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빈부격차·인종···권력관계 비틀고 뒤집는 ‘슬픔의 삼각형’[리뷰]
세계는 공고한 권력관계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빈자 위에 부자, 여성 위에 남성, 유색인종 위에 백인…. 그러나 미시적으로 관계나 개인의 상황들을 들여다보면 법칙이 꼭 맞지 않을 때도 있다. 한 개인이 여러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 자체가 특수할 때도 있다. 돈 많은 유색인종이 가난한 백인을 부리기도 한다. 여성이 다수인 집단에서는 남성이 소수자가 되는 일이 생긴다.
남성인 칼(해리스 디킨슨)은 여자친구 야야(샬비 딘)와의 관계에서 ‘을’이다. 누구에게나 매력적으로 보일 야야는 잘나가는 톱모델이자 인플루언서다. 역시 모델인 칼은 업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가난하다. 패션모델의 세계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3배 이상 돈을 잘 번다. 칼은 식당에서 누가 계산할지를 두고 야야와 언쟁한다. 야야는 칼에게 밥 사는 역할을 은근히 강요해왔다. “페미니스트는 개뿔”이라며 분노하던 칼은 야야와 대화 끝에 조금 진정한다. 야야는 아름다움과 젊음을 파는 모델이란 직업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야야는 “이 생활이 끝나면 난 ‘트로피 와이프’밖에 안 된다”고 칼에게 털어놓는다. 업계를 떠나면 칼도 야야도 남성이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에 합류할 수밖에 없다. 3부로 구성된 영화 중 1부의 내용이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영화 <슬픔의 삼각형>에서 칼과 야야 커플이 등장하는 3가지 이야기를 보여주며 권력의 문제를 다룬다. 2부에서 칼과 야야는 세계적인 부자들만 타는 호화 크루즈에 오른다. 승객의 말 한마디면 승무원은 잘린다. 이것을 아는 승객들은 승무원에게 무리한 요구를 거듭하고, 승무원은 복종한다. 저기압 구간에 돌입해 배가 흔들리면서 고상한 손님들의 명예도 추락한다. 3부는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무인도에서 눈을 뜨며 시작한다. 부자들은 고기를 잡을 줄도, 불을 피울 줄도 모른다. 배 위에서 모두에게 무시당하던 필리핀 출신 여성 청소부 애비게일(돌리 드 레온)이 권력의 정점에 오른다. 애비게일을 중심으로 그들은 좀 더 아름다운 연대를 꾸릴 수 있을까.
영화는 다소 연극적으로 느껴진다. 일상과 먼 공간들을 배경으로 하고, 인물들은 각자 인플루언서·갑부·청소부·마르크스주의자 등 하나의 뚜렷한 역할을 가진 이들로 설정돼 있다. 감독은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보다는 그들이 속한 위계질서를 마음대로 주무르며 조소한다. 그는 이번 영화를 만들 때 “어른들을 위한 롤러코스터를 만들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외스틀룬드 감독은 이 영화로 지난해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차지했다. 2017년 <더 스퀘어>로 수상한 이후 5년 만이다. 그는 이로써 켄 로치, 장피에르 다르덴·뤼크 다르덴, 미카엘 하네케 등과 함께 ‘황금종려상 2회 수상’ 반열에 올랐다. 17일 개봉.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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