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받쳐줄게”···돌아온 박병호가 외로웠던 문상철을 격려하는 방법
문상철(32·KT)은 2군 홈런왕 출신이다. 2017~2018년 2년 연속 퓨처스리그 홈런왕에 올랐고, 2군에서만 통산 123개의 홈런을 쳤다. KBO가 갖고 있는 기록상으로 조평호(118개)를 지난해 넘고 2군 통산 최다 홈런을 친 타자로 현재 기록돼 있다.
그러나 1군에서는 통산 홈런이 21개다. 장타력을 갖춘 기대주로 늘 시즌 전 경쟁의 중심에 섰지만 제대로 기회를 잡지 못했다. 올해도 2군에서 시작한 문상철은 지금 1군에 있다. 부상자가 쏟아진 KT에서 대타 자원으로 합류한 뒤 선발 출전하기 시작했고 이제 중심타선에 자리했다.
긴 연패를 반복하고 최하위에 처진 KT에서 문상철은 가장 잘 치고 있는 타자다. 24경기에서 타율 0.353(68타수 24안타) 4홈런 14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5월 이후로는 타율(0.425), 장타율(0.750), 출루율(0.465) 전부 팀내 1위로 리그에서 손꼽히는 활약을 하고 있지만 팀의 잦은 패배로 그 성적은 가려져왔다.
지난 16일 잠실 LG전에서 승리한 뒤 KT 박병호(37)는 문상철의 이름을 꺼냈다.
역시 줄부상 명단 중 한 명이었던 박병호는 길지 않은 공백 이후 돌아와 대타를 거친 뒤 이날 처음으로 선발 출전했다. 4번 지명타자로 나서 4타수 3안타를 터뜨렸고 특히 3회초 때린 2타점 2루타로 KT의 역전승 물꼬를 텄다. 박병호는 “문상철의 홈런이 정말 컸다. 중요한 순간에 홈런이 나와야 분위기를 탄다. 그 한 방이 더그아웃의 선수들에게 에너지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날 5번 타자로 출전한 문상철은 3회 박병호의 2루타로 KT가 3-4로 추격한 뒤 곧바로 LG 선발 김윤식에게 2점 홈런을 뽑아 5-4로 역전시켰다.
모처럼 잡은 1군 자리에서 사력을 다한 문상철은 외로운 활약을 하고 있었다. 12일 롯데전에서는 1-1로 맞선 연장 10회말 끝내기 홈런을 때려 6연패를 끝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앞서 10일 NC전에서는 4타수 3안타 4타점으로 대활약을 했다. 0-4로 뒤지던 4회 1사 만루에서 2타점 2루타로 5득점 빅이닝의 다리를 놨고, 5-4로 역전한 뒤 6회말에는 2점 홈런까지 쳤다. 그러나 팀이 8~9회 연속 실점으로 재역전패 했다. 전체적인 경기력이 뚝 떨어진 KT에서 문상철이 고군분투 하지만 빛이 나지 않았던 가장 상징적인 경기였다.
박병호는 “문상철이 지금 정말 잘 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계속 치는 사람만 쳤다. 문상철이 그렇게 좋은 활약을 해도 점수가 더 나지 않아서 졌다. 받쳐줄만한 타자가 앞뒤에 없었다. 알포드도 잘 하다가 그렇게 떨어졌다. 부상으로 빠져 있으면서 나 역시 그 부분이 많이 미안했다”며 “문상철이 지금 굉장히 잘 하는데 그 앞뒤에서 고르게 활약을 해주면 문상철의 타격감도 오래 갈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점수가 많이 나야 이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 박병호가 폭발할 때 5번 타자 장성우가 말했던 ‘우산효과’의 연장선상이다. 16일 LG전에서는 박병호가 돌아와 타격감 좋은 문상철 앞에서 좋은 모습으로 쳐주니 문상철에게도 치기 좋은 공이 갔고 KT는 승리할 수 있었다. 돌아온 박병호는 자신의 타격감뿐 아니라 지금 야구인생의 중요한 기회를 맞이하고 매우 잘 치고 있는 후배 타자의 감각과 중심타선의 흐름을 생각하며 받쳐주는 역할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박병호가 없을 때 문상철은 4번 타자로 뛰었고, 허벅지 상태가 완전치 않은 박병호가 돌아와 지명타자로 뛰자 문상철은 1루수로, 그 뒤 5번 타순에서 뛰고 있다.
박병호는 “문상철이 나이 찬 유망주인 것은 사실이다. 지금의 활약이 자신에게도 큰 기회이기 때문에 잘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며 “지금 잘 치는 게 누구의 조언으로 잘 하는 게 아니다. 이걸 지켜야 된다는 생각으로 더 고민하고 그러지는 말라고 했다. 좋은 투수들 만났는데도 3타수 1안타 쳤으면 된 거지, 잘 되고 있을 때 더 잘 하려고 하면 잃을 수도 있다, 뭐 그런 얘기 해줬다”고 웃었다.
잠실 |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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