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런 법사위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홍장원 대한변리사회·전문자격사단체협의회 회장 2023. 5. 1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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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의회에는 법제실(the office of Legislative Counsel)이 있다. 의원이나 위원회에서 법률안 체계‧자구 심사 요청이 들어오면 지원하는 별도 법제지원기구다. 일본 국회에선 법제국이 이 역할을 담당한다.

스위스에선 법률안이 본회의에서 최종 표결되기 직전 법안기초위원회(Drafting Committee)에서 심사를 받는다. 법체계상 모순을 제거하고 3개 공용어로 정확하게 표현됐는지 기술적으로 검토한다. 목적이 간단 명료하다. 폴란드 하원에는 입법위원회(Legislative Committee)가 설치돼 있다. 법률안 초안 작성과 함께 유관 법률과의 일관성 심사를 하지만 필수는 아니다. 독일도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이런 업무를 수행한다.

세계 주요국 의회에서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법률안 체계나 자구 심사를 다른 상임위원회가 맡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 한국의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처럼 특정 직역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인 곳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지난 4월 19일 전문자격사단체협의회 소속 1000여 명이 ‘국회 법사위 규탄 대회’를 열었다. 변호사 직역 수호에 앞장서는 법사위에 공정하고 정당한 법안심사를 촉구했다.

민주주의 전당인 국회에서 불공정과 불평등을 야기하는 장본인은 다름 아닌 ‘국회 상왕’으로 군림하는 법사위다. 소관 상임위를 통과한 법률안을 온갖 이유로 뭉개고 폐기하는 법사위의 행태에 변리사와 노무사, 세무사, 관세사, 공인중개사들은 생업을 제쳐두고 거리로 나왔다.

국회법에 따르면 법사위가 법률안 체계‧자구 심사를 이유 없이 60일 이내에 마치지 못하면 소관 상임위가 본회의 부의를 요구할 수 있다. 문제는 ‘이유 없이’라는 대목이다. 모든 일에는 이유를 갖다 붙이기 나름이어서 지연 사유는 사실상 무한대나 다름없다. 국회 일정으로 각종 이유를 만드는 데에 의원들은 도가 통했다.

이유 없이 60일을 넘겼다고 해도 바로 본회의에 올라갈 수 없다. 일단 법률안 소관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30일 이내에 간사와 협의해 이견이 없어야 한다. 이견이 있으면 재적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의결해야 의장에게 본회의 부의를 요구할 수 있다.

이 규정이 실효성을 발휘하려면 ‘이유 없이’라는 조항을 없애 60일 이후에는 지체없이 본회의에 넘겨져야 한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현재까지 적용사례가 거의 없다.

심사 범위도 체계‧자구로 한정되지만, 이 또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법률안 체계 심사는 법률안 위헌 여부, 관련 법률 저촉 여부, 자체 조항 간 모순 유무와 법률 형식 등을 정비하는 작업이다. 자구 심사는 법률 용어 적합성과 통일성을 기하는 일이다.

의원들이 법률안을 붙잡고 뭉개려면 밑도 끝도 없다. 국민 열망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법조계 출신 법사위 소속 의원 형태를 보면 과연 누구를 위한 국회인지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한다.

선진국 의회처럼 국민적 합의를 통해 법사위 자체를 폐지하고 관할을 국회 소속으로 옮겨야 한다. 상임위를 통과한 법률안 체계‧자구 심사는 변호사 출신 의원이 아닌 국회사무처에서도 수행 가능하다.

과도기에 지금처럼 존치해야 한다면 법사위 스스로 달라져야 한다. 법사위 위원 18명 가운데 최대 50% 미만으로 변호사 출신 의원을 제한해야 한다. 변호사 관련 법률안 심사와 의사결정에는 변호사 출신 의원을 제외시키는 장치도 필수다.

현재 시급히 처리돼야 할 민생법안이 법사위에 의해 ‘이유 없이’ 발목을 잡혀 있다. 우리나라를 무역대국으로 끌어올린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이 국제환경 변화로 초유의 궁지에 몰리고 절체절명의 시점이다.

산업계는 특허침해소송에서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을 부여하는 법률안이 하루빨리 통과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과학기술계와 스타트업‧벤처기업들의 요구는 더욱 절실하다.

국제 기준에서 보더라도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은 궁극적으로 폐지돼야 한다. 그날이 민생 국회로 돌아오는 날이 될 것이다.

[홍장원 대한변리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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