인프라를 만드는 과정이요 방법이다.
유정호 광운대 건축공학과 교수 myazure@kw.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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