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 시동…의료계 "보험금 못 받는 명분 될 것"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골자로 한 보험입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16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통과된 것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가 반대 입장을 밝혔다.
17일 이들 세 협회는 공동 성명서를 내고 "이 법안이 결국 보험사의 지급 거절 명분으로 악용될 수 있고, 환자 개인정보 보안을 담보할 수 없는 불완전한 법안"이라며 "아무리 기업의 이익과 실리 추구가 중요하다고 해도 국민에게 위해가 되거나 공익에 반하는 것이라면 정도를 지켜야 하는데, 그 선을 넘고 있는 보험사는 결국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은 환자(보험 가입자)의 편의를 위해 가입자 대신 의료기관이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보험사에 제공하도록 규정한 것이 골자다. 가입자는 병원에서 진료받은 뒤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받아 보험사에 제출할 필요가 없어진다. 국회에선 의료기관 내 환자의 정보를 전산시스템을 통해 보험사에 전달하는 '중계기관'을 규정하고, 이 중계기관으로 보험개발원을 설정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중계기관인 보험개발원을 지정하면 보험사가 의료기관에 축적된 환자 정보를 열어보고, 어떻게 해서든 꼬투리를 잡아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앞서 15일 대한개원의협의회가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은 "중계기관을 지정하려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은 가입자의 보험금 청구 과정에 또 하나의 문턱을 놓는 것이며 결국 보험사가 보험금 심사와 지급을 복잡하게 만들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거부가 이어지고 있고 환자 측에서 보험금 지급 거부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다음은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보험업법 개정안에 대해 17일 낸 공동 성명서 전문이다.
<국민 편의보다 민간보험사 이익이 우선되는 법안은 단호히 반대한다>
2023년 5월 16일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내용으로 하는 보험업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통과된 것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는 여전히 반대의 뜻을 밝힌다.
그간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는 다양한 소통창구를 통해 정부와 국회에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의 문제점을 알리고, 국민편의를 위한 여러 가지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하여 왔음에도 향후 보험금 지급 거절 등 오히려 국민의 피해가 예상되는 법안이라는 점에서 심히 우려스럽다.
이미 정부, 의료계, 금융위, 보험협회로 구성된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에서 11차례의 회의를 통해 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방안 마련을 고민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존중과 배려 없이 성급하게 입법이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에서는 '국민 편의'라는 본연의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 청구 간소화도 필요한 반면, 환자 개인정보 보호와 전송 과정에서의 보안 또한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인식 하에 여러 방법과 구체적 방안을 논의해왔으며 실제로 많은 부분에서 합의점이 도출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자료전송을 위해 '중계기관'이라는 중간단계를 놓는 것이 과연 청구 간소화 방향에 맞는 것인지, 오히려 정보 보완 유출 위험이 그만큼 커지는 것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검토부터 시작해 부득이 중계기관이 필요하다면 ①자료의 집적 금지, ②이해단체와 무관한 공적 기능 수행기관 선정, ③중계기관으로의 자율적인 전송 방법 보장, ④중계기관 모니터링 등 운영 전반에 관여하는 (의료계-보험사) 동수로 구성된 전담 기구 설치 등 안전장치를 위한 필요조건 세부 사항까지 마련했다.
특히, 중계기관으로 논의됐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여러 측면에서 중계기관으로 부적절하다는 것에 협의 결과 제외키로 하고, 이후 거론된 보험개발원에 대해서도 보험사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구조인 만큼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다른 대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신중하게 접근했다.
중계기관의 명칭 부분도 자료의 집적과 무관할 수 있도록 변경하고, 청구 간소화 시스템 운영 전반사항에 관여하는 의사결정기구가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의료계와 보험사 동수로 구성된 위원회를 만들기로 했다.
이처럼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를 통한 논의와 최종 결과물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회 정무위 소위원회를 통과된 것은 그만큼 미완성이고 보충해야 할 부분이 많은 법안이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단체의 의견이 반영되어 중계기관을 통하지 않고 직접 전송하는 방식도 가능하도록 법 조항이 변경되고, 중계기관 명칭도 자료의 집적과 무관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전송대행기관'이라고 수정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시행령으로 위임된 중계기관에 보험개발원을 염두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우려되는 부분이다.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는 결정적으로 의료기관에서 환자의 보험금 청구자료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는 강제조항이 바뀌지 않은 것은 가장 심각하고 큰 문제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사실 실손보험의 실제 계약 당사자도 아닌 의료기관에서 협조 차원이 아니라 의무사항으로 강제하는 법안 자체가 매우 부당한 것이다.
아무리 국민편의가 명분이라고는 해도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의료의 현실이고 현주소라고 한다면 국민의 건강과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 제공은 요원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등 시민단체에서도 국민 진료내역이 민간보험사로 넘어가서 상업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며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그만큼 국민들도 일순의 편의보다 환자의 진료 정보 보호가 더 중요하고, 청구 간소화로 야기될 수 있는 부작용에 불안해하고 있다.
한편, 금번 법안이 결국 보험사의 지급 거절 명분으로 악용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고, 환자 개인정보 보안을 담보할 수 없는 불완전한 법안이 자명함에도 보험사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에 참여하면서도 뒤에서는 법안 통과에 일조해온 손보사의 이중적인 모습은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아무리 기업의 이익과 실리 추구가 중요하다고 해도 국민에게 위해가 되거나 공익에 반하는 것이라면 정도를 지켜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 기업의 기본 윤리임에도 그 선을 넘고 있는 보험사는 결국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아직 정무위원회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 등 이후 과정과 절차가 남아있는 만큼 국민의 진료 정보 보호와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고, 국민편의를 실질적으로 충족할 수 있는 진정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해 지금이라도 의료계와 함께 실현 가능하고, 합리적인 법안을 만들 수 있도록 협의해야 한다.
2023. 5. 17.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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