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구찌의 단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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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패션쇼 배너, 초대장과 선물 꾸러미를 싼 보자기 등에 단청 무늬가 쓰였는데, 성의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이 단청의 아름다움을 살리지 못한 탓이다.
서울의 상징, 서울 시민들이 매일 지나고 쉬고 즐기는 한강에서의 패션쇼는 명품의 역동적 현재성을 부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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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구찌 패션쇼가 16일 밤 서울 경복궁 근정전에서 열렸다. 문화유산의 품격과 어우러져 쇼는 호평을 받았지만 단청 장인들의 심기를 거슬렸다. 패션쇼 배너, 초대장과 선물 꾸러미를 싼 보자기 등에 단청 무늬가 쓰였는데, 성의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이 단청의 아름다움을 살리지 못한 탓이다. 몇몇 단청 장인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구찌 배너 단청의 문제를 지적하고 직접 디자인한 모의 작품을 올렸다. 비교해 보면 미묘한 디자인 차이가 얼마나 다른 느낌을 만드는지 실감할 수 있다. 명품의 가치란 바로 그런 디테일에 있는 게 아니었던가.
□ 장소 선택만 보자면 4월 루이비통의 서울 잠수교 패션쇼가 탁월했다. 서울의 상징, 서울 시민들이 매일 지나고 쉬고 즐기는 한강에서의 패션쇼는 명품의 역동적 현재성을 부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시가 24시간 동안 이 일대 차량·자전거·도보 통행을 전면 통제하면서 충분히 알리지 않아 불편을 초래했다. 시민들보다 명품 업체의 편의를 우선시하는 ‘문화 사대주의’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지의 일상까지 세밀하게 고려하지는 못한 것이다.
□ 디올은 2021년 중국 상하이에서 ‘레이디 디올 전시회’를 열었다가 전통 옷을 입고 게슴츠레한 눈빛을 띤 중국 여성이 디올 백을 들고 있는 사진으로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사진은 강렬했으나 아시아 여성을 비하하고 편견을 강화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오래된 중국 분위기를 풍기는 것만으로 이색적인 미를 드러내려 생각했다면 디올 측이 너무 단순했고, 모델 이미지를 의도한 것이었다면 진짜 편견이라고 하겠다.
□ 서구 명품 브랜드들은 장인정신을 고수하면서도 타 문화와 연계하고 현대화하며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시장을 확대해 왔다. 한국의 명품 소비가 크게 늘면서 한국 문화와 명품의 만남도 잦아졌다. 다만 다른 문화의 맥락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고정관념이나 겉핥기로 재단해서는 오히려 현지인의 반감을 사게 된다. 명품 브랜드에 그런 세심함이 요구된다. 세계인과 살아갈 우리에게도.
김희원 논설위원 h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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