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임윤찬의 카덴차…그는 날마다 진화한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성공적으로 뉴욕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그는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간 내리 열린 공연에서 제임스 개피건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협연했습니다. 그가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던 반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에서 연주했던 바로 그 곡이죠.
링컨센터 데이비드 게펜홀의 2,200석 표는 일찌감치 동났고, 뉴욕필하모닉은 스탠딩석을 추가로 판매했습니다. 열광적인 환호성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기립박수가 록스타의 콘서트를 방불케 했죠. 지휘자 제임스 개피건도 자신의 트위터에 '천상의 테크닉과 노대가의 음악성을 지닌 다정한 사람'이라며, 중요한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소감을 남겼습니다. 현장에 있었던 수많은 관객들은 마치 '간증' 같은 후기를 아직도 쏟아내고 있는 중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첫날 공연이 끝난 후 극찬으로 가득한 리뷰를 실었습니다. '10대 피아노 스타, 뉴욕에 도착하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꿈같이 연주한다'는 말은 보통 연주를 잘한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임윤찬의 경우에는 정말 문자 그대로 '꿈같이 연주했다'(He plays like a dream)'고 했죠. 며칠 후 영국 신문인 파이낸셜타임스까지 리뷰 기사를 내서 눈길을 끌었는데요, '젊은 클래식 스타는 많지만, 임윤찬처럼 흥미로운 연주자는 극히 드물다'고 했습니다.
임윤찬은 콩쿠르 결선 때 '오리지널 카덴차(Cadenza)'를 쳤는데, 이번에는 '오시아' 버전의 카덴차를 연주했습니다. 협주곡에서 '카덴차'는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지 않고 독주자가 마음껏 자신의 기량을 뽐내는 독주 부분을 가리키는데요, 초창기에는 독주자가 마음껏 즉흥 연주를 하는 게 관례였지만, 점차 작곡가가 카덴차 부분까지 작곡해 악보로 남겨놓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연주자들은 작곡가가 직접 쓴 카덴차 혹은 과거의 유명 연주자들이 작곡한 카덴차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가끔은 카덴차를 자체적으로 써서 연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 예전에는 작곡가가 연주자를 겸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작곡가와 연주자가 별개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협주곡 3번 1악장 카덴차를 두 버전으로 작곡해 남겨놓았는데요, 오리지널 버전 카덴차는 상대적으로 투명하고 가벼운 느낌을 주는 반면, 오시아 카덴차는 화음이 두텁고 웅장한 느낌입니다. '오시아(ossia)'는 '혹은(or rather)'이라는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 단어입니다. 일반적으로 한 악보에서 치는 방법이 두 가지 이상 존재한다면, 그 구간의 위쪽이나 아래쪽에 다른 버전(즉 오시아)도 함께 표기합니다.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을 연주할 때 카덴차는 오리지널 버전보다는 더 웅장하고 화려한 느낌의 오시아 버전을 택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특히 기량을 겨루는 콩쿠르 무대에서는 경연자들이 대부분 오시아 카덴차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임윤찬은 콩쿠르 결선 때 오리지널 카덴차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뉴욕 공연에서는 오시아 카덴차를 선보였습니다.
Q. 콩쿠르에서 오리지널 카덴차를 쳤던 게 독특하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오리지널 카덴차는 잘 안 친다면서요?
A. 네. 하지만 다음 연주를 하게 되면 '오시아' 버전으로 할 수도 있어요. 윤찬이는 둘 다 할 수 있는데, 아마 이번엔 정말 좋아하는 라흐마니노프 3번을 쳤던 작곡가 본인, 그리고 호로비츠라든지 존 브라우닝이라든지,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연주자들의 마음을 따라가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또 구조적으로 1, 2, 3악장 전체를 놓고 봤을 때, 1악장 카덴차가 비중이 너무 커서 오시아 버전으로 치면 뒷부분이 뭔가 에너지가 빠지는 느낌이 된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사실 (어떤 카덴자를 칠 것인지) 선택은 윤찬이 본인이 하도록 했어요. 윤찬이를 믿으니까요. 그런 것들에 대한 감각이, 본인이 원하는 것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오리지널 카덴차를 쳤던 피아니스트들을 언급한 것 같아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1903-1989)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입니다. '호로비츠를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나왔던 한국 영화도 있었죠. 호로비츠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 유튜브 영상(▶바로 보기)은 임윤찬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 영상이 기록을 깨기 전까지 이 곡 영상 중에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존 브라우닝(1933-2003)은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고요.)
[ https://www.youtube.com/watch?v=D5mxU_7BTRA ]
[ https://www.youtube.com/watch?v=aJsFgQiOv2U ]
콩쿠르에서 스스로 오리지널 카덴차를 선택했던 것처럼, 임윤찬은 이번 뉴욕 데뷔 연주에서는 오시아 카덴차를 선택했습니다. 특별히 무언가를 과시하려는 게 아니라, 손민수 교수의 말대로 이번엔 그게 임윤찬이 원하는 것이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임윤찬의 오시아 카덴차는 라흐마니노프가 써놓은 악보 그대로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확인해 보니 "임윤찬은 라흐마니노프의 오시아 카덴차에 약간의 'Edit(편집)'을 해서 쳤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오시아 카덴차에 뭔가 임윤찬의 색깔이 약간 더해진 셈이죠. 임윤찬 스스로도 작곡을 하고 변주를 즐긴다고 하니까요.
카덴차만 다른 버전으로 한 게 아니라, 임윤찬은 (5월 17일 현재 유튜브 영상 조회수 1,127만을 기록 중인) 반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 연주보다 더 진화한 연주를 들려줬다고 많은 이들이 전했습니다. 뉴욕 필과 협연했던 사흘 간의 공연을 다 본 관객들은 사흘이 다 달랐다고 하더라고요. 같은 곡을 쳐도 결코 똑같이 반복하지 않는 무대, 앙코르 곡도 날마다 똑같지 않았습니다. 임윤찬은 내년 2월에는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데뷔합니다. 쇼팽 에튀드 전곡을 연주하는 '올 쇼팽' 프로그램입니다. 또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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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news.sbs.co.kr/d/?id=N1007194783 ]
(사진 출처 :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
김수현 문화전문기자sh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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