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도와주자’는 野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책… ‘법 원칙’ 정면 충돌

윤희훈 기자 2023. 5. 17.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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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선변제금 조정안, ‘불소급 원칙’ 위배
사후정산, ‘공공개입 금지·평등 원칙’ 어긋나
법조계 “구제 필요하지만, 사회적 신뢰 훼손해선 안 돼”
김정재 국토교통위 소위원장 등 위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안을 심의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 범위를 확대하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야당은 최우선 변제금 제도 조정과 미반환 전세 보증금 사후 정산 등을 요구하며 특별법 제정이 지연되고 있다.

야당은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구제책이 담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조계에선 이러한 지원 방향은 형평성을 비롯해 법의 주요 원칙에 어긋나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여야는 15~1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열어 전세사기 특별법 제정을 놓고 마라톤 회의를 진행했지만 최종 타결에 이르지 못했다.

국토부는 국토위에 제출한 수정안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범위를 ‘대항력’과 ‘확정일자’를 갖춘 임차인에서 임차권 등기를 마친 임차인까지 지원 대상에 포함하도록 확대했다. 보증금 요건도 기존 3억원에서 최대 4억5000만원까지 확대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전세사기 피해 현황 조사 결과, 대부분의 피해 임차인이 완화된 피해지원 적용 대상 범위에 포함될 것으로 판단된다”며 “특별법이 조속히 제정될 수 있도록 법안 심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야당에선 ▲최우선 변제금 제도 조정 ▲미반환 전세 보증금 사후 정산 등 피해자들에 보증금의 일부를 반환하는 방안을 요구 중이다. 정부여당은 피해자 구제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야당이 요구하는 내용은 법 원칙을 위배한다며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현재 야당은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해 최초 임대차 계약 시점을 기준으로 최우선 변제금을 받을 수 있도록 특례를 도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최우선변제금은 세입자가 살던 집이 경매나 공매로 넘어갔을 때 은행 등 선순위 권리자보다 앞서 배당받을 수 있는 금액을 말한다. 올해 2월 14일 이후부터는 서울시의 경우 1억6500만원 이하의 임차보증금에 대해선 5500만원까지, 과밀억제권역과 용인·화성·김포·세종 등에 대해선 1억4500만원 이하의 임차보증금에 대해선 4800만원까지 최우선 변제금을 보장한다.

최우선변제금은 근저당보다 우선순위가 높아 전세가가 낮은 주택에 거주하는 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로 활용된다. 하지만 보장하는 임차보증금 액수가 낮아 최우선변제금이 적용되는 주택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전세사기 피해자가 대거 나온 인천 미추홀구의 경우 재계약 때 보증금을 증액했다가 최우선변제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가구가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야당은 이러한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최우선변제 적용 기준을 최초 임대차 계약 시점을 기준으로 삼자는 안을 제안한 상태다.

문제는 이러한 주장이 ‘법규 불소급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이다. 특례로 소급 적용을 도입하는 게 전무한 일은 아니지만, 전세사기 피해 물건에 대해 소급 적용할 경우 근저당을 보유한 채권자가 대신 피해를 보게 된다. 근저당을 잡고 있는 금융기관이 국회나 정부의 최우선 변제금 조정에 직접적으로 불만을 제기할 가능성은 낮지만, 법에 대한 신뢰를 깨트리는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반환 전세 보증금 사후 정산 방안은 ‘공공개입 금지 원칙’과 충돌한다. 미반환 전세 보증금 사후 정산은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주택도시기금법 개정안’에 담긴 내용으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공공기관이 보증금 반환 채권을 매입한 후 경매 등을 통해 보증금을 회수하고, 이를 추후에 임차인에게 정산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에 대해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말이 사후정산이지 실제로는 정산금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최우선변제도 받고 나머지 금액도 받겠다는 건 마음대로 골라잡고 나머지 찌꺼기는 당신들이 처리하라는 식이기 때문에 법 앞의 평등 원리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판사 출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세사기 뿐만 아니라 다단계를 비롯해 금융사기 등 사기 피해 유형이 다양한데 모든 건마다 국가가 개입할 것인가를 따지면 쉽게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면서 “피해자 구제도 중요하지만 법 원칙을 훼손하는 것은 공공의 이익을 해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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