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과의 동선 피해 미리 찾았나?” 물음에 대한 文 전 대통령의 답은…
김정숙 여사와 1·2묘역, 민족민주열사 묘역 등 1시간 동안 엄숙하게 참배
文 “5‧18정신 헌법전문 수록 못해 매우 안타까워…정치인들 더 노력해야”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전직 대통령의 5·18민주묘지 참배는 2004년 11월 김대중 대통령, 2008년 4월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다. 문 전 대통령으로선 지난해 퇴임 이후 첫 참배다.
이날 오전 11시 20분쯤 지지자들의 환영 속에 5‧18민주묘지의 민주의문 앞에 도착한 문 전 대통령은 강기정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지사의 영접을 받았다. 그는 참배를 하기 전 방명록에 '5‧18 민주정신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라고 적었다.
5·18기념일 하루 전 참배한 문 전 대통령
이후 문 전 대통령은 시종일관 엄숙한 표정으로 추념탑으로 이동해 참배단 앞에 선 그는 헌화, 분향, 묵념하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공식 참배를 마친 문 전 대통령은 고등학생 시민군으로 활동하다 숨진 고(故) 문재학 열사의 묘소를 찾았다.
문 열사는 광주상고 1학년에 다니던 중 최후항쟁이 벌어진 옛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계엄군의 총탄에 숨졌다. 무릎을 굽혀 묘비를 어루만진 문 전 대통령은 문 열사를 모티브로 한 소설 '소년이 온다'를 언급하며 그의 희생을 안타까워했다.
문 전 대통령은 별도의 공간에 마련된 국립묘지 2묘역과 민주열사들이 안장된 민족민주열사 묘역(구 망월묘역)을 차례로 방문해 다시 한번 헌화와 분향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1시간 동안 참배 후 12시 20분쯤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구 망월묘역을 떠났다. 문 전 대통령은 오월 어머니들과 만나는 자리를 가진 뒤 광주 비엔날레를 관람하고 경남 양산 사저로 돌아갈 예정이다.
살짝 걸친(?) 구두 뒤축…전두환 표지석 '밟았다' vs '안 밟았다' 의견 분분
이날 문 전 대통령이 민족민주열사 묘역 출입로 바닥에 묻혀있는 이른바 '전두환 표지석'은 밟을지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전두환 표지석은 전씨가 1982년 전남 담양군 마을을 방문한 것을 기념해 세운 것으로 광주·전남민주동지회가 1989년 부순 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묻어놓은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2012년 대선후보 시절 묘역 참배를 마치고 나오다 비석의 존재를 듣고 가던 길을 되돌아와 발로 밟고 지나갔다. 2016년 4월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이한열 열사를 참배하기 위해 찾아왔을 때 역시 비석을 밟고 지나갔다.
문 대통령을 포함해 이낙연·추미애·심상정 등 진보 성향 정치인들은 대부분 비석 밟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반면 보수 성향 정치인들은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까지 방문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러나 2016년 8월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김무성 전 대표는 이곳을 찾았다가 "나는 밟을 수 없지"라며 비켜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비석을 밟았거나 밟지 않아 논란이 된 사람들도 있었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2018년 대법원장 재임 시절 이 비석을 밟고 지나갔다가 '정치적 중립 논란'에 휩싸였다. 논란이 커지자 그는 "모르고 밟았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이날 문 전 대통령은 표지석이 묻혀 있는 곳을 자연스러운 걸음걸이로 지나갓다. 그런데 오른쪽 구두 뒤축이 살짝 표지석 앞부분에 새겨진 '내외분~'이라는 글자 부분에 걸쳐 보이면서 문제가 생겼다. 그가 표지석을 밟았는지 여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이를 지켜본 한 참배객은 "야구경기에서 세이프와 아웃을 놓고 비디오 판독을 해야 판정할 수 있을 정도로 애매했다"며 "다만, 문 전 대통령이 일부러 발걸음을 멈추고 밟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엄숙한 표정 文…지지자들 환호에 고개만 '끄덕끄덕'
문 전 대통령은 이날 시종일관 입을 굳게 다문 엄숙한 표정으로 참배했다. 문 전 대통령이 묘역을 이동하는 모습을 본 시민들은 '대통령님,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며 환호했지만 고개만 끄덕였다. 일부 시민, 학생들과 악수하면서도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은 정중히 거절했다.
참배 후 문 전 대통령은 제2묘역으로 이동하기 앞서 역사의 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5‧18 민주항쟁에 크게 빚을 졌다"며 "우리 국민들이 오늘날 이만큼 민주주의를 누리는 것도 5‧18 민주항쟁의 헌신과 희생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래서 민주주의가 흔들리면 우리는 5‧18 민주정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5‧18 민주항쟁은 대민 민주주의 뿌리가 되었다"며 "5‧18 맞이해 국민들이 함께 그 의의를 새기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를 다시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두환 손자 전우원, 못 만날 이유 없어" 광주 만남 이뤄질까
특히 문 전 대통령은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문 전 대통령은 대선 당시 헌법 전문 수록을 공약했으며 임기 중에도 여러 차례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제가 공약을 했을 뿐 아니라 대통령 재임 중에도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었다"며 "그것이 당시 국회에서 제대로 심의되지 않아 (끝내) 못했던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우리 정치권이 같은 노력을 계속해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문 전 대통령은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 손자 전우원씨에 대해 '만날 생각이 있나'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특별히 계획을 갖고 있진 않다"면서도 "계기가 된다면 못 만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만남 가능성을 열어뒀다.
"왜 미리 왔느냐"…직답 피한 文 "오늘 참배하게 돼 뜻깊게 생각"
그는 기념일 하루 먼저 광주를 방문한 것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과 동선이 겹치는 것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시사저널 취재진의 질문에는 직답을 피해갔다.
문 전 대통령은 "이제 5‧18은 광주 시민뿐 아니라 온 국민 함께 추모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5‧18 묘역에 참배할 수 있는 분들은 참배하고, 못하는 분들은 마음으로라도 추모하는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며 "작년에 5‧18 앞두고 퇴임해 참배하지 못하면서 아쉬움으로 남아있었는데, 오늘 참배하게 돼 뜻깊게 생각한다"고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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