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게 혜택받으면서 돈 벌고 있다는, 그 진심 잊지 말았어야죠('아사동')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2023년이 시작하자마자 모두들 떠났다. 배우들은 뉴질랜드를 걷거나 스페인에서 캠핑을 하고, 윤식당 멤버와 백종원, 이연복 셰프 등은 멕시코, 모로코, 이탈리아, 영국과 미국 등 세계 각지에 K-컬처를 널리 알리는 '장사'도 재개했다. 뭉쳐야 뜨는 팀도 다시 돌아왔고, 호주 워킹홀리데이, 심지어 북유럽에서 달나라 토끼를 찾기도 하고 캠핑도 한다. 그런데 이 와중에 무척이나 사적인 이유로 여행을 떠난 네 남자가 있다.
여정의 막바지에 접어든 tvN 예능 <아주 사적인 동남아>의 시작은 쏟아지는 여행예능 속에서 단연 신선했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와 멤버 구성이 말 그대로, 무척이나 사사롭다. 첫 만남 자리에서 '시청자 눈치는 아예 보지 말자'는 장항준 감독의 선언은 일정 부분 현실이 된다. 선한 영향력이든, 성장서사든, 한류 전파, 힐링, 정보 전달 등등 여행의 당위를 시청자들과 공유하고 공감을 사기 위해 노력하는 여타 여행예능과 달리 여행지 선정부터 그야말로 사적이다. 19년 전 무명의 신인 시절 촬영했던 영화 <알포인트>의 촬영 장소를 다시 가보고 싶다는 이선균의 바람에 따라 젊은 시절 그의 파편화된 기억 속으로 날아간다.
촬영지인 캄폿은 물론, 당시에도 잠시 관광차 들렸던 앙코르와트의 시엠립, 그리고 100일간의 합숙 촬영 중 당시 연인이자 지금의 아내인 전혜진과 프놈펜에서 나누었던 청춘의 추억을 함께 좇는다. 여행예능의 성패는 로망을 얼마나 자아내느냐에 있다. 장항준 감독의 말대로 무슨 '깡'으로 배우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는지 모를 젊은 시절의 기억을 찾아가는 여정은 비록 이선균의 개인적인 추억과 소회이긴 하나, 지나온 세월과 시간을 가진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대입해볼 수 있는 공감 요소가 있다. 젊은 날의 초상을 만난다는 설정은 정서적 감흥으로 다가온다. 왜냐면 여행은 장소의 이동이기도 하지만 일상의 중력에서 멀어지는 특별한 순간 또한 제공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봤을, 추억여행의 아련함을 기대하게 한다.
더욱 재밌는 것은 이 사사롭고 정서적인 여행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담아낸다는 점이다. 20년 전 신인시절의 흔적을 찾아 막상 떠나와 보니 <TV는 사랑을 싣고>가 아니라 '재개발 리포트'에 가깝다. 한번쯤 가고 싶었던 과거의 장소에 19년 만에 다시 왔지만, 젊은 날의 반가움을 느낄 여유가 없다. 기억 속의 식당과 숙소는 문을 닫았고, 동네의 거리는 바뀌었으며, 건물은 대체로 달라졌다. 추억 당사자인 이선균은 회상에 빠지기보다 주로 혼란에 빠진다.
어린 시절 크고 넓게만 보였던 골목, 학교 운동장이 생각보다 좁고 아담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 괴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웃는 출연자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그래서 이들의 여행은 연예인들이 친분을 쌓아가는 캐릭터쇼라거나 설정이 명확한 스토리텔링이라기보다 실제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여행을 보는 듯한 친근함이 느껴진다. 여행 중간 중간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 종종 등장하는 데 별 것 아닌 일상적인 대화와 소소한 웃음들이 지극히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여행의 공기와 잘 어울린다.
그런데 태국으로 떠난 두 번째 여행에는 사사로운 의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20대 시절 남들 다가는 배낭여행을 꿈꿔보지도 못했다는 김남희의 뒤늦은 버킷리스트는 설명이 길어지는 만큼 설득력이 떨어진다. 어떤 이유와 조건 때문에 10회 차 예능을 두 차례 여행으로 만든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목적이 빠진 여행은, 평범함과 진부함 사이로 우리를 데려간다. 분명 김남희의 로망에서 발화된 여행이라고 했으나 대부분의 볼거리는 유명 관광지를 수동적으로 체험하는 것에 그치고, 이선균과 장항준의 티격태격하는 모습들로 전면을 채운다. 특히 8화는 멤버들끼리 팔씨름대결을 하고 <파스타>의 이선균과 그의 단짝 장항준 감독이 파스타 요리 대결과 농구 게임을 펼치는 가운데 재기 넘치는 장항준의 캐릭터에 재미를 의탁한다. 여행이라기보다 그야말로 예능이다.
첫 번째 캄보디아 여행에서 나온 한 장면이다. '연기자'들의 '몰카'에 당하던 김도현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우리 되게 혜택받으면서 돈 벌고 있는 거야."라고 후배 김남희에게 진지하게 조언하며 타일렀다. 이 말이 굉장히 순수하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간 여행예능을 거쳐 간 수많은 출연자들은 힘들다거나 즐겁다고만 했지, 감사하게 돈을 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쉽게 듣지 못한 진심이다. 시청자의 인식과 출연자의 인식이 얼마나 가까이 자리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진정성이 드러나 순간이었다.
하지만, 순박함에 가까운 이 진정성은 아쉽게도 이들의 여정 내내 이어지지 못했다. 제작진은 방송 전 "전혀 다른 네 사람이 여행을 통해 친해지는 모습과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밝힌 적이 있다. 물론 이 목표 자체가 여행예능의 홍수 속에서 변별력이 없는 포인트이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했다. 여행 첫날부터 두 번째 여행이 무르익기까지 뚜렷한 서열과 존재감, 거리감이 변함없이 유지된다. 한마디로 방송 촬영에 열심히 임하고 있다는 것 이외에 장항준 감독이 선언했던 사사로운 진정성은 특히 태국 여행에서 느껴지지 않는다. 출연자의 사적인 로망을 쫓는 여행이란 새로운 포맷의 가능성을 열어놓긴 했지만 여행의 여운이 너무나 긴 사족으로 인해 무뎌졌다는 점이 아쉽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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