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돈은 돈 아닌가요?…디지털접근성, 기업 이윤에도 도움”
“장애인 접근 가능 서비스, 일반인에게도 편해
신기술이 장애인에게 줄 혜택 어마어마하지만
지금 기술로도 충분…어디까지 포용할지 기업이 선택해야”
“저는 친구들과 회를 먹으러 가면, 연어와 참치 같은 붉은 생선들에 먼저 손이 가요. 흰 천사채 위에 흰살 생선이 올라가 있으면 저 같은 저시력자에겐 안 보이거든요. 비싼 돈 주고 천사채 잘못 집어 먹으면 억울하잖아요.”
지난 9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 카카오아지트에서 <한겨레>와 만난 김혜일 카카오 디지털접근성책임자(DAO)가 유쾌하게 말했다. “휴대폰도 검은 화면이 위로 올라오도록 놓으면 쉽게 찾기 어려워서, 눈에 잘 띄는 흰색 뒷면이 위로 올라오게 내려놓아야 해요.”
카카오는 지난해 4월 국내 정보기술(IT)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디지털접근성책임자’를 선임했다. 김혜일 카카오 디지털접근성책임자는 중학생 시절 알 수 없는 이유로 시력의 상당부분을 잃은 저시력 당사자다. 김 책임자는 ‘세계 접근성 인식의 날’(18일)을 앞두고 <한겨레>와 가진 인터뷰에서 “신체적 장애를 가진 이들의 어려움을 일부러 온라인 공간에 그대로 확장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게 아니라면, 다양한 스펙트럼의 장애 환경에 놓인 고객들의 어려움까지 포용해 서비스를 설계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김 책임자는 “장애를 신체에 제약이 있는 상태 또는 그런 상태에 놓인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시스템과 사회 현상의 문제로 바라봐야 디지털 접근성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기업들에게도 웹 접근성 준수 의무가 단계적으로 부과되기 시작한 2008년으로 기억을 되짚어 올라갔다. 잔존 시력이 다소 돌아온 지금과 달리 당시 김 책임자는 거의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전맹’ 상태였다. 당시 그에겐 금융사들의 온라인 누리집에서 금융업무를 보는 게 불가능했다. “눈으로는 쉽게 찾을 수 있는 ‘이체’ 버튼을 귀로 듣기만 해서는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2013년 모든 온라인 누리집의 웹 접근성 표준 준수가 법으로 의무화된 뒤에는 김 책임도 소리만 듣고서도 디지털 금융 서비스를 쓸 수 있게 됐다. 당시 여러 금융사와 공공기관 누리집들의 웹 접근성 컨설팅을 맡았던 김 책임자는 “(법이 시행되자) 전국 모든 기업들 사이에 ‘아, 이거 안 하면 큰일 난다’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회상했다.
“자칫 불필요한 정보라고 여길 수 있는 앱 내 광고 배너 속 문구까지도 장애인 이용자와 일반 이용자가 차별 없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해요. 장애인 이용자들 돈은 돈 아닌가요? 시각장애인들에게도 장사 하려면 당연히 다 소리로 들을 수 있게 해 줘야죠.”
김 책임자는 “장애인 이용자들이 쓰기 좋은 디지털 서비스는 일반 이용자들도 쓰기 편하다”고 했다. 굳이 디지털 서비스까지 가지 않아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엘리베이터만 하더라도 애초에 휠체어 타는 장애인들을 위해 만들어졌잖아요. 그런데 어르신들이나 유아차를 끄는 사람들, 또는 잠깐 다리를 다친 사람들에게도 유용해요.”
장애가 있건 없건 사람들이 일상에서 즐겨 쓰는 전자기기나 디지털 서비스의 기능들 가운데에도, 처음엔 장애인 이용자들의 특수한 필요에 맞춰 개발된 게 많다. 김 책임자는 애플 아이폰의 여러 ‘손쉬운 사용’ 기능들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홈 버튼과 볼륨 버튼을 동시에 눌러야 화면 캡쳐 등 기능을 이용할 수 있는데,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분들에겐 두 버튼을 함께 누르는 게 큰 장벽이에요. 그래서 만들어진 게 화면 위에 띄우는 동그란 ‘대체 홈 버튼’이었어요. 화면 터치만으로 음량 조절이나 화면 캡쳐 등 기능들에 쉽게 접근하도록 한 건데, 이게 일반 이용자들에게도 쓰기 편하니까 요즘은 장애가 없는 분들도 널리 쓰죠.”
