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이라는 껍데기를 걷어내니 보인 것들
나이지리아인, 중국인 그리고 유대인인 저자가 있다. 겉모습이 확연히 구분되는 이 세 ‘인종’은 유전적으로도 구별될까. 미국 뉴욕 유전체 센터에서 2주에 걸쳐 이 세 자원자의 유전체를 분석했다. 약 30억 개인 인간의 DNA 염기쌍 가운데 피부색·체질 등을 결정하는 0.1%가량의 단일염기변이(SNP) 355만 쌍을 비교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저자는 중국인 자원자와 193만 쌍, 나이지리아 자원자와 184만 쌍의 단일염기변이를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의 단일염기변이 중 83%가 두 사람 중 적어도 한 명의 유전체에 존재한다는 의미다.
<웃음이 닮았다>(이민아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의 저자인 미국의 과학저널리스트 칼 짐머는 “과연 ‘인종’이 인간의 유전적 다양성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되는 개념이냐”고 묻는다. 인종이 처음 ‘생물학적 유전에 의해 엄격하게 구분된 집단’이라는 지금 개념으로 쓰인 것은 16세기 에스파냐 합스부르크가의 통치기였다. 당시 귀족들은 자기 피에 유대인 피가 섞이 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했다. 무지 속에 ‘인종’이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을 차별·증오하는 개념으로 쓰인 것은 이때부터다.
1854년 한 미국 교과서는 ‘백인종은 모든 인종 가운데 가장 고귀하고 가장 완벽한 인간형이다’라고 기술했다. 하지만 1972년 리처드 찰스 르원틴은 17개 인구집단(줄루족·네덜란드 등)의 단백질을 측정해 인종 간 유전자 차이는 인간의 유전적 다양성 총량의 6.3%밖에 안 되지만, 인구집단 간 유전적 다양성은 85.4%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했다.
저자는 “신체 특징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를 보고 다른 유전자도 같은 패턴(신체 특징에 영향을 미친다고)일 것이라고 가정하는 건 잘못”이라며 “사람에게 신체적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고루한 인종 개념을 고수한다면 눈에 보이는 차이와 눈에 보이지 않는 차이를 모두 이해하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첫딸이 태어나 아이가 웃을 때 아내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고 말한다. <웃음이 닮았다>는 제목이 여기서 나왔다. 유전병이라는 개념이 불분명할 때인 1950년대 소설가 펄 벅이 에서 딸에 대해 쓴 이야기, 유전학자 조너선 프리처드가 연구한 거의 모든 유전자가 ‘키’에 영향을 미친다는 ‘전유전자’ 형질 등 저자는 역사를 통해 유전 학을 깊고 넓게 파고든다.
21이 찜한 새 책
오월의 정치사회학
곽송연 지음, 오월의봄 펴냄, 1만7천원
1980년 5월 광주, 군인이 느닷없이 시민을 때리고 죽였다. 총을 든 그들은 국민을 지켜야 하는 군인이었다. 도대체 왜? 저자는 기존 5·18 연구와 달리 ‘피해자 서사’를 벗어나 ‘가해자 분석’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은 어떻게 가해자가 됐고 학살에 참여하게 됐는지 정밀하게 분석해, 5·18을 ‘정치적 학살’로 규정한다.
암컷들
루시 쿡 지음, 조은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2만2천원
“암컷은 착취당하는 성이다. 근거는 난자가 정자보다 크다는 사실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 이렇게 썼다. 도킨스의 제자이자 영국의 자연사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저자는 이에 반기를 든다. 마다가스카르의 정글, 케냐의 평원 등을 누빈 저자는 수컷보다 방탕하고 무리 위에 군림하는 암컷의 참모습을 펼쳐 보이며 고루한 남성 중심 관념에 대항한다.
두루미의 땅, DMZ를 걷다
박경만 지음, 사월의책 펴냄, 2만7천원
“난도질당한 지구의 땅덩어리 중에서도 가장 인간의 욕망이 닿지 않은 곳.” 전 <한겨레> 기자인 저자는 비무장지대(DMZ)를 이렇게 정의했다. 서해 끝 백령도·연평도에서 강화 앞바다의 섬들, 한강하구와 임진강·한탄강, 강원도 산길과 동해안까지 접경지역 500㎞를 두 발로 걸으며 DMZ의 전체 모습을 조망했다. 저자를 DMZ로 이끌어줬다는 두루미가 가장 많이 모여드는 곳도 바로 DMZ다.
세일즈 우먼의 기쁨과 슬픔
전순예 지음, 송송책방 펴냄, 1만6천원
70대에 작가가 된 저자가 <강원도의 맛> <내가 사랑한 동물>에 이어 세 번째 에세이를 펴냈다. 앞의 책들이 옛날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추억이라면, 이번엔 먹고살기 위해 물건을 팔다가 때론 체면을 구기고 모멸을 감수했던 현실감 넘치는 이야기다. 저자는 당시 일하는 ‘주부들’을 향해 “누가 뭐래도 그들은 책임 있는 가장이었다”고 손을 내민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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