“또 스마트폰에 전화가 걸려오면 벨소리뿐 아니라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거리는 기능 있죠? 그것도 원래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기능이었는데, 요즘은 ‘아, 나 전화 너무 잘 놓쳐’ 하는 사람들도 많이 써요.”
카카오 서비스 중에도 장애인 접근성을 높이려 일부 이용자들에 한해 도입했다가 다른 이용자들도 널리 쓰게 된 기능들이 있다. 카카오는 저시력자도 글씨 등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명도 대비를 기존보다 높인 ‘고대비 테마’ 기능을 2015년과 2020년 안드로이드 버전과 아이폰 버전에 각각 도입했다.
김 책임자는 “저시력자들 쓰라고 만든 기능인데, ‘다크(어두운) 테마’를 원했던 이용자들도 매우 반가워했어요. 또 어두운 곳에서 스마트폰 화면 밝기를 낮추거나, 갑자기 햇빛이 쏟아질 때에 글자 색과 배경 색의 차이가 또렷하지 않으면 순간적으로 메시지 내용이 잘 보이지 않는 문제가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고대비 테마가 도움이 됩니다.”
장애인 접근성을 위한 기능이 아예 ‘기본값’ 자리를 꿰찬 경우도 있다. 김 책임자는 인터뷰 도중 책상 위에 노란 바탕에 흰색 글씨로 ‘카카오’ 로고가 새겨진 쇼핑백이 놓인 걸 가리키며 말했다. “카카오의 디자인 테마가 노란 바탕에 흰색 글씨를 기본으로 하잖아요. 그래서 처음엔 카카오톡 앱 내 ‘체크박스’도 노란 바탕에 흰색 체크(V) 형태로 디자인돼 있었어요. 이후 고대비 테마가 있다는 걸 모르는 분들도 많다는 걸 알고, 아예 기본 테마 이용자 화면의 기본값까지 노란 바탕에 검정 체크로 바꿨습니다.”
카카오는 최근 대화방에서 이모티콘이 오갈 때 시각장애인 이용자들도 음성안내 기능의 도움을 받아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도록, 이모티콘 캐릭터 이름과 표정 등을 설명하는 대체 텍스트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용자들이 대화방에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낼 때 직접 대체 텍스트를 입력하도록 하는 기능도 추가했다.
또한 시각장애인 이용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기존에 ‘최아무개, 읽지않음, 오후 2시21분, 안녕하세요’ 같은 순서로 음성 안내를 하던 것을 ‘최아무개, 안녕하세요, 읽지않음, 오후 2시21분’ 순서로 바꾸는 등 기존에 도입했던 접근성 기능들의 미세한 개선도 이어가고 있다.
김 책임자는 “기업들이 장애인 접근성에 대한 고려 없이 서비스를 우선 만든 뒤 오류를 찾아내 수정하는 방식이어선 장애인 이용자들이 쓰기 편한 서비스를 만들 수 없다”고 강조했다. 카카오는 이런 ‘땜질’ 방식을 피하기 위해, 모든 서비스 관련 부서의 모든 직군 직원들이 디지털 서비스를 만들 때 참고할 수 있는 ‘접근성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내부에 배포하고,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서비스를 배포한 뒤 장애인 이용자들의 접근성이 실제로 잘 보장되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한 점검 도구도 개발 중이다. 또 카카오톡 등 앱들을 업데이트할 때마다 어떤 접근성 관련 기능들이 개선됐는지를 이용자들에게 알리고 있다.
김 책임자는 “인공지능, 사물 인식, 로봇, 자율주행 등 최근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신기술들이 장애인들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혜택이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사실 필요한 기술들은 지금도 충분히 나와 있어요.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어딘가 새로운 곳에 혼자 찾아가는 것인데, 이 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대신 안내 보행 로봇을 잡고 다닌다면 어떨까요? 자율주행 기술이 이미 나와 있으니, 그 기술을 탑재한 로봇이 사람을 안내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거예요. 그 기술들을 특정 이용자들만 이용 가능한 서비스들에 쓸 건지, 아니면 장애인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에도 쓸 건지를 기업들이 정하면 되는 거죠.”
글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사진 카카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